[새책] 전라도 천년

2018-02-13 12:55
글 김화성 | 사진 안봉주 | 맥스미디어 펴냄

<전라도 천년> [사진=맥스미디어 제공]


"어이, 나가 마리여, 어저끄 거시기랑 거시기 허다가 거시기 헌티 거시기 혔는디, 걍 거시기 혀부렀다."

2018년, 전라도가 생긴 지 1000년이 되는 해에 전라도의 기원부터 전라도가 탄생시킨 인물, 지역민들의 삶·생각·사상, 전라도 자연의 신비로움 등을 다룬 책이 발간돼 눈길을 끈다. 

전북 김제에서 태어난 저자 김화성은 33년간 기자생활을 한 뒤 대학과 기업연수원, 각종 단체 등에서 폭넓은 강연을 펼치고 있다. 축구, 책, 음식, 인문학 등 다양한 주제로 책을 써 온 김화성이 이번에 천착한 것은 자신의 고향 땅, 전라도다.

'전라도'라는 명칭은 언제부터 사용됐을까. 저자에 따르면, 1018년 고려 현종이 처음으로 전라도라는 말을 사용했다. 전라도 지역의 중요성을 인식한 현종이 전주(全州)와 나주(羅州)의 첫 글자를 따서 ‘전라도’를 만든 것이다. 이는 조선팔도 가운데 두 번째로 생긴 경상도(1314년)보다도 무려 296년이나 앞선 일이다.

전쟁을 통해 국력을 높이고 왕권을 강화하고자 하던 현종에게 전라도는 요충지나 다름없었다. 저자는 "이순신 장군의 '호남이 없다면 나라도 없다'는 말처럼 잦은 외침과 불의에 맞서 나라를 지킨 민중들이 살던 곳, 전라도는 우리나라 5천 년 역사에서 중요한 위상을 차지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전라도는 그 땅과 강줄기의 형세 때문에 '반역의 땅', '귀양의 땅' 등의 오명을 쓰고 차별받아 왔다. 나라의 중심이 아니라 철저한 '변방'이었던 셈이다. 이에 저자는 "실상 전라도 사람들은 임금이 있는 북쪽을 피해 남쪽으로 집을 지을 정도로 의리를 지키는 충신의 고장"이라며 "묵묵히 정도를 걸어온 선비정신은 전라도 정신의 원형"이라고 강조한다.

아이로니컬하게도 전라도는 변방이었기에 개혁과 혁명의 땅이 될 수 있었다. 책에서는 부패한 권력층을 향해 개혁의 깃발을 들었던 인물들을 소개한다. 평등한 세상을 꿈꿨던 정여립, 실학사상가 정약전과 정약용 형제, 녹두장군 전봉준, 동학접주 차치구와 그 후속들이 그들이다. 이들은 불의에 과감히 맞서 결단력 있는 삶을 살았다는 공통점을 지니고, 바로 이것이 전라도 천년의 버팀목이 되었다는 게 저자의 판단이다.

저자는 "긍게 말이여∼", "큼메 마시!"로 대표되는 전라도말을 흥미롭게 소개한다. '글쎄, (그러게)말이여!' 정도의 뜻으로 해석할 수 있는 이 말들은 이야기꾼에게 맞장구를 쳐주면서 신바람을 넣어주기에 제격인데, 상대의 말을 긍정하기도 하고 때론 부정하기도 하면서 그 속에 은근슬쩍 자신의 뜻을 담기도 한다. 

전라도의 '흥'에도 주목했다. 책에는 '판소리의 아버지' 신재효의 삶이 그려지는데, 신재효는 마흔을 전후해 판소리에 빠져들었고, 모은 재산을 다 쏟아부어 자질이 뛰어난 소리꾼, 무당, 기생 등을 자신의 집에서 먹이고 재웠다. 특히 우리나라 최초의 여자명창이 된 제자 진채선과의 늦사랑 이야기는 영화 '도리화가'로 만들어질 정도로 유명하다. 

같은 '변방'은 통하는 구석이 있는 것일까. 저자는 전라도뿐만이 아니라 변방 중의 변방으로 인식돼 오던 제주도의 역사와 삶도 소개한다. 제주도는 육지와 멀리 떨어져 '탐라'로 불리다 1402년 조선 태종 이방원에 의해 중앙정부에 귀속됐다. 저자는 "추사 김정희도 8년간의 제주 유배생활을 통해 그 서체가 더욱 담백해질 정도였다"며 "제주 바람은 모든 것을 둥글게 만들며 사람들에게 여유를 갖게 만든다"고 해석한다. 

전북에서 30년간 사진기자로 살았던 안봉주(JB영상문화연구원 원장)의 농밀한 사진들이 더해진 이 책은 역사적으로 굵직한 사건과 인물 활약상을 통해 전라도의 속살을 들여다볼 수 있게 한, 보기 드문 지역 통찰 인문서이다.

368쪽 | 1만7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