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하한담(冬夏閑談)] 법꾸라지

2018-02-09 05:00
남현희 전통문화연구회 번역실장

“정령(政令)으로 인도하고 형벌(刑罰)로 다스리면 백성들은 형벌을 모면하고서 부끄러워하는 마음은 없게 된다.”
(道之以政 齊之以刑 民免而無恥, 도지이정 제지이형 민면이무치)
- <논어(論語)> '위정(爲政)'

제도와 법률은 아무리 잘 만들어도 완벽할 수 없다. 빈틈은 꼭 있게 마련이다. 그 빈틈을 잘 노려서 파고드는 사람을 우리는 '법꾸라지'라 한다. 미꾸라지가 어망(漁網)의 빈틈으로 유유히 벗어나듯, 법꾸라지는 법망(法網)의 빈틈으로 교묘히 벗어나기 때문이다. 법치(法治)의 허점이다.

그런 허점을 파고드는 법꾸라지가 많아질수록 법을 지키면 나만 손해라는 피해의식이 싹트게 되고, 피해의식이 싹트면 선악(善惡)에 대한 판단력은 무뎌지게 마련이다. 그러다 보면 법망을 피해 제 이득을 챙기는 것만 ‘선’이요, 법을 지키다 손해를 보는 것은 ‘악’이 된다. 선악의 가치가 전도(顚倒)되는 것이다.

그런 사회에선 제 이익을 위해서라면 아무런 거리낌없이 너도나도 법꾸라지가 되려 한다. 내가 법꾸라지가 못 된다면 유능한 법꾸라지를 고용해서라도 법꾸라지가 되려 한다. 형벌을 모면할 수만 있다면 사회적 비난도 아랑곳없고, 물론 반성이나 부끄러움도 전혀 없다. 결국 법의 허울을 쓰고 있지만, 실상은 무법천지(無法天地)나 다름없는 사회가 되고 만다. 바로 우리의 부끄러운 자화상(自畵像)이다.

그래서 공자(孔子)는 제도와 법률보다는 덕치(德治)와 예교(禮敎)가 우선시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덕으로 인도하고 예로 다스리면 백성들은 부끄러워하는 마음도 가지고 바르게 된다(道之以德 齊之以禮 有恥且格, 도지이덕 제지이례 유치차격).”

부끄러움이란 곧 양심(良心)의 다른 이름이니, 덕치와 예교의 궁극적 지향점은 양심의 회복에 있다고 할 것이다. 그리하여 부끄러움을 모르는 법꾸라지도 부끄러움을 갖게 되고, 더 나아가 법꾸라지의 존재가치도 아예 없어지는 그런 세상을 지향한 것이 아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