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광웅의 데이터 政經] 독일發 뉴스에는 합당 기사가 없다

2018-01-28 12:34
부끄러운 한국정당은 간판을 선거 때면 왜 바꿀까?


[최광웅의 데이터 政經]
 

[사진=최광웅데이터정치경제연구원장]



집권 더불어민주당은 제19대 총선을 3개월 보름 앞둔 2015년 12월 새정치민주연합이 당명을 바꾸며 재출발한 정당이다. 이듬해 10월엔 원외 민주당을 흡수·합당하며 제19대 대선 준비에 본격 돌입하였다. 자유한국당은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심판이 진행되던 지난해 2월 새누리당 색깔을 지우고 5·9대선을 치르기 위해 당명만 바꾼 정당이다. 국민의당은 2016년 2월 새정치민주연합 탈당파들이 중심이 되어 불과 2개월 남은 총선 출마를 위해 급조한 정당이다. 바른정당은 박근혜 전 대통령 국회 탄핵에 찬성한 옛 새누리당 의원들을 주축으로 작년 1월 보수의 대안후보 모색을 위해 창당하였다. 정의당은 2012년 10월 통합진보당 당내 갈등사태로 이탈한 세력이 모여 창당한 진보정의당이 모태이며, 이듬해 7월 혁신당대회를 통해 정의당으로 당명을 바꾼 정당이다. 2014년 지방선거 등 다른 정치세력과 연대를 염두에 두고 당명에서 진보를 벗어던졌다. 이처럼 원내교섭단체를 구성하거나 총선 또는 대선에서 5% 이상 득표율을 획득한 정당은 예외 없이 전국단위 선거를 앞두고 창당하거나 당명을 바꾸곤 했다.

그렇게 해서 태어난 이들 5개 정당의 평균나이는 불과 2년 2개월이다. 맏형인 정의당이 4년 6개월이며 막내인 자유한국당은 채 한 돌도 되지 않는다. 그런데 또 두 개의 원내정당이 탄생하기 일보 직전이다. 국민의당과 바른정당이 합당하는 (가칭)통합신당과 여기에 맞서는 국민의당 반대파들의 (가칭)민주평화당이 그것이다. 국민의당 집안싸움은 결국 분당으로 치달을 가능성이 한층 높아지는 가운데 한쪽은 국회의원 절반 이상이 반대하는 합당을 밀어붙이고, 또 한 쪽은 이에 뒤질세라 창당발기인 모집을 서두르며 신당 창당절차에 돌입하였다. 이미 분열은 시간문제일 뿐이다. 불과 4개월여밖에 남지 않은 지방선거인데도 이렇듯 대진표가 확정되지 않았지만 우리나라 유권자들에겐 전혀 낯설지 않은 풍경이다.

한편 정치선진국 독일연방 의회는 진입장벽이 매우 높다. 전국 정당명부(제2투표) 득표율 5% 이상이거나 지역구 의석 3석 이상을 획득한 정당에만 전체 의석 절반이 할당된 주별 비례대표 배분에 참가할 권리를 부여한다. 그런데 올 1월 말을 기준으로 연방의회 구성하고 있는 원내7당은 평균나이가 56세 3개월, 우리나라 젖먹이 수준 정당들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그나마 지난해 9월 실시된 총선에서 돌풍을 일으킨 5살짜리 막내 ‘독일을 위한 대안(AfD)’이 평균치를 엄청 깎아먹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렇듯 원숙한 중년 나이 수준이다.

독일 사민당(SPD)은 1890년 10월 12일부터 일주일간 할레(Halle)에서 열린 당대회를 통해 현재의 이름으로 탄생한 정당이다. 사민당은 창당 이후 두 번의 해산을 당했다. 1875년 5월 고타(Gotha)에서 창당한 독일 사회주의노동자당(SAP)은 비스마르크가 1878년 ‘사회주의법’을 통해 12년간 활동을 정지시켰다. 1933년에도 히틀러가 나치당을 제외하고 모든 정당을 해산하면서 사민당도 12년간 지하로 숨었다. 현재의 사민당은 2차대전 직후인 1945년 재건하였다. 집권 기민련(CDU) 역시 1945년 중앙당, 민주당, 인민당, 국가인민당 출신 중도보수주의자들이 모여 만든 정당이다. 기민련 자매정당인 기사련(CSU)도 같은 해 바이에른 주를 기반으로 창당한 지역정당이다. 자민당(FDP)은 1948년 창당에 이어 이듬해 독일연방 첫 총선에 뛰어든 자유주의 우파정당이다. 1970년대 환경운동가들이 정식으로 녹색당이라는 정당을 만든 건 1980년의 일이다. 1989년 독일 통일 직후 동독 집권당이 탈색을 하면서 이듬해 민주사회당(PDS)으로 창당을 하게 된다. 이 당은 2007년 좌파당으로 당명을 개정하였다. ‘독일대안(AfD)’은 2013년 난민 반대와 유럽연합 반대 등을 기치로 창당한 우파 포퓰리즘 정당이며 지난해 총선을 통해 처음 연방의회에 진출하였다.

지난 12일 독일 사민당(SPD)은 본에서 열린 특별 전당대회에서 기민련·기사련(CDU·CSU)과 대연정 예비협상안을 승인했다. 정식협상과 약 44만명에 이르는 사민당 당원총투표를 다시 한 번 거쳐야 하지만, 어쨌든 사민당이 이번 대연정에 참여한다면 네 번째가 된다. 연방 제1야당인 사민당은 총 7차례나 총리를 배출하며 연정까지 포함해 30년 이상 여당 지위에 있었다. 하지만 자민당은 단 한 번도 총리를 배출하지 못한 3~4위권 군소정당이지만 사민당보다 오히려 더 오랫동안 연립여당 위상을 유지하였다. 과반수 정당이 절대로 탄생하지 않는 선거제도를 십분 활용해 양대 정당과 연정파트너를 바꿔가며 무려 44년 3개월 이상의 집권기간 동안 부총리를 6명 배출하였다. 2013년 총선에서는 봉쇄조항인 5% 득표율을 얻지 못해 원외정당으로 추락하는 수모를 겪기도 했으나, 2009년 총선에서는 역대 가장 좋은 성적표를 기록하며 17개 각료 중 5개 장관직을 확보하였다. 특히 외교부총리, 법무장관, 경제에너지장관, 경제협력·개발장관, 보건장관 등 주요 직위를 차지하였다. 이처럼 독일정당들이 한 우물을 파고 백년을 갈 수 있도록 힘을 발휘하는 건 ‘민심 그대로’의 선거제도 때문이다. 특정정당이 절대로 과반수를 차지할 수 없게 설계돼 있으므로 합당이란 단어조차 필요없다.

최 광 웅(데이터정치경제연구원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