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 권력자들의 차 ‘훙치’, 확 바뀐 디자인·가격으로 중산층 공략

2018-01-25 06:01
2035년까지 50만대 판매 목표…관용차 이미지 벗고 환골탈태 선언
세단, SUV 등 4가지 모델 주력…독일, 미국 등 해외 혁신 기술센터 구축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지난 2015년 9월 3일 '항일전쟁·반 파시스트 전쟁승리 70주년' 기념 열병식에서 '훙치'에 탑승한 채 군인들을 사열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중국의 토종 자동차 브랜드인 '훙치(紅旗·붉은 깃발)'가 환골탈태를 선언하고 옛 명성 되찾기에 나섰다.

지난 1월 8일 베이징(北京) 인민대회당에서 개최한 ‘훙치 비전 선포식’에서 쉬류핑(徐留平) 중국 이치(一汽)자동차 회장은 “앞으로 훙치는 새롭게 탄생해 중국식 특색을 입힌 럭셔리 브랜드로 자리잡을 것”이라며 “2020년까지 10만대를 판매하고 2025년에는 30만대, 2035년에 이르러서는 판매량 50만대를 돌파하겠다”라는 야심찬 포부를 밝혔다고 봉황망 등 중국 현지 언론들이 보도했다. 

1958년부터 생산된 중국 토종 자동차 브랜드 훙치는 중국 '건국의 아버지'로 불리는 마오쩌둥(毛澤東)이 애용한 차로 유명하다. 브랜드의 한자 로고도 마오의 친필로 알려졌다. 덩샤오핑(鄧小平), 후진타오(胡錦濤) 등 역대 중국 지도자들이 중요한 행사 때마다 카퍼레이드로 이용한 대표적 관용차이기도 하다.

'중국의 벤틀리'라고도 일컬어지는 훙치는 1956년 국산 자동차가 필요하다는 마오의 지시로 개발에 들어가 1958년 처음 양산됐다. 그 이후 마오는 거의 모든 행사에 훙치 자동차를 타고 참석하는 등 남다른 애정을 보였다. 

훙치는 한때 중국에서 가장 눈에 띄는 브랜드였다. 훙치는 1959년 건국 기념 열병식에서 처음으로 국가 원수의 사열용 차량으로 쓰였고 1960년대 문화대혁명 당시 마오쩌둥이 '홍위병'을 사열할 때, 1972년 닉슨 미국 대통령의 첫 방중 때도 이 차량이 사용됐다.

그러나 1980년대 들어 훙치의 인기는 시들고 링컨과 검은색 아우디 같은 외자합작 브랜드가 그 자리를 대신했다. 개혁·개방 이후 외국산 차량과의 경쟁에서 밀린 훙치는 간신히 명맥을 이어오다가 2012년 상업 생산을 재개하는 등 부침을 겪기도 했다. 공산당 간부들 사이에서 외제 차량에 비해 무겁고, 연료 소비가 크다는 이유로 훙치의 인기는 식어갔기 때문이다.

중국 정부는 훙치를 육성하기 위해 2011년부터 2015년까지 이치자동차에 100억 위안(약 1조6600억원)을 지원했다. 훙치의 라인업은 고급형인 ‘L모델’과 일반형인 ‘H모델’ 두 가지로 나뉜다. L모델은 가격이 최고급 세단인 롤스로이스와 벤틀리에 버금간다.

하지만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훙치 대표 세단모델인 ‘H7’은 지난 2016년 기준 5000대 팔리는 데 그쳤다. 2017년 1분기 판매량은 1000대에 불과했다. 같은 기간 독일 자동차 브랜드인 아우디는 하루 평균 평균 2000대 이상 판매됐다.

그동안 훙치가 소비자들의 외면을 받은 원인은 두 가지다. 하나는 촌스러운 다자인이고, 다른 하나는 잔고장으로 대두되는 품질 문제다. 게다가 아우디, 폭스바겐 등 외국 선진 자동차업체들이 중국 현지업체와 협력해 내놓은 세련된 자동차들이 시장을 독점하고 있어 훙치의 이미지는 ‘관료 전용차’로 더욱 고착화 됐다.

훙치는 이러한 문제점들을 개선하기 위해 올해 연구개발(R&D)을 근본적으로 혁신하고 5000명이 넘는 전문인력을 새로 투입하는 등 자동차 선진국 수준의 자동차를 만들겠다는 데 목표를 맞췄다.

우선 지린(吉林)성 장춘(長春)시에 혁신개발 센터본부를 구축하고 베이징에 소비자 입맛에 맞춘 상용화 기술 개발센터를 설립할 계획이다. 최신 트렌드인 4차 산업을 견인할 인공지능(AI) 등 핵심기술 확보를 목표로 상하이(上海)에 첨단연구센터도 설립하기로 했다. 또 독일 뮌헨에 혁신디자인센터를 설립해 지속적으로 교류·협력하기로 했으며, 4차 산업혁명을 선도하는 미국 실리콘밸리에 AI R&D 센터를 설립하고 자율주행 서비스의 상용화에 전력투구하기로 했다.

이번 비전 선포식에서는 훙치가 새롭게 정비한 L, S, H, Q라인 등 4가지 모델에 주력하겠다는 뜻을 밝히기도 했다. 공개한 모델들을 살펴보면 L라인은 편안함과 고급스러움을 강조한 럭셔리 세단, S라인은 성능을 강조한 고급 스포츠카, H라인은 보급형 세단, Q라인은 비즈니스 사무를 위한 승합차 등으로 구성됐다. '날렵한 디자인'과 '착한 가격'을 무기로 중산층을 공략하겠다는 것이다.

사후관리서비스(AS) 강화에도 적극적이다. 자사의 제품을 구매한 고객에게 평생 무상으로 수리를 받을 수 있는 파격적인 혜택도 제공한다. 기존의 부족했던 정비소를 두 배 넘게 확대하고 지역별로 비포서비스(사전 부품교체·정비서비스)를 효율적으로 추진하겠다는 계획이다.

둥양(董揚) 중국자동차공업협회 부회장은 “그동안 훙치는 고위공무원만 겨냥해 일반 소비자의 눈길을 끌지 못했다”며 “훙치의 부활은 개인 소비자를 어떻게 공략할 것인지에 달렸다”고 말했다.

또한 훙치는 정부의 친환경 정책에 따라 올해 안으로 순수 전기자동차 모델을 출시하고 2020년까지 1회 충전에 600㎞를 달릴 수 있는 고성능 전기차를 만들겠다는 목표를 내세웠다. 그리고 2025년까지 15종의 각 다른 모델의 전기차를 생산해 중국인 소비자들의 입맛을 사로 잡겠다는 의지도 내비쳤다.

이치의 한 관계자는 “관료 전용 자용차라는 딱딱한 이미지를 탈피하기 위해 디자인과 가격 부분에 특히 신경을 많이 썼다”고 설명했다. 그는 "그동안 일반 소비자들의 외면을 받은 원인을 면밀히 분석했다"며 "이제는 관료가 아닌 일반 서민들에게도 사랑 받는 자동차로 거듭나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