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바꾸면 잘하나? 프로야구 개명 선수들

2018-01-22 10:34
연봉 2000만원 손광민에서 4년 총액 98억원 손아섭으로… KIA 김세현, 롯데 장시환, 넥센 오주원 등 개명 효과 톡톡

[26일 부산 사직야구장 구단 사무실에서 FA계약을 완료한 뒤 포즈를 취하고 있는 이윤원 롯데 단장(왼쪽)과 손아섭. 사진=롯데 제공]




세상에는 다양한 사람만큼 다양한 이름이 있다. ‘이름을 불러줬을 때 꽃이 됐다’는 김춘수의 시구처럼, 이름은 단순한 호칭이 아니라 그 사람 존재 자체를 가리킨다. 과거에는 부모가 지어준 이름을 운명처럼 받아들이며 살아왔다면 요즘은 스스로 원하는 이름을 추후에 다시 선택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2005년 11월 대법원이 이름에 대한 개인의 행복추구권을 인정한 이후부터다.

프로야구에서도 개명한 선수들이 꽤나 있다. 그 중에서도 ‘개명해 성공한 선수’로 불리는 대표적인 선수는 바로 롯데 자이언츠의 외야수 손아섭이다. 아마도 야구팬 중 손아섭을 모르는 사람은 찾기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손광민’이라는 이름은 어떨까? 아마도 롯데 팬들을 제외하고는 갸웃거리는 경우가 많을 것이다. 한화 이글스의 ‘송광민’ 선수를 잘못 부른 것이 아니라 손아섭의 예전 이름이다.

2007년 롯데 자이언츠에 입단한 손아섭은 승부욕이 타오르던 ‘유망주’였다. 하지만 2008년 7월 사직구장 두산과의 경기에서 인대가 늘어났다. 2007년 손목 수술에 이은 큰 부상을 당하면서 1군에서 제외됐다. 시즌이 끝나자 어머니는 그에게 “이름을 아섭으로 바꿔보자”는 제안을 했다. 부상 당했다고 이름까지 바꿔야 하는가 했지만 어머니는 단호했다. 아들이 부상없이 오랫동안 좋아하는 야구를 하길 바라는 마음에 작명소까지 찾아가 직접 받아온 이름이었다. 고민 끝에 ‘땅 위에서 최고의 아이’란 의미의 ‘아섭’으로 개명을 결정했고 그 이후 성과는 모두가 아는 대로다. 2010년 주전으로 우뚝 선 손아섭은 121경기에서 0.306의 타율을 기록했다. 이후 올 시즌까지 8년 연속 3할 이상의 타율을 기록하고 있다. 2017 시즌에는 처음으로 20홈런 고지를 밟는 등 파워까지 장착한 그는 이번 FA시장 야수 ‘최대어’라는 평가를 받았다. 롯데 잔류를 결정하면서 4년 총액 98억원이라는 잭팟을 터뜨렸다. 계약금 8,000만원과 연봉 2,000만원을 받던 손광민에서 4년 총액 98억원의 KBO 간판 외야수 손아섭으로 거듭났다.

손아섭의 성공 이후 KBO리그에는 개명 바람이 불었다. 특히 손아섭이 소속된 롯데 선수들이 개명 대열에 동참했다. 롯데 관계자가 “선발 라인업 아홉 명 가운데 여섯 명이 개명한 선수였던 적도 있다”고 이야기할 정도였다.

또 다른 개명 성공사례로 불리는 KIA타이거즈 투수 김세현. 넥센 히어로즈에서 김영민이라는 이름으로 활약하던 2015년 9월, 만성 골수성 백혈병 진단을 받았다. 시즌을 일찍 마감하고 병마와 싸웠고 이듬해 다시 그라운드로 돌아오면서 이름을 ‘세현’으로 바꿨다. 그해 그는 팀의 마무리 투수를 맡아 데뷔 후 처음으로 구원왕에 올랐다. 오히려 아프기 전보다 더 뛰어난 실력을 발휘하면서 재기에 성공했다. 지난 7월 KIA로 트레이드 돼 새 소속팀 불펜에서도 중책을 맡고 있다.

롯데 장시환은 넥센 시절 장효훈이라는 이름을 썼다. 늘 공만 빠르고 제구가 안 되는 유망주에 머물렀다. 그러나 2014 시즌을 앞두고 조용히 개명을 했고, 신생팀 kt로 유니폼을 바꿔 입으면서 팀의 핵심 투수로 성장했다. 2017년 3월 열린 월드베이스볼클래식에 국가대표로 출전했을 정도. 이제 장효훈이라는 이름은 잊힌 지 오래다.

넥센의 좌투수 오주원은 건강하게 야구를 하자는 의미로 2016년 개명했다. 10년 넘게 프로 무대에서 오재영이라는 이름으로 뛰었던 그는 2016년 8월 13일 잠실 두산전에서부터 오주원의 이름이 새겨진 유니폼을 입었다. 2004년 현대 유니콘스에 1라운드 5순위로 지명된 오주원은 프로 입단 첫 해 10승 9패 평균자책점 3.99를 기록하며 신인상을 거머쥐었다. 그러나 2012년 인대접합 수술, 2015 시즌 개막 전 강직성 척추염 등 부상이 오랫동안 그를 괴롭혔다. 이름을 바꾼 뒤 그는 2017년 넥센 불펜 주요선수로 자리매김해 2승 4패 5홀드 평균자책점 1.59의 뛰어난 성적을 거뒀다.

 

[사진=kt위즈 제공]



프로 12년차인 kt위즈 김동명은 2016 시즌을 마친 뒤 김동욱으로 다시 태어났다. 2007년 신인 1차 지명으로 삼성에 입단하면서 기대를 한 몸에 받았지만 삼성 유니폼을 입는 동안 1군 무대를 6경기만 뛰었다. 2013년 2차 드래프트를 거쳐 신생팀 2차 드래프트를 거쳐 신생팀 kt로 이적했다. 하지만 kt에서도 자리를 잡지 못해 포지션을 바꾸기도 했지만 뜻대로 풀리지 않았다. 신기하게도 이름을 바꾼 뒤 김동욱에게 기회가 찾아왔다. 조니 모넬의 부진으로 5월 19일 1군으로 콜업된 후 83경기에 출전해 타율 0.287 4홈런 60안타 24타점을 기록했다. 특히 5월 23일 대구 삼성전에서는 연타석 홈런을 때렸다. 2016년까지 통산 홈런 3개에 그쳤던 김동욱은 올해 13경기 만에 홈런 4개를 쳤다.

이들 외에도 개명 선수는 많다. KIA 고장혁(개명 전 고영우), NC 문수호(개명 전 문현정)과 윤호솔(개명 전 윤형배), SK 전유수(개명 전 전승윤), kt 윤요섭(개명 전 윤상균), LG 진해수(개명 전 진민호)와 김재율(개명 전 김남석), 삼성 김건한(개명 전 김희걸), 롯데 뮨규현(개명 전 문재화)와 박종윤(개명 전 박승종) 등이 있다. 두산 박건우는 고교시절 박승재에서 ‘건우’로 개명했다. 한화 강경학도 프로 입단 직전인 고3 때 강시학에서 강경학으로 새 출발했다. 한화 심수창은 2013 시즌이 끝난 뒤 한글은 그대로 놔두고 ‘창’의 한자만 ‘밝을 창’에서 ‘창성할 창’으로 교체했다.

가장 최근에는 kt 김사연의 개명신청이 법원을 통과했다. 이제 그는 김지열이라는 이름으로 팬들 앞에서 서게 된다. 세광고를 졸업한 뒤 2007년 한화에 육성 선수로 입단한 김지열은 2014 시즌을 앞둔 2차드래프트에서 kt유니폼을 입었다. 그는 2015년 kt의 1군 승격과 함께 기대를 모았다. 그러나 시즌 개막 한 달도 되지 않아 왼 손등에 공을 맞아 골절됐다. 결국 두달간 결장하며 아쉬운 1군 데뷔 시즌을 보냈다. 이름처럼 ‘사연 많은’ 선수생활을 끝내보고자 개명을 택했다. 김지열은 “그동안 부상 등 아쉬웠던 게 많았다. 새로운 이름을 갖고 시작한 만큼, 다 털어내고 최선을 다하겠다”며 각오를 다졌다.

많은 선수들의 개명은 야구에 대한 열망이 피어낸 결과물이다. ‘이름이 뭐길래’ 싶기도 하지만 그만큼 좋은 선수로 이름을 남기고 싶은 선수들의 의지가 드러나기도 한다. 다른 선수가 하니까 따라하는 유행이 아니라 간절함이 묻어난다는 이야기다. 이름을 안 바꾸고 좋은 성적을 보이면 더 좋은 일이지만 기왕 새로운 이름으로 새롭게 시작하게 되었다면 제대로 분위기 전환용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다가오는 2018시즌, 또 어떤 선수가 ‘개명 효과’를 뽐낼지 기대가 되는 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