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연시 기부 엑소더스ⓛ]"좋은 마음 있지만, 믿질 못하겠어요"
2017-12-17 13:14
매년 터지는 후원기관 비리·부패 혐의
소액 후원자들 "내 후원금 3만원 중에 10%라도 아동에게 가는지 의심"
소액 후원자들 "내 후원금 3만원 중에 10%라도 아동에게 가는지 의심"
“후원하시는 분과 같은 동네에 사는 저소득층 아동들과 1:1로 매칭해 드리니까 원하시면 직접 찾아가 볼 수도 있고 ···(중략)··· 한 달 책 한권 값이에요. 같은 동네에서 어렵게 공부하는 친구들 돕는 겁니다. 나중에 아이 낳으시면 그 복 다 돌려받으실 거예요.”
최근 직장인 김모씨(31)는 후원단체로부터 이 같은 내용의 전화 한 통을 받았다. 그는 자신이 사는 동네에서 조부모가정, 저소득층 아동을 찾아 직접 후원할 수 있다는 말에 솔깃했다. 그러나 후원단체 홈페이지를 보고 후원을 포기했다. 성의 없고 조악한 홈페이지도 실망스러웠지만 후원단체 대표의 프로필과 활동내용도 의심스러웠기 때문이다.
그는 “인터넷을 찾아보니 해당 단체가 감성팔이로 후원을 강요한다는 내용의 글이 많았다”며 “사람들을 돕고 싶다는 좋은 마음을 돈벌이에 이용하는 사람들 때문에 연말에 기부하려는 마음이 싹 사라졌다”고 말했다.
여기에 정권의 편향된 정치활동 자금으로 사용된 ‘사랑의 열매’ 기부금과 12억원대의 후원금을 유용한 ‘어금니 아빠’ 이영학씨 사태가 연달아 터지면서 시민들의 ‘기부 배신’에 대한 상흔도 커졌다.
지난 13일 만난 5호선 광화문역 구세군 자선냄비 자원봉사자는 “확실히 사람들의 시선과 손길이 싸늘해짐을 느낀다”며 “예전에는 따뜻한 캔커피를 쥐어주고 가시는 분들도 종종 있었는데 요즘에는 의심의 눈초리부터 보내니까 모금활동에도 힘이 빠진다”고 토로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지난해 전국 성인남녀 2038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나눔 실태 및 인식 현황’에 따르면, 최근 1년 동안 기부 경험이 없는 응답자 964명 가운데 23.8%가 기부를 하지 않은 이유로 ‘시설·기관·단체에 대한 불신’을 꼽았다. 기부단체에 대한 부정적인 평가도 매년 증가 추세인데, 전체 국민의 72.5%가 '기부단체의 정보공개에 문제가 있다'고 응답했다.
때문에 기부로 이어지는 온정의 손길도 해마다 줄고 있다. 통계청이 발표한 기부참여율 현황 자료에 따르면 국내 기부참여율은 2011년 36.4%에서 2013년 34.6%, 2015년 29.9%, 올해 26.7%로 낮아졌다. 2013년까지 증가 추세였던 개인 기부금액(약 7조8313억원)도 수년째 정체돼 있다.
기부 단체에 대한 불신이 확산되면서 최근에는 단체를 통하지 않고 직접 학교나 지자체를 찾아가 후원이나 기부 매칭을 요청하는 개인도 있다.
직장인 박모씨(39)는 2년째 단체를 통해 지원하던 저소득층 아동 후원을 중단하고 개인 기부를 알아보고 있다.
그는 "아이에게 크리스마스 선물을 주기 위해 후원하는 가정에 방문하길 원했는데 담당자가 후원을 끊고 연락을 회피해 '후원 아동이 가짜였나'하는 의심이 들었다"며 "후원을 요청할 때는 본인을 자원봉사자로 소개했는데 사실은 파트타임 알바였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여러모로 찝찝해 후원을 그만뒀다"고 말했다.
이어 “대신에 같은 뜻을 지닌 사람들을 모아 학교를 통해 지원이 필요한 아동을 1:1로 매칭받는 방법을 모색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우리 사회의 건전한 기부 문화를 위해서는 기부금을 투명하게 공시하고, 활동내역을 감시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기부단체에 대한 혐오감으로 박씨의 사례처럼 후원아동과 개인이 직접 연결되면 개인정보나 아동인권 등의 측면에서 문제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한 기부단체 관계자는 “기부단체의 신뢰성 확보를 위해 기부금 모집액이나 사용처를 의무적으로 공시해야 하는 단체를 확대할 필요가 있다"며 "기부자들이 자신들이 낸 기부금이 제대로 쓰이고 있는 지 등 관련 정보를 손쉽게 확인할 수 있도록 통합정보시스템을 구축하는 것도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