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화교 130년사⑩·끝] 신·구화교 융합의 길
2017-12-14 11:00
아주차이나·인천대 중국학술원 공동기획
부정적 이미지 1·2세대 구화교
전문기술인 이미지 신화교 출현
서로 협력해 공생의 길 모색 중
부정적 이미지 1·2세대 구화교
전문기술인 이미지 신화교 출현
서로 협력해 공생의 길 모색 중
한국인의 식생활이 서구화되고 또 다변화하고 있지만, 외식메뉴 가운데 여전히 부동의 1위를 차지하고 있는 것은 자장면이다.
이처럼 중국인의 상식(常食)이었던 자장면이 한국인의 주요 외식메뉴로 자리 잡은 지 이미 수십 년이 됐을 만큼 화교들의 삶은 알게 모르게 우리 안에 깊이 들어와 있다.
하지만 동시에 자장면하면 연상되는 ‘짱께’나 ‘짱꼴라’ 같은 조롱 섞인 유행어들이 적지 않게 횡행하고 있는 데에서 알 수 있듯이, 한국인들의 눈에 비친 화교의 이미지는 여전히 부정적 추형들이 대부분이다.
또한 김동인의 소설 ‘감자’에서 두려움과 추악함의 존재였던 왕 서방 같은 패악스런 지주들 그리고 경계와 의심의 눈을 좀처럼 거두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지금의 인색한 ‘중국집’ 사장님들까지, 역사적으로도 그렇고 현실적으로도 한국인들에게 화교는 여전히 불결하고 인색한 낯선 이방인에 지나지 않는다.
이렇듯 한국 사회에서 화교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가 팽배하게 된 것은 상당부분 우리의 섣부른 오해와 천박한 단견에서 비롯됐을 터이지만, 한편으로는 폐쇄적인 화교 사회 스스로 자초한 측면도 없지 않다.
하지만 이제 우리는 ‘또 다른 우리’로서 화교를 받아들일 준비를 해야 하고 그들에 대한 잘못된 시선도 속히 교정해야 할 때다.
더불어 화교들도 더 이상 한국 사회의 피해자로 주저앉아 한숨과 푸념만 늘어놓을 게 아니라 보다 적극적이고 능동적으로 한국 사회에 참여해야 할 것이다.
화교 사회의 변화를 이끄는 두 가지 요인은 바로 세대교체와 새로운 화교구성원의 참여다. 현재 화교는 초창기 1대와 2대 조부(祖父)의 시대를 지나 3대와 4대 심지어는 5대로 이어지는 자손(子孫)의 시대를 맞고 있다.
이들 젊은 세대는 할아버지와 아버지 세대가 그토록 고집하고자 했던 국적문제에 대해서도 비교적 유연하게 대응하고 있다. 개중에는 아예 한국으로 귀화를 선택해 ‘화교’에서 ‘화인’으로 자신의 신분을 이동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국경이라는 장벽을 상시적으로 넘나드는 이른바 월경(越境)적 흐름이 전 세계적 대세가 된 작금의 현실에 비추어 볼 때 이들의 국적에 대한 인식의 변화와 국적이동에 대한 거부감의 감소는 아마도 당연한 추세일 것이다.
이제 그들은 더 이상 차이나타운이라는 좁다란 울타리에 결박되지 않은 채 한국의 주류사회와 꾸준히 소통함으로써 자신들의 잠재력과 역량을 널리 발휘할 수 있는 기회를 점차 부여받고 있고 또한 그것을 충분히 활용할 자세를 취하고 있다.
화교 사회 변화의 두 번째 요인은 이른바 ‘신(新)화교’가 화교 사회의 또 다른 구성원으로 참여하게 된 것이다.
누대에 걸쳐 한국 사회에 뿌리를 내리고 살아온 화교와 그 후대를 ‘구(舊)화교’라 한다면, 1990년대 이후 중국 대륙에서 한국으로 건너온 이들은 상대적으로 ‘신화교’라고 불린다.
이들 중에는 이른바 개혁·개방 이후 활발해진 중국의 대규모 유학 붐에 힘입어 한국에 왔다가 그대로 정주한 경우도 있고, 기존의 ‘출가형(出稼型, 돈벌이를 위해 주로 단신으로 건너오는 형태)’을 답습하는 경우도 있다.
전자는 주로 IT, 금융, 학술연구 등 최첨단 분야의 직업에 종사하거나 한국의 대기업에 취직해 한·중 경제교류의 최전선에서 활약하는 이들이다.
후자는 방문취업이나 친척(주로 구화교)의 초청을 통해 한국에 와 주로 육체노동으로 삶을 연명하는 자들이다.
이밖에도 한국인과의 결혼을 통해 한국에 정착하는 결혼이민의 형태 역시 갈수록 늘고 있는 것이 지금의 현실이다.
구화교들 중에는 세대교체를 거듭하는 가운데 점차 자신들의 전통적인 중국 색채와 정체성을 상실해가고 있는 것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는 이들이 적지 않다. 신화교와 협력 관계를 구축하는 것이 구화교에게 있어서 매우 긴박하고 절실한 과제가 되고 있는 것이다.
구화교 1세대의 상당수는 이미 작고했거나 생존해 있다 하더라도 80세 전후의 고령들이다. 2세대도 적극적으로 사회활동을 벌이기에는 사실 버거운 나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반면, 그들의 후손인 3대와 4대는 1990년대 이후 중국 대륙에서 건너온 신화교와 상당부분 연령적으로 겹치는 세대다. 그런데 오히려 구화교와 신화교의 교류와 협력을 주장하고 실천하는 이들은 대부분 1세대와 2세대다.
그도 그럴 것이 이들이 여전히 교령(僑領)들로서 화교 사회를 이끌어가고 있고 그 후속세대를 통한 화교 사회 리더십은 아직 형성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선적으로 구화교 커뮤니티 내부에서 3, 4대 젊은 세대들의 리더십 재생산구조를 마련함으로써 이들이 보다 적극적으로 화교 사회 발전에 참여해 활동할 수 있는 공간을 확장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와 동시다발적으로 연령적으로 비슷한 신화교와 소통하고 협력할 수 있는 교류채널을 구축해야 한다. 아마도 이는 한국 화교 사회 전체가 직면한 과제일 것이다. 이 실험은 이미 시작되고 있을지도 모른다.
구화교가 폐쇄적이고 위계적인 화교협회를 중심으로 조직돼 것에 비해 신화교는 학술조직이나 동업커뮤니티 등을 중심으로 다원적이고 개방적인 조직을 만들고 있다.
게다가 이러한 조직들은 한국의 주류사회와 긴밀한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있다. 물론 신화교 전체가 이른바 고학력 엘리트집단은 아니다. 오히려 합법적인 체류자격을 갖지 못한 정주자들이 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아마도 이러한 학력·직종별 차이의 엄존은 향후 신화교 내부에서의 교류와 소통을 저해하는 또 하나의 새로운 벽으로 다가올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에서 유학하고 있는 중국인 학생들의 상당수를 미래 한국 화교 사회의 ‘예비군’으로 상정할 때 신화교의 이미지는 구화교의 부정적 이미지를 상당부분 불식시킬 수 있는 가능성을 충분히 잠재하고 있다.
구화교와 신화교가 혼재된 한국의 화교·화인 사회는 중국과 대만의 정치적·이념적 격동에 따라 위태로운 줄타기를 계속하고 있지만, 반면에 중국과 대만 당국의 정책과 관계없이 그 양상을 달리하며 꾸준히 공생의 길을 모색하기 시작하고 있다. 그러면서 화교사회는 끊임없이 성장하고 있고 성숙돼 가고 있다.
신·구화교 모두 그들의 공통과제이자, 목표는 어떻게 하면 자신들이 한국사회의 일원으로서 융합될 수 있을까 하는 데에 있다.
그렇다면, 화교·화인을 포함한 다양한 마이너리티가 한국 사회를 만들어 가는데 동참할 수 있는 길을 활짝 열어주는 것이 우리의 과제이자 임무일 것이다.
법적으로 한국 화교는 여전히 ‘국내 체류 외국인’에 지나지 않는다. 따라서 65세이상의 화교 노인이 영주권을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한국의 노인들이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 무임승차하는 것과 같은 혜택을 공유하지 못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또한 영주권을 획득한 화교들은 지방자치단체선거에서 선거권은 있으나 피선거권은 받지 못하고 있다. 대통령선거나 국회의원선거에는 아예 참여조차 할 수 없다.
이뿐만이 아니다. 화교는 지역 연금에도 가입할 수 없고 금융거래에도 상당한 제약을 받고 있으며 인터넷 이용 및 휴대폰·자동차 구입 등에서도 한국인이 누릴 수 있는 각종 혜택에서 상당 부분 배제돼 있다.
화교협회도 외국인단체로만 등록돼 있기 때문에 수익금에 대한 소득공제를 받지 못한다. 이외에도 화교들이 한국 사회에서 감당해야 하는 부당한 처우는 수없이 많다.
이제는 한국인과 한국 사회가 변해야 한다. 전통적으로 존재해왔던 ‘화교 멸시관’ 같은 심리적 편견을 극복해야 함은 당연한 일이다.
아울러 각종 법적·제도적 차별이나 배제도 시급히 개선돼야 한다. 이 같은 해묵은 숙제들에 대한 우리의 노력이 선행될 때, 비로소 화교에게 한중간 교류의 진정한 가교 역을 요구할 수 있을 것이다.
연세대학교에서 중국현대문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현재 인천대 중국학술원 부원장 겸 교수를 맡고 있다. 중국학술원에서 화교생활사 및 화교관행을 연구하고 있다. 논문으로는 ‘한국 화교’ 연구의 현황과 미래 등이 있고 저서로는 ‘동남아화교와 동북아화교의 마주보기’(공저), ‘그래도 살아야 했다’ 등 다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