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신심사 자율성 주겠다는 당국 발표에 은행권 '멘붕'
2017-11-27 16:28
정부가 최근 발표한 '금융회사 여신심사 선진화 방안'은 금융기관에 자율성을 대거 부여한 점이 과거 가계부채 대책과 다르다. 금융회사가 지켜야 할 최소한의 규제 목표와 수준만을 제시하고 세부적인 사안에 대해서는 금융기관이 자율적으로 정하도록 한 것이다.
하지만 금융사들은 난감한 기색이다. 차주의 장래예상 소득을 DTI에 반영하는 것과 관련해 보다 구체적인 가이드라인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추후 문제가 되면 책임을 금융사에 돌릴 수 있다는 주장이다.
금융당국이 26일 발표한 ‘금융회사 여신심사 선진화 방안’에 따르면 금융기관은 2년치 근로소득을 증빙한 차주의 장래소득 증가가 예상될 경우 증가분을 DTI에 반영해야 한다. 소득이 증가하면 받을 수 있는 주담대 금액이 늘어날 수 있다.
현재는 만 40세 미만 무주택 근로자만 장래소득을 반영할 수 있었으나 앞으로 나이 제한도 없앤다. 만기 10년 이상인 비거치식 분할상환 대출에 한해서 2년간 근로소득 증빙자료를 제출한 차주는 예상되는 장래소득을 반영할 수 있다. 배우자가 2년치 근로소득 증빙자료를 제출하면 배우자의 장래예상 소득 증가분도 소득에 반영 가능하다.
이전과 다른 점은 금융회사가 통계정보 등을 활용해서 장래소득 인정기준을 마련하고 소득 증액한도 비율을 설정할 수 있게끔 자율성을 준 것이다. 이러한 자율성을 통해 은행의 여신심사 능력이 제고될 수 있을 것으로 당국은 기대한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현재 은행마다 대출금리가 다 다르듯 대출한도도 달라질 수 있다”며 “고객들이 금리와 대출한도 비교를 통해 은행을 선택할 수 있어 금융회사의 자율성은 물론 소비자의 선택권을 보장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금융사들은 난색을 표하고 있다. 차주의 예상 장래소득을 반영하는 것과 관련, 장래소득을 평가할 데이터를 보유하고 있지 않을 뿐더러 어떤 데이터를 어떻게 적용해야 할지 난감하기 때문이다.
금융권 관계자는 "소득을 어떻게 결정하는지에 따라서 DTI값이 바뀌기 때문에 매우 민감한 문제다"라며 "추후 감사를 받을 때 부족한 점을 지적하고 나서면 매우 난감할 것이다. 최소한 검증된 데이터를 사용해야 하는데 고민이 많다"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당국에서는 '차주의 연소득과 실제 상환 부담 정도를 감안해서 예상되는 장래소득 증가분을 반영하라'고 하는데 차주의 실제 상환부담이라는 말이 너무 애매하다"며 "연소득별, 직무급별, 업종별 등 여러 측면에서 다각도로 살펴 보고, 차주의 현소득이 향후 평균소득과 비교해 얼마까지 인상될 수 있을지 등을 감안해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앞서 DSR의 도입을 두고 금융당국이 금융기관의 자율성을 보장하겠다고 하자 은행권에서는 DSR 산출방식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요구하기도 했었다. DSR이 제대로 운영이 되지 않아 부작용 등이 발생했을 때 이 책임을 당국이 아닌 금융기관에 전가하려는 것이다는 주장이 많았다. 이로 인해 이번 여신심사 선진화 방안에 DSR 산출 기준이 담겼다.
금융권 관계자는 "폭증하는 가계부채가 최대 현안인 가운데 금융기관에게 자율성을 준다고 하는데 우려가 큰 게 사실이다"며 "추후 문제가 발생했을 때 자율성을 줬다는 이유를 들며 문제의 책임을 떠미는 것은 아닌지 우려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