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광웅의 데이터政經] 인사(人事)로 풀어보는 트럼프의 대(對)동북아 셈법 - 대북 선전포고 아니면 직접 수금하기인가
2017-11-06 18:00
[최광웅의 데이터政經]
- 대북 선전포고 아니면 직접 수금하기인가
최근 한 보수언론이 문재인 대통령의 홍종학 중소벤처기업부장관 후보자 지명에 대하여 ‘캠코더(캠프·코드·더불어민주당)’ 인사라고 풍자했지만, 정권을 차지한 정당이 책임정치라는 명분으로 장·차관은 물론이고 국장급까지 독차지하는 미국 풍토에서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인사(人事)는 그야말로 국가 최고책임자가 그의 국정철학을 구현하기 위해 그에 걸맞은 인물을 찾아 배치하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인사야말로 가장 고도의 정무활동이다. 대통령제 국가에서는 대통령실에서 엄격한 인사검증을 거쳐 국회 인사청문회를 거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연정이 일반화된 내각제 국가는 연립내각에 참여하는 각 정당이 장관 후보를 내놓고 심지어 1년 가까이 줄다리기를 하는 일도 흔하다.
취임 6개월을 앞둔 문재인 대통령은 중소기업벤처부장관 때문에 아직도 국무회의 구성이 미완이지만 취임사를 통해 “지역균형, 능력과 적재적소, 대탕평의 인사원칙”을 약속하였고 필요 시 삼고초려까지도 언명하였다. 지난 장미대선 과정에서 문 대통령이 표방한 슬로건은 “소득주도성장”이다. 그 결과 청와대 정책참모진에는 장하성 정책실장, 홍장표 경제수석, 김수현 사회수석, 김현철 경제보좌관 등과 같은 사민주의적 인물들이 포진해 있다. 이들은 문 대통령을 가장 잘 이해하고 있다.
이러한 트럼프의 철학은 이미 대선 당시 “멕시코 국경선에 높은 장벽을 설치하겠다”는 등 수없이 남발한 주요공약으로 표현된 바 있다. 그를 백악관 주인으로 만들어준 핵심지지자들은 대부분 북동부 러스트 벨트 지역 백인 남성들이다. 그렇기 때문에 트럼프는 당선되자마자 그의 구상을 실현할 국무장관으로 엑손모빌 최고경영자(CEO)인 렉스 틸러슨(65)을 지명하였다. 틸러슨은 대학 졸업 후 엔지니어로 엑손에 입사한 뒤 지금까지 엑손모빌에서만 무려 41년 이상 몸담아온 전형적인 기업인이다. 어떠한 공직경험도 전혀 없다. 하지만 그는 매우 뛰어난 국제적 협상가로 정평이 나 있다. 틸러슨은 2006년 매출액 세계 6위 기업인 엑손모빌의 회장이자 CEO로 선출되면서 진가를 발휘하기 시작한다. 러시아의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과 직접 협상한 것은 물론이고, 적성국가인 이라크 같은 나라의 지도자와도 ‘석유와 가스’를 앞에 두고 기꺼이 손을 잡았다. 특히 그는 관료주의 때문에 지지부진하던 170억 달러 규모의 북극석유사업권 문제를 해결하며 러시아 정부로부터 ‘우정훈장(Order of Friends)’을 받기도 하였다. 리콴유 전 싱기포르 총리, 반기문 전 유엔사무총장 등 기라성 같은 외국인에게만 수여된 훈장이다. 그래서 친 러시아·친 아랍 기업가로 분류되어 상원 인준이 어렵다는 전망도 나왔지만 공화당 소속의원 숫자보다 4표 많은 찬성 56, 반대 43으로 가결되었다.
동북아는 트럼프의 표현처럼 미국 우선주의가 가장 충돌하는 지점이다. 빅2인 중국을 비롯하여 대미 무역에서 오랫동안 수출 우위를 지켜온 일본이 있다. 예전보다 그 중요성은 약화되었지만 여전히 3강으로 불리는 러시아도 이곳에 자리한다. 그런데 트럼프가 보낸 초대 3강 대사 역시 국무장관과 마찬가지로 전원 장사꾼들이다.
브랜스태드는 주지사 출신이지만 그렇다고 단순한 행정가는 아니다. 한국방문을 통해 CJ제일제당으로부터 3억 달러 투자유치를 이끌어냈고 2014년 아이오와에 ‘그린바이오 공장’을 준공하였다. 그는 자신을 “아이오와 CEO”라고 부르며 농업위기 때문에 헤매던 주 경제를 살려냈다. 2010년 그가 다시 부임하며 1년 사이 늘어난 일자리가 직전 10년 평균 대비 6배가 넘었다. 처음 4기 연속 재임 동안에도 실업률을 8.5%에서 2.5%까지 크게 떨어뜨렸다.
한편 브랜스태드는 공화당 대선 경선 전 첫 번째 관문인 아이오와 코커스에서 트럼프를 지지하였고 본선에서도 아이오와 선거운동 책임자를 맡았다. 그만큼 그는 ‘일자리 창출’을 내건 트럼프와 흡사한 코드이다. 그렇기 때문에 찬성 82, 반대 13으로 상원 인준을 가볍게 통과한 브랜스태드의 역할은 CEO형 대사이다. 중국으로부터 더욱 많은 경제적 양보를 받아내는 일이다.
연일 북한 미사일이 동해바다를 넘나드는 가운데 초대 주일 미국대사에 지명된 인물 역시 외교관은커녕 공직경력도 전무하다시피 한 윌리엄 해거티(57)이다. 그는 월가 맨으로 ‘해거티 피터슨 & 컴퍼니’라는 사모펀드의 공동창업자 출신이다. 1984년부터 보스턴컨설팅그룹에서 근무했는데, 국제비즈니스 컨설턴트 자격으로 3년간 도쿄에 체류한 경험 때문에 공화당 일부에서는 지일파(知日派)라고 주장한다. 실제로 그는 고향인 테네시 주에 브리지스톤과 같은 일본기업 투자유치에 종사하는 등 일본 경제계에 폭넓은 인맥을 갖고 있다.
그는 대선캠프 등 정치권 언저리에서 활동해왔으나 주류는 아니었다. 조지 H.W. 부시 정부 당시 1991년부터 2년간 백악관에서 댄 퀘일 부통령의 통상·재무·국방·통신 정책연구보고정책 스태프 일을 맡은 게 고위공직의 전부다. 2011~15년에는 테네시 주정부 통상담당 비서로 재직하기도 하였다. 2012년 대선 때는 공화당 롬니 후보를 도왔으며, 지난해 공화당 경선과정에서는 잽 부시 전 플로리다 주지사를 밀었다. 트럼프 선거운동본부 참여 후 정권인수팀에서는 각료급 인사추천 및 대외협력업무를 담당하며 트럼프의 정치적 신뢰를 쌓았다. 이런 그를 민주당 상원의원들조차도 인준에 대부분 찬성표(찬성 86, 반대 12)를 던진 게 바로 미국이다. 바로 미국 우선주의가 먹혔기 때문이다.
3강 대사 중 러시아 대사만 유일하게 외교관 경험이 있다. 그렇다고 직업외교관 출신은 아니다. 존 헌츠먼 대사(57)는 대만에서 2년간 선교사로 활동한 적이 있으며 이때 중국어를 익혀 지금도 중국어가 유창하다. 중국에서 딸을 입양해 ‘중국통’으로 불린다. 1983년 대학 졸업과 함께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 당시 백악관 인턴으로 정치에 입문하였다. 1989년부터 국제무역청(ITA) 차관보와 상무부의 아시아태평양지역 통상담당 차관을 거쳐 1992년 금융 중심지 싱가포르 대사에 임명된다. 불과 32세의 나이였다. 이는 100년 이내 최연소 미국대사 기록이다. 2004년에는 유타주 주지사로 출마해 당선되었고 4년 뒤 무려 77%의 득표율로 재선되었다. 임기 종료 후엔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다시 무역대표부(USTR) 부대표로 불렀다. 또한 2009년 버락 오바마 정부에서 주중대사로 발탁되어 역대 최장수(7년) 중국대사를 기록을 남겼다. 이렇듯 존 헌츠먼은 공화·민주 양쪽 정부를 넘나들며 주로 통상전문가로 활동해왔다. 당파를 떠나 두루 좋은 평가를 받았기 때문에 상원 인준을 만장일치로 통과하고 지난 10월 2일 모스크바에 부임하였다.
헌츠먼 대사 지명은 미국과 러시아 사이에 긴장이 고조되던 지난 7월 18일에 이루어진다. 미 정보당국은 러시아가 지난해 미 대선기간 민주당전국위 본부 이메일을 해킹하는 등 미국 선거 에 개입하였다고 밝힌 직후이다. 따라서 30년 동안 복잡한 통상 분야에서 활동하며 이익의 균형점을 찾기 위해 노력해온 헌츠먼은 미-러 관계 복원에 큰 역할이 기대된다.
미국은 주로 정무능력이 뛰어난 정치인 또는 대통령 측근인 대사와 그를 보좌하는 직업외교관인 부대사(DCM) 체제로 공관을 운영한다. 베테랑 외교관 리처드 크리스텐슨은 주한 미극 부대사와 주일 부대사 등 한·일 양국에서만 무려 22년간을 근무하였다. 기업 CEO출신 국무장관과 CEO형 주지사 출신 중국대사, 월가출신 금융가인 일본대사, 통상전문가인 러시아대사 등 3명의 동북아 3강 대사. 이 조합이 말해주는 트럼프의 메시지는 과연 무엇일까? 그것을 제대로 읽어내면 우리 한국도 셈이 최소한 절반은 지지 않고 들어간다. 트럼프의 국빈방문을 앞두고 아직도 “양키 고홈”을 외치는 길이 온당한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