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으론 중국에 꼭 필요한 업종만 성공할 것”

2017-11-02 18:04
[인터뷰] 최용민 무역협회 국제무역연구원 동향분석실장
中 양적 성장 끝나고 질적 성장, 기술력 높아져 韓 기업과 경쟁
한국서 환영받지 못하는 제품 중국서도 실패할 확률 높아

“지금의 상황은 축구로 치면 전반전이 끝나고 후반전에 들어가기 직전의 하프 타임입니다. 본격적인 후반전에 들어가기 전에 우리는 만반의 준비를 해야 합니다. 새로운 위밍업 포인트는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중국이 고속 성장기를 마무리하고 있다는 점이고, 다른 하나는 리스크가 커졌다는 점입니다.”
 

최용민 국제무역연구원 동향분석실장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집권 2기를 맞아 한국 기업들의 생존법에 대해 말하고 있다. [사진=박세진 기자]



지난달 30일 강남구 삼성동 무역센터 트레이드타워 48층에서 만난 최용민 한국무역협회 국제무역연구원 동향분석실장은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의 집권 2기가 시작된 지금의 상황을 축구의 하프타임에 비유하며 달라진 상황에 따른 새로운 전략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최 실장은 “중국이 고속성장하고 있을 때는 우리와 부딪힐 일이 별로 없었지만 고성장이 끝나고 보완관계에서 경쟁관계로 넘어간 지금은 사정이 크게 달라졌다”며 “오히려 우리보다 기술력이 앞서거나 비슷한 상황이어서 경쟁자인 우리에게 점점 더 인색해지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과거에는 외국자본에 대해 떠받들거나 환영하는 분위기였지만 지금은 외국자본에 대해 오히려 더 엄격한 법 적용을 강조하고 있다”며 “외국자본은 현지의 법이나 관행에 대해 잘 모르고 있을 뿐만 아니라 발생하는 상황에 대한 대처 능력도 크게 떨어지는 것이 현실”이라고 리스크 관리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최 실장의 이야기는 후반전을 맞이하는 큰 틀의 변화, 즉 고성장시대의 폐막과 리스크 증가라는 두 줄기의 큰 흐름을 정확히 알아야 적절한 대응이 가능하다는 것으로 집약된다.

최 실장은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문제로 한중 양국 관계가 소원해진 것과 관련, “‘포스트 차이나(Post China)’라는 용어가 회자되고 있는데 이것은 잘못된 인식”이라며 “우리나라 수출의 4분의 1을 차지하고 있는 중국을 도대체 어떻게 버릴 수 있다는 말인가”라고 반문했다.

그는 대신 ‘차이나 플러스 원(China+1)’이라는 용어가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차이나 플러스 원’은 중국과의 관계를 최대한 좋은 상태로 유지하면서 인도나 인도네시아, 베트남 등 아시아권으로 시장을 다변화하는 것을 의미한다.

최 실장은 “급변하는 중국시장에서 한국 기업들이 생존하기 위해서는 ‘중국을 위한 연구개발(R&D for China)’에 힘을 쏟아야 한다”며 “중국으로 왜 진출해야 하는지 이유가 명확해야 하며, 중국으로 진출할 경우에도 중국 기업과 최소한 5~10년은 경쟁력에서 차별화를 꾀할 수 있는 분야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R&D for China’는 경영전략은 물론 제품 개발과 마케팅 등 모든 분야에서 중국에 특화된 연구개발이 필요하다는 의미”라고 설명하고 “그런 노력이 결실을 맺을 때 그것이 바로 우리 기업들의 ‘최종 병기’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최 실장은 인터뷰가 진행되는 동안 서너 차례에 걸쳐 “중국일 수밖에 없는 이유를 찾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중국에서 꼭 필요한 기술이나 제품인지를 냉철하게 생각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국에서는 더 이상 희망이 없으니까 중국으로 간다는 생각은 실패의 지름길”이라는 것이 그의 지론이었다. 환영받지 못하는 기업이라면 중국에서 생존하기가 그만큼 어렵다는 이야기다. 그만큼 중국 기업들의 기술력과 경쟁력이 높아졌고, 중국 국민들의 안목이 높아졌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최 실장은 리스크 관리에 대해서도 몇 가지 조언을 했다. 철저한 현지화와 기업의 사회적 책임에 대한 내용이었다.

“기업들은 철저하게 중국 현지화를 실현해야 합니다. 중국 현지 법인은 중국 전문가들에 의해서 운영되고 관리돼야 합니다. 그리고 기업들이 현지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방안도 모색해야 합니다. 우리로 치면 기업의 사회적 책임(CSR)에 해당합니다.”

그는 또 “덩치 크고 몸이 무거운 곰 같은 대규모 투자보다는 날렵하고 민첩하게 움직일 수 있는 치타 같은 적정 규모의 투자가 바람직하다”며 “리스크 관리 측면에서도 단독투자 보다는 합작투자를 권장한다”고 말했다.

최 실장은 합작투자와 관련해서는 “큰 기업 보다는 특정 분야에서 나름의 기술력을 가진 똘똘한 중국기업과 합작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는 “과거에는 우리 기업들이 생산에서부터 유통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에 신경을 써야했지만 지금은 핵심 기술과 노하우만 장악하고 나머지 분야는 파트너십을 맺은 현지 기업들에게 맡기는 것이 바람직한 비즈니스 모델”이라고 말했다.

그는 “외자기업의 장점을 최대한 살리면서도 중국 사회에 깊숙이 파고들고, 합작기업과의 이익 공유를 통해 실리를 추구하며, 품질과 서비스를 철저하게 차별화시키는 전략이 중국시장에서의 합리적인 생존법”이라고 재차 강조했다.

최 실장은 또 “우리에게는 신창타이(新常態‧New Normal, 고속 성장기를 지나 중고속의 안정성장 시대를 맞이한 중국 경제의 새로운 상태)라는 용어보다는 신예타이(新業態, 새로운 유망업종)라는 용어가 더 매력적으로 들린다”며 “중국에서 필요로 하고, 우리가 중국에서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부분, 예를 들면 4차 산업과 우리가 처리기술에 있어 앞서가는 반도체, 5G, 사물인터넷, 의료, 환경, 에너지 분야에서 새로운 루트를 찾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와 함께 “베이징(北京)과 상하이(上海) 같은 대도시 위주의 진출에서 벗어나 3선과 4선 도시로의 진출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시진핑 주석의 ‘샤오캉(小康)사회(국민들이 기본적 복지를 누리는 사회)' 건설 의지와 부합하기 때문이라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최 실장은 우리 기업의 생존을 위해 ‘국강민약(國强民弱)’이라는 또 하나의 키워드를 제시했다. ‘중국의 국영기업은 강하고 민간기업은 약하다’는 의미다. 그는 “중국은 공룡처럼 거대한 국영기업이 전체를 리드하는 체제이며, 정부는 국영기업에 민간자본을 투입해 경쟁력을 강화시키는 전략을 펼치고 있다”고 말하고 “우리 기업들은 중국의 공급 측 개혁(생산자, 또는 공급자들의 생산효율을 개선해 경제발전을 유도한다는 국가 시책)에도 관심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중국이 많이 생산하고 잘 생산하는 것은 조만간 세계적으로 공급과잉이 될 가능성이 높다. 최 실장이 차별화 시킬 수 있는 제품 개발과 생산을 통해 ‘전략적 우위’에 설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고 강조하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최 실장은 “우리 기업들이 ‘기울어진 운동장(불공정하다는 의미)’이 없는 중국에서 살아남으려면 철저한 차별화와 현지화, 끊임없는 기술 개발 노력이 필요하다”며 “아직도 중국은 우리에게 좋은 기회이자 엄청난 기회”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