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직자 기고] '대의명분' 의리, 그리고 조선을 망친 정치사상

2017-10-26 08:47

 ▲ 농림축산식품부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 한종현 충청북도 지원장.

조선조때 주변정세에 밝았던 광해군은 후금을 치는데 도와달라는 명의 요구에 임진왜란때의 명의 지원 등 때문에 차마 거절못하고 강홍립 장군에게 상황을 보고 알아서 처신하라고 지시했고, 강 장군은 싸우는척하다가 투항했다.

이러한 실리외교는 당시 사대부들의 정서에 맞지않았고 인조반정 이후 친명반청 정책을 펴다가 두번의 호란을 맞았다. 두번째인 병자호란 때 인조는 남한산성에서 버티다가 치욕적인 항복을 했고 이것이 최근 상영중인 영화 "남한산성"의 주 소재가 된다.

이후. 두왕자가 청에 끌려갔는데 형인 소현세자는 우리가 힘을 기르기 위해서는 청나라의 선진문물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생각을 갖었고 둘째인 봉림대군은 군사력을 길러 청나라에 복수해야 한다는 북벌론을 주장했다.

당시 조선의 사대부들에게 소현세자의 생각은 말도 안되는 생각이었고 아버지 인조도 큰 아들을 미워했다. 결국 소현세자는 병사 (독살?)하고 둘째가 왕을 이으니 효종이다.

효종은 군사를 길러 북벌을 도모했으나 시도도 못했고(솔직히 당시의 군사력을 감안시 조선의 군대가 청의 8기군의 상대가 되지 못했다.), 당시 이런 사대부들의 생각을 정리한 이론이 송시열의 대의명분론이다.

명이 임진왜란 때 우리를 도왔으니, 의리상 명을 끝까지 지지해야 한다는 대의명분론은 조선 후기의 대표적인 정치사상이요 지금까지 그 명맥이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

그런데 외교는 어디까지나 실리가 중요하지 의리때문에 망해가는 명나라를 지지한다는 생각은 참으로 순진하고 어리석은 생각이 아닐수없다. 임진왜란으로 피폐해진 조선이 곧이은 두번의 호란으로 제대로 회복되지 못하고 나라가 거덜나고 이후 계속 헤매다가 망한것이 아닌가하는 생각도 든다.

영조의 경우도 많은 치적에도 불구하고 의리와 명분때문에 실정이 적지 않았다. 아버지 숙종과 형인 경종 시절 노론이 그를 끝까지 지켰다는 의리때문에 그의 재위기간동안 노론이 정치를 좌지우지하면서 국정을 농단했음에도 건들지 않았다. 이는 아들 사도세자가 소론과 손을 잡자 노론의 말을 듣고 결국 죽이기까지한 이유이기도 하다.

결국 조선 후기의 의리 중시 정치는 패거리 정치를 낳게 만든 원인이 되었다. 같은 당파사람이면 왠만큼 잘못을 해도 동지이기 때문에 의리상 저버릴 수가 없는것이다. 이러한 사상은 사실 현대까지 이어져 내려와서 현대인 한테도 많은 영향을 끼치고 있다.

사실 현대의 정치인이나 공무원, 조직구성원들도 합리성과 계약에 기반을 둔 서구의 합리주의적 인간관계나 조직문화에 영향을 받으면서도 과거부터 내려온 이러한 의리, 명분론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받고있는것 같다. 그래서 한국사회에서 패거리 또는 코드 정치(또는 조직문화)가 쉽게 없어지지 않는것이다.

능력이나 성과보다는 조직에 대한 충성심을 중시하고 여기에 학연, 지연 등 연고주의까지 합쳐져 패거리 정치, 조직 문화를 만드는 것이다. 이러한 패거리 정치, 문화는 결국 무능하지만 조직내부에 대한 충성심 높은 정치인, 공무원 등이 중요한 자리를 차지할 가능성을 높여 국가의 중대사를 제멋대로 결정, 처리하게 하고 나라의 예산 등 자원을 낭비하게 할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선거와 관련된 정치활동이나 조직관리에 있어서 의리나 명분을 중시하는 생각은 바람직하지 않다. 현실 정치에서 실리와 합리성, 능력, 자질을 중시하는 서구식 사고방식으로 바뀌어야 나라의 미래가 밝아지리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