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현장 보러 왔어요"…우리는 국정농단 '프로 방청러'
2017-10-10 16:02
"최고의 권력자가 재판받는, 역사의 현장을 보려고 왔어요."
10일 오전 10시 서울 서초동 중앙지법 5번 법정 출입구 앞. 이날 박근혜 전 대통령의 재판을 보러 경기도 안양에서 온 정모씨(23·여)는 다소 상기된 얼굴로 "이런 재판은 앞으로 몇 년간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씨는 "전두환·노태우 두 전직 대통령 이후로 20여년 만에 국가 최고 권력자가 다시 법정에 섰다"며 "한때 국민의 손으로 직접 뽑은 대통령이 어떤 법적 판단을 받게 될지 직접 봐야겠다는 생각에 방청을 신청했다"고 말했다.
가장 큰 변화는 치열한 방청권 경쟁이다. 지난 5월 23일 박 전 대통령 첫 정식 재판의 방청권 경쟁률은 7.7대 1, 8월 25일 이 부회장의 재판 선고 날 경쟁률은 15.1대 1로 역대 최고를 기록했다.
두 재판 모두 150석 규모의 417호 대법정에서 진행됐는데, 박 전 대통령의 첫 재판 때는 일반인에게 68석이 배정됐고, 이 부회장의 재판 선고 때는 이보다 줄어든 30석이 배정됐다. 선고 날인 만큼 보안과 피고인 가족석 확보 등의 문제가 영향을 미쳤다.
도곡동 주민인 50대 이모씨(여)는 이날까지 박 전 대통령 재판을 총 13번 지켜봤다. 이씨는 "대통령이 걱정돼서 방청권 추첨에 응모했다"며 "13번 방청은 많은 것도 아니다. 방청권 추첨에 더 여러 번 당첨된 사람도 있다"고 아쉬워했다.
이날 중앙지법 서관 1층 입구에서 만난 이모씨(64·남)는 "박 전 대통령의 재판 진행 상황이 궁금해서 왔다"며 "재판 전체가 다 궁금하다. 특히 그동안 무수히 많은 증거가 나왔는데도 박 전 대통령이 하나도 인정을 안 한다는데 왜 그런지 의아스럽다"고 말했다.
5번 법정 출입구를 지키던 법원 직원은 "국정농단 재판 방청권 신청자와 당첨자 중에는 박 전 대통령 지지자가 많다"면서도 "재판 자체에 관심을 두고 온 이들도 물론 있다. 젊은 층도 간혹 눈에 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시민들의 국정농단 재판에 대한 관심과 참여를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고강섭 경희대 사회학과 교수는 "그동안 시민들이 자신이 살고 있는 국가에 대한 책임을 방관했던 게 현실이지만 직접 촛불정국을 경험하면서 국가에 대한 주인의식이 향상됐고, 이것이 참여로 이어진 것"이라고 분석했다.
고 교수는 "또 다른 하나는 정치 효능감"이라면서 "시민들이 사회 문제에 대해 반감을 가지고 행동을 취했고, 행동에 대한 결과물이 나왔기 때문에 결과물을 눈으로 직접 확인하고 싶은 것"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