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바 메모리 매각]조직을 위한 ‘리더’가 없었다
2017-10-03 17:05
도시바 메모리의 교훈 - (2)
2017년 2월 도시바의 메모리 사업부 결정 이후의 과정은 이미 많은 언론 보도를 통해 드러났기 때문에 다시 언급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 다만, 왜 이렇게 상식에서 벗어난 행동을 글로벌 기업 도시바가 벌였는지에 대해서는, 도시바의 지배구조 체제를 이해해야 한다.
요약하면, 도시바에는 조직을 대표하는 리더가 없어 위기를 자초했다.
마이니치신문과 산케이신문 등 일본 주요 언론 보도에 따르면, 도시바는 100여개의 사업단위를 보유한 대기업이었지만, 이들 가운데 양대 축은 ‘가전계’와 ‘원자력계’였다. 도시바라는 한 이불을 덮고 있지만 두 사업은 임직원들의 경력과 사고, 사업 방식은 물론 조직 문화마저 전혀 달랐다. 가전은 꾸준히 성장해 나름 현금 창출원이 되어 왔으나 회사의 대외적인 이미지를 굳히는 것은 원자력을 포함한 ‘인프라’가 효과가 크기 때문에 어떤 조직이 우월하다고 내세울 수 없을 만큼 경쟁이 치열했다는 것이다.
따라서 일본 재계에서 “도시바는 사장이 바뀔 때마다 파벌이 바뀐다”는 말이 나올 만큼 가전계와 원자력계간 내부 파벌은 극심했다. 실제로 도시바는 1990년대 이후 사장을 두 파벌이 번갈아가며 맡아왔다. 즉, 타이조(가전 영업) → 오카무라(사회 인프라) → 니시다 아츠토시(PC) → 사사키 노리오(원자력) → 다나카 히사오(PC 부품 등의 조달) 식이다.
능력있는 경영인들이 파벌을 불문하고 사이좋게 최고경영자(CEO) 직을 돌아가며 오른다면 문제가 될 게 없다. 하지만 어느 파벌이건 ‘라이벌’인 상대방 파벌을 좋게 볼 리 없다. 회계부정 사건은 가전계 출신 니시다 고문과 원자력계 부문 출신 사사키 부회장간 갈등에서 비롯됐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사사키 부회장이 사장이던 시절(2011~2013년), 전임 사장인 니시다 고문보다 더 좋은 실적을 내기 위해 임직원들에게 실현 불가능한 실적을 올릴 것을 요구했다. 또한 회장이었던 니시다 고문을 부회장으로 강등시키는 등 양측 파벌간 갈등은 최고조에 달했다.
기업의 윤리를 넘어서면서까지 내부 혼란이 최고조에 달했지만 도시바 임직원들은 이를 막기 보다 그들의 지시를 따르고, 불법임을 알면서도 이를 실행했다. 특히 니시다 고문이나 사사키 부회장 모두 강력한 카리스마를 배경으로 임직원들을 강하게 밀어붙이는 독단적인 성격이라 직원들은 더욱 움츠러들 수밖에 없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회사를 살리기 위한 노력을 한 직원들은 거의 없었다는 것이다.
2015년 7월 일본 증권거래감시위원회(SESC) 제3자위원회는 보고서를 통해 “도시바 회계부정의 근본적인 원인을 ‘상명하달(上命下服)’식 경직된 기업 문화로 지목했다. 그만큼 직원들의 무사안일적 태도가 전자계와 원자력계의 사내 주류 파벌 다툼보다 더 큰 문제였다는 것이다.
◆“합의적?, 우유부단?”사토시’ 사장의 지나친 신중함
2016년 5월 도시바 사장에 선임된 쓰니카와 사토시 사장은 지난달 도시바 메모리 매각 계약을 체결했다.
그룹 재건을 위한 큰 발을 내딛었지만, 사토시 사장의 리더십은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하고 있다. 그는 가전계와 원자력계와는 다소 거리가 먼 ‘의료기기 부문’에 오랜시간 몸 담아온 인사다. 특히 그는 독단적인 성격의 이전 사장들과 달리 ‘합의를 중시하는 타입’으로 대내외적인 평가를 받았고, 도시바의 고질적인 문제, 사내 파벌을 극복할 수 있는 인물로 대두됐다. . 도시바 관계자는 “사람의 의견을 듣고, 그래도 갈등 때문에 화가 나더라도 경영 판단에 있어서는 동요하지 않는 성격의 그가 도시바를 위기에서 구해낼 적임자”라고 평가했다.
그러나 도시바 메모리 매각 절차에 들어가자 그의 우유부단한 성격은 문제를 일으켰다. 품에서 떠나보내는 메모리 사업부 임직원들의 서운함을 달래는 데 실패한 데다가, 합작사였던 미국 웨스턴디지털(WD)의 반발을 잡지 못해, 알짜기업 매각 당사자이면서도 주도권을 잡지 못한 채 스치는 바람에도 흔들리는 빈약한 모습을 보였다.
산케이신문 보도에 따르면, 도시바의 주요 거래은행 행장들은 지난 8월 중순 도쿄 도내에서 사토시 사장을 만나 “이제 WD로 매각을 결정하면 어떻겠느냐”고 제안했다고 한다.
당시는 도시바가 채권단에게 제시한 도시바 메모리 매각 시한인 8월 말을 보름여 앞뒀을 때다. 도시바가 6월 우선협상 대상으로 선택한 한미일 연합과의 협상이 정체되고, WD이 매각 금지를 국제중재법원에 제기한 소송이 발목을 잡아 매각 절차가 사실상 중단 상태였다.
사토시 사장은 한미일 연합과의 협상을 계속하겠다는 입장이었으나 일본 정부인 경제산업성과 주요 거래은행은 WD와 화해하라고 압박을 가했다. 결국 8월 24일 사토시 사장은 우선협상대상을 WD가 속한 ‘미일 연합’으로 바꾸겠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WD와의 협상도 진척을 보이지 못했다. 8월 30일 주거래 은행 간부는 자신을 찾아온 사토시 사장에게 불안한 마음을 드러내며 “정말 괜찮은 거냐”고 물었다. 사토시 사장은 “31일에 결정하려고 하지만 한미일 연합이 새로운 제안을 할 것으로 보여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답했다.
9월이 되어도 결정이 미뤄지자, 한 펀드 관계자는 미온적인 도시바에 대해 “봄부터 저 이런 상태다. 처음에는 5월경이라고 했다. 시간이 더 걸릴 것 같다”며 될 대로 되라는 식으로 체념과 불신을 숨기지 않았다.
이에, 주요거래은행이나 경제산업성 내에서는 ‘조정’을 강조하는 사토시 사장의 경영방침이 도시바 메모리 매각 지연의 화근이 됐다는 의견도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