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보기의 그래그래] 인연

2017-09-28 20:00

[최보기의 그래그래]

  [사진=최보기 북칼럼니스트·작가]




인연

사는 일이 만남의 연속인데, 만나서 좋은 사람과 만나지 말았어야 할 사람은 늘 섞여 있다. 세간의 이목을 끌고 있는 가객 고(故) 김광석의 죽음에 얽힌 사연을 지켜보자니 내밀한 부부간 속내는 모르겠지만 그와 부인은 만나서는 아니 될 악연(惡緣)이었던 것 같다. 그러나 어찌하랴. 가해자와 피해자, 쌍방 가해의 악연 역시 신의 섭리라 인간이 피한다고 피해질 수 있는 것이 아니니 말이다. 그저 치명적 악연을 만나는 일이 없길 기도할 수밖에.

그리하여 ‘인연’에 대해 종일 생각하게 된다. 인연 하면 먼저 떠오르는 것이 하숙집의 어린 딸 아사코와 이루지 못했던 사랑을 그린 피천득의 수필이다. "그리워하는데도 한 번 만나고는 못 만나게 되기도 하고, 일생을 못 잊으면서도 아니 만나고 살기도 한다. 아사코와 나는 세 번 만났다. 세 번째는 아니 만났어야 좋았을 것"인 인연 하나 없이 사는 사람이 어디 있을 것인가.

가깝게 지내는 사람들이 대략 5년 주기로 바뀐다는 말을 들었는데, 살아온 뒤를 돌아보자니 그게 틀린 말이 아니다. 5년은 아니더라도 학교, 직장, 사는 곳 등이 바뀌면서 가까운 지인들도 그때마다 달라져왔다. 당시에는 찰떡궁합처럼 어울렸지만 몸이 멀어진 후 세월이 흐르니 그저 무덤덤한 관계로 남아 있는 이들이 부지기수다.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에서도 멀어지는 것’이다. 하루하루를 살아내는 게 전쟁이라 그 많은 인연들을 일일이 챙기는 것도 어려운 일이다.

힘들게 대입 재수를 하고 있는 딸은 수능시험이 얼마 남지 않아서인지 몹시 까칠하다. 신경도 날카로워 말도 함부로 건네기 어렵다. 아빠로서는 한참 신나야 할 청춘이 종일 교실에 갇혀 고생하는 것이 안쓰러워 그저 잘해 내기를 지켜보는 수밖에 없다. 어젯밤 학원에서 늦게 돌아온 딸의 간식을 챙겨주면서 어쩌나 보려고, 정말 어쩌나 보려고 “딸, 아빠 딸로 와줘서 고마워” 했더니 의외의 답이 금방 왔다. 딸이 “나도~” 하는 것이었다. 밖으로 나온 아빠는 입이 귀에 걸렸다. 그래, 이것이 가족이구나. 서로 말은 없어도 가족은 늘 이런 것이구나 싶었다. 그렇다. 세상의 많고 많은 인연 중에 가족만큼 소중한 인연이 어디 또 있겠는가.

나는 고등학생이 되면서 그동안 아버지와 쌓인 불화를 아버지를 보지 않는 것으로 대신했다. 내가 아주 어려서부터 아버지는 돌아가실 때까지 가족들을 무척 힘들게 했다. 원인은 술이었다. 평소에는 그리도 좋은 아버지가 술만 취하면 180도 변했다. 고등학생이 돼 집을 떠난 후론 설이든 추석이든 방학이든 나는 고향에 가지 않았다.

결국 평생 동안 아버지 술주정을 감당하는 것은 온전히 어머니 몫이었다. ‘부부’의 인연이라 가능했겠지만 문 밖에서 급히 죽음을 맞았던 아버지의 관이 안방에서 나갈 때 ‘잘 가, 잘 가’라 쇳소리를 지르며 관을 내리치는 어머니의 막대기에는 살기가 흘렀다. 평생의 한을 푸는 일이겠기에 누구도 어머니를 말리지 않았다. 고인(故人)에 대해서, 더구나 고인인 아버지에 대해서 좋은 말만 해도 모자랄 지경에 나는 왜 아버지의 흉을 이리 공개적으로 보고 있는 것인가. 이런 불효자식이 어디 있단 말인가.

엊그제 대학 시절 이후 잘 듣지 않고 쌓여만 있던 음악 테이프들을 하나하나 뒤적거렸다. 테이프마다 얽혀 있는 인연의 가닥들을 더듬었다. 죽도록 사랑했다 이별했던 여인이 거기에 있었다. 젊어 세상을 스스로 등졌던 친구가 있었다. 한때 깊디 깊은 우정으로 동고동락했으나 지금은 어디서 무엇을 하며 사는지 모를 친구도 있었다. 어디서 무엇을 하는지 뻔히 알면서도 몇 년을 두고 서로 연락 한 번 하지 않고 사는 사람도 있었다.

그들을 하나하나 반추하는 사이, 음악 테이프인데 표면에 ‘아버지, 잊을 수 없는’이라고 내 필체로 적힌 테이프 한 개가 나왔다. 아! 나는 그 테이프의 존재를 잊고 있었다. 내가 대학생 때의 어느 날 아버지께서 술이 깬 아침에 들려드리려고 술주정을 녹음했던 테이프였다. 틀어봤다. 아들과 함께 찍은 사진 한 장 남겨주지 않았던 32년 전의 아버지가 그 안에 생생히 살아 계셨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테이프 플레이를 후다닥 중지시켰다. 나도 모르게 몸서리를 치고 있었다.

이 테이프를 어찌한단 말인가! 아내, 아들, 딸 그리고 남은 형제들에게 ‘여기 할아버지 계신다, 여기 아버지 있어요’라며 즐겁게 들려주지 못할 이 테이프를 어떻게··· 나에게 남아 있는 유일한 ‘아버지’인데 그냥 혼자서만 간직할까? 쓰레기통에 버릴까? 아버지 음성이 담겼는데 차마 쓰레기통에 버리면 되겠는가? 태울까? 아파트 앞 화단에 고이 묻을까? 아버지께서 묻히신 먼 고향 섬에 닿으라고 바다로 흘려 보낼까? 나 역시 술 마시며, 실수하며 살고 있지 않은가 말이다.

이제 낼 모레면 추석이다. 나는 그 녹음 테이프를 이번 추석 때 아버지의 묘소 옆에 고이 묻을 것이다. 그렇게 아버지와 불화했던 일들을 깨끗하게 삭제할 것이다. 오랫동안 좁고 긴 녹음 테이프 안에 부정하게 갇혀 계셨던 아버지를 가을의 창공에 훨훨 해방시켜 드릴 것이다. 좋은 것만 기억할 것이다. 새삼 아버지의 명복도 더 깊은 마음으로 빌 것이다. 아버지가 있었기에 지금의 나와 나의 아들과 딸, 또 그들의 아들과 딸이 존재할 수 있다는 그 명백한 사실 앞에서만 고개를 숙일 것이다. 아버지 살아생전 단 한 번도 하지 않았던 말도 기어이 할 것이다. “아버지! 사랑해요. 자주 멋졌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