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포커스]이전투구로 치달은 재건축 수주전, 승자도 치명적 상처
2017-09-28 14:00
강영관 아주경제 건설부동산부 차장
현대건설은 27일 결정된 반포주공1단지 재건축 수주전 승리로 어지간한 대형 건설사의 1년 수주액 규모인, 공사비만 2조6000억원에 이르는 '대어'를 낚게 됐다. 또 이를 통해 강남권 한강변의 재건축 교두보를 확보하게 됨에 따라 앞으로 재건축이 진행되는 압구정 등 강남권 사업에 상당한 우위를 점할 수 있게 됐다.
실제 현대건설은 업계의 맏형임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강남권에서 두각을 나타내지 못했다. 현대건설이 강남구와 서초구에 지은 아파트 평균 연식은 각각 18.4년과 23.1년에 달할 정도로 2000년대 이후 강남권에 공급이 많지 않았다. 2006년 '힐스테이트' 브랜드를 론칭한 이후에는 강남권에 단 2개 단지 공급에 그쳤지만 이번 반포1단지 수주로 그간의 부정적 평가를 일거에 뒤집었다.
현대건설이 이번 수주전의 승리로 가져갈 유무형의 이익이 엄청나지만 반대로 후유증도 만만치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이번 반포1단지 재건축 수주전은 그간 건설업계의 뿌리 깊은 잘못된 민낯을 여실히 보여줬는데, 현대건설도 예외는 아니었기 때문이다.
현대건설과 GS건설의 수주경쟁이 본격화되면서 반포 일대는 두 회사가 내건 광고영상과 현수막으로 도배됐고, 수십만원대의 굴비세트를 비롯한 선물공세뿐 아니라 고급호텔에서의 코스요리 제공 등 과열·혼탁경쟁이 난무했다. 과열경쟁이 극에 달한 시점에 '이사비' 문제까지 터졌다.
관례상 1000만원 안팎으로 책정해 지급돼 왔던 이사비의 경우, 현대건설은 이사비로 5억원을 무이자로 대여해 주거나 그 이자에 상응한 7000만원(세금 포함)을 현금으로 지원하기로 했다. 현대건설은 반포 주공1단지의 사업이 시공사가 조합과 함께 사업을 책임지는 공동사업시행 방식으로 진행되는 만큼 자신들의 수익을 낮춰 이 비용을 조합원들에게 돌려주겠다고 공언했다.
그러나 일각에서 이 금액이 곧 조합 사업비로 전가될 가능성이 크고, 동시에 도시및주거환경정비법상 금품제공 여부에 위배될 수 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결국 정부는 직접 법률 검토를 진행했고 7000만원은 사회 통념상의 '이사비' 범주를 넘어서 도시및주거환경정비법상 금지한 금품, 향응 또는 그 밖의 재산상 이익 제공으로 간주될 수 있다고 보고 지자체를 통해 시정명령을 내렸다. 정부가 직접 위법 행위를 검토하며 개별 아파트 단지 수주전에 개입하는 전무후무한 기록을 남긴 셈이다.
과도한 '제살깎기'로 수익성이 떨어질 것이라는 지적은 시공사가 결정되기도 전에 이미 우려됐던 상황이다.
현대건설은 조합원들에게 수입산 초호화 명품 브랜드 인테리어와 마감재 제공 등을 제시했고, 후분양제 조건도 내걸었다. 또 재건축초과이익환수제 면제를 책임지겠다고 했고, 일반분양 시 분양가상한제를 적용받더라도 조합이 제안한 최저 일반분양가를 보장하고 미분양이 발생하면 이를 인수하겠다고 약속했다.
수주전에 승리한 현대건설이 만약 그간 들어간 비용을 회수하기 위해 분양가를 올릴 경우 주변 집값 상승 등 또 다른 부작용이 우려된다. 과열·혼탁 경쟁을 지켜본 잠재적 부동산 수요자들에게 '강남 불패', '될 곳은 된다'는 생각을 한층 더 고착화시킬 수도 있다.
당장 다음 달부터 공사비 1조원에 육박하는 서초구 잠원동 한신4지구, 송파구 미성·크로바 등 강남권 재건축의 시공사 선정이 이어진다. 한신4지구와 미성·크로바 아파트에는 반포 주공1단지 못지않은 파격 조건이 제시됐다.
때문에 건설업계에서조차 재건축 과열 양상을 완화하고 투명성 제고를 위한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재건축 수주가 품질이나 설계가 아닌 '현금 전쟁'으로 흐를 수 있다는 염려에서다. 또 건설사들의 '출혈경쟁'이 지속되면 자칫 공멸할 수 있다는 위기감도 엿보인다. 현 시점에 바로잡지 못하면 과열경쟁과 부작용은 도돌이표처럼 재연될 것이 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