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종원칼럼] 안보는 협치가 아니라 일치라야 한다

2017-09-26 11:09

[남종원칼럼]

 

[사진=남종원 초빙논설위원· 전 JP Morgan 한국 대표]



안보는 협치가 아니라 일치라야 한다

우리는 정치인들이 근래에 "내로남불" 즉 "내가 하면 로맨스요, 남이 하면 불륜이다"라는 말을 자주 쓰는 것을 본다. 정치인들은 그들의 목표하는 바가 다른 정파의 것들과 다를 때, 가끔 그 용어를 쓰는 것 같다. 자신이 믿는 바에 따라 충분히 그런 용어를 사용할 수 있다고 본다. 그 이면에는 서로 다른 이념이나 소신에 따라 정책을 펴도 그것이 나라 전체에 치명적인 영향이나 손실을 끼칠 확률이 적다는 뜻을 함유하고 있었다는 것일게다. 따라서 국민은 그만한 시행착오는 얼마든지 견디어 주었다는 의미도 가지고 있었다고 본다.
우리는 과거에 보수와 진보를 자처하는 두 정치 그룹들이 정권을 잡아 국가를 운영하는 것을 보았다. 그런데 그들은 대부분의 경우 국민의 소리는 외면한 채, 자신들의 견해나 신념이 옳다고 주장하면서 정책을 이반했다고 볼 수 있다. 어느 정권이든 어떻게든 한 번 권력을 잡은 이상, 국회가 여소야대만 아니라면, 겉으로 보기에는 무소불위 식으로 정책을 펴나갔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그 만큼 대통령의 힘이 막강 했다고나 할까? 아니면 소위 측근이나 지인들이 그 주위에서 높은 자리 한 자리 해 볼 요량으로, 대통령이 옳거나 틀리거나 간에 온갖 아첨과 무조건적 복종으로 보필(?)했다고 밖에 볼 수 없다. 그래도 경제가 어느 정도의 성장을 보이는 한에는 국민들이 참았다고 본다. 이것도 정치 발전의 한 과정이겠구나 하는 심정으로 '언젠가는 좋아 지겠지' 라는 희망으로 버티었을지도 모른다. 왜냐면 6.25 전쟁 이후, 그만한 위기나 위험을 느낀 적이 없었기 때문이었으리라 사료된다.
그러다 어느 날인가 우리는 촛불의 힘이 타오르는 것을 목격하게 된다. 처음에 그리 대수롭지 않은 소고기 파동으로 시작한 촛불은 평화와 비폭력이란 엄청난 무장을 하고 점점 세력을 키웠다. 외국에서도 볼 수 없었던 평화적 시위를 통해 국민의 목소리가 도시 한 가운데서 꽃피기 시작한 것이다. 그 결과 우리는 오늘 평화적인 정권 교체와 희망을 보이는 듯한 새로운 정치 이념이 시작하는 것을 보았다. 많은 국민이 이제는 정말 국민의 목소리가 담뿍 담긴 평화로운 정치의 시대가 오는 것으로 희망에 가득 차있었다. 그런데 우리 국민에게 오는 시련은 아직 남아 있었다. 북한이다. 그들을 우리는 동족으로 믿었고 형제라 불렀었고 한 때는 엄청난 규모의 경제적 지원도 했었다. 그런데 그들이 가공할 만한 무기를 만든 것이다. 우리를 속인 것이다. 아니 우리가 보수 및 진보의 정치 이념에 속은 것이다. 누구는 이렇게 해야 북한이 핵을 만들지 않을 것이라 했고, 누구는 달리 해야 그들이 그러한 야심을 이룰 수 없다 했다. 누구는 어떤 대통령이 미국이 북한을 무력 공격하는 것을 막아 국가의 재앙을 피하게 되었다고도 했다.
결과는 그 모두가 정권을 잡기 위함으로 안보를 이용했거나, 아니면 정권을 잡은 후 자기 방식이 한반도를 영구적으로 안정시킬 수 있다는 신념과 확신(?)으로 자신들의 대북 정책을 이행했다고 볼 수 밖에 없다. 결론은 무엇인가? 오도가도 못하고, 물에 빠지고, 불에 거슬린 힘없는 생쥐가 된 꼴이 아닌가 걱정된다. 과연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도 우리가 주도적으로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주권 국가라면 무엇인가 주도적으로 전략을 세우고 차근히 실행할 수 있는 힘과 능력이 있어야 하지 않는가? 문제는 그 것이 무엇인가 잘 보이지 않다는 것이다. 이젠 정말 무얼 해야지?
더 큰 문제가 있다. 아직 우리의 정치권은 손을 맞잡고 해결책을 논할 준비도 안 되어 있다는 것이다. 어쩌면 죽기 일보 직전인데 과거에 '너네 들은 어땠는데? 그러는 너는 무얼 했는데?' 라는 과거 싸움만 하고 있다. 이스라엘을 보라. 자신들이 살기 위해 무엇을 했나?
우리는 북한과 지금 휴전 중이다. 전쟁이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전쟁이 끝난 후 어언 70년이 다 되어 간다. 우린 그 동안 무얼 했을까? 한반도 상태를 가정집에 비유하면 한 집에 테이프로 줄 그어 놓고 형제가 싸우고 있다가 잠시 휴전한 셈이다. 전에는 대화도 하고, 물건도 나누어 쓰고, 전쟁에 비하면 시시콜콜한 싸움도 해 보았다. 그러다 각자 아이도 낳고 그 아이가 아이를 낳는 사이 감정의 골도 깊어지고 이젠 눈 마주 치기가 무섭게 되었다. 서로 테이프 건너 있는 땅이 자기 것이라 우기고, 말을 듣지 않으면 형제고 동포고 무엇이든 간에 몽둥이나 주먹으로 치는 것이 아니라 수류탄이나 아니면 이젠 아예 핵으로 벌을 준단다. 그런데 둘 다 안다. 한 쪽이 핵을 쓰면 둘 다 죽는다는 것을.
우리는 게임이론을 배웠다. 그 이론대로 된다면 우리는 이제 무엇을 어떻게 해야 되나? 차라리 모르는 사이라면 헤어지면 그만이다. 그런데 우리는 한반도라는 한 집에 사니까 도망갈 수도 헤어질 수도 없다. 형제라도 헤어지면 그만이라지만 우리는 한반도를 반으로 나누어 산 형제라 저기 바로 보이는 내 땅을 포기하고 살 수 있는 입장도 아니다. 헤어질 수도 없다. 그렇게 사는 사이에 그 중 한 형제가 핵을 가지고 만 것이다. 겉으로는 핵 안 만들고 포기하겠다고 해놓고 모르게 만든 것이다. 왜 몰랐을까? 관심이 없었나? 우리의 국정원은 무엇을 했나? 아니면 정치권이 무시하고 살았나? 별의별 생각이 다 든다. 그런데 무서운 것은 그 형제가 다른 쪽을 향해 그 핵으로 무엇을 요구할까 하는 것이다.
그런데도 우리 쪽에서는 아직도 보수와 진보가 싸우고 있다. 중요한 것은 핵을 눈 앞에 놓고 시행차고를 할 수는 없는 것이 아닌가? 죽고 사는 문제를 놓고 과거를 가지고 싸울 수 없지 않나. 대통령을 뽑은 것은 대통령이 국민을 대신해서 안전하게 국가를 지켜 달라고 부탁한 것이다.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꿋꿋한 경제 성장을 해 온 한국 국민에게 물어보자. 한국 국민은 뭐래도 안보와 교육의 전문가이다. 그렇기 때문의 정치를 하는 위정자는 안보와 교육에 대해서는 국민에게 물어 보아야 한다. 그렇다고 여론 정치를 하자는 것이 아니다. 이미 정치인들의 상당수는 여론을 자신 정책 이반에 이용하고 있다.
죽고 사는 문제를 논의 하려면 당사자에게 물어 봐야 한다. 정치인들이 협치를 한다 해도 그것이 국민의 뜻과 다르다면 다시 생각해 봐야 한다. 핵으로 잘못되면 죽음이 기다릴 수도 있다. 핵에 대한 문제는 이 분야에서 전문가 중의 전문가인 국민에게 물러봐야 한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