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멈춰선 삼성' 총수 공백 리스크 더 커진다

2017-09-17 21:02

뇌물공여 등 혐의로 1심에서 징역 5년을 선고받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항소한 28일 오후 서울 서초동 삼성 사옥 위로 짙은 먹구름이 끼어 있다. [사진=연합뉴스]

 
사상 초유의 총수공백 사태가 장기화 조짐을 보이면서 삼성의 앞날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17일 재계와 법조계에 따르면 이 부회장의 항소심 첫 재판절차가 열흘 뒤인 오는 28일 시작된다. 이번 항소심 판결은 빨라야 내년 1~2월께 나올 전망이다.

삼성전자는 명실공히 글로벌 IT(정보기술) 기업이다. 급변하는 시장 환경에서 주도권을 놓지 않기 위해서는 해외투자자를 만나 소통하고 글로벌 트렌드를 파악, 빠른 투자 결정을 내리는 등의 리더십이 중요하다.

그런데도 지난 2월 17일 이 부회장이 구속 수감된 이후 최소 1년여의 기간을 서울구치소에 머무르게 될 형편이다. 재계 안팎에서 삼성이 총수의 부재로 중요 의사 결정이 지연돼 향후 글로벌 경쟁에서 뒤처질 것이란 불안감이 확산되는 이유다.

◆무너진 이 부회장의 글로벌 네트워킹, 멈춰선 삼성의 미래 먹거리 투자

이 부회장은 그간 한국을 대표하는 기업인으로 국제적인 행사에 참석해 글로벌 기업인, 각국의 정치 지도자들과 만나 미래 먹거리 사업의 투자 계획을 세워왔다.

삼성전자 고위 관계자는 “이 부회장은 비공식적으로 연간 수차례씩 외국을 돌며, 기업인과 현지 고위 관료들을 만나 그룹의 방향성에 대해 조율해왔다”며 “그러나 재판이 장기화되면서, 삼성의 미래를 결정짓는 이 같은 일들이 모두 멈춰섰다”고 푸념했다.

특히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문제로 경색된 중국 사업의 물꼬를 틀 것으로 기대됐던 보아오포럼에 이 부회장은 올해에 이어 내년에도 참석하지 못할 전망이다.

아시아판 다보스포럼이라 일컬어지는 보아오포럼은 매년 3월 말에서 4월초 중국 하이난다오에서 열린다. 중국 정·재계 고위 관계자가 한자리에 모이기 때문에, 국내 기업인들이 중국 내 인적 관계를 형성하는 중요한 행사로 여겨진다. 이 부회장은 보아오 포럼 이사를 맡고 있으며 2013년부터 4년 연속 이 포럼에 참석할 정도로 큰 관심을 보여왔다.

특히 중국이 반도체 시장에 공격적으로 투자를 확대하는 추세여서 중국 시장의 현황을 파악해 볼 수 있는 보아오포럼의 연속 불참은 삼성으로서는 치명적일 수밖에 없다.

또 매년 7월 미국 아이다호 중부 선밸리에서 열리는 '앨런앤드코 미디어 콘퍼런스' 역시 이 부회장이 2002년부터 15년 연속으로 참석할 만큼 중요하게 여긴 행사다. '억만장자의 여름캠프'라고 불리는 이 행사는 기업인들의 교류의 장으로, 비공개 세션에서 사업에 대한 실질적 논의가 오가는 것으로 알려져있다. 이 부회장은 그 동안 이 행사를 통해 워렌 버핏, 빌 게이츠, 마크 주커버그 등과 만나 인적 네트워크를 넓혀 왔다.

◆"삼성도 노키아·모토로라처럼 도태될 수 있다"

당장 삼성의 전체 그림을 그리는 사람과 조직의 부재도 큰 문제점으로 꼽힌다. 삼성은 계열사별로 전문 경영인 시스템이 체계적으로 구축돼 운영되고 있다 하지만 계열사 매각이나 투자, 인수합병(M&A) 등 삼성그룹 전체의 전략은 총수의 영향력이 크게 좌우해왔다.

실제 이 부회장은 그간 선택과 집중으로 부진한 계열사들을 정리하거나 끌어올리는 역할을 담당해왔다. 일례로 앞서 삼성이 화학, 방산 등의 계열사를 매각한 것은 전자 부문에 역량을 쏟아 1등 기업으로 키우려는 이 부회장의 큰 그림이었던 것으로 알려져있다.

최근 삼성전자는 올 2분기 반도체 호황에 힘입어 영업이익 14조원이라는 사상 최대 실적을 기록했다. 하지만 이면에는 주력 분야 중 하나인 소비자가전(CE)의 부진 등 위험이 감지되고 있다. CE 부문은 올해 2분기 매출액 10조9200억원, 영업이익 3200억원을 기록했다. 이는 전년동기 대비 각각 1%, 68%가 감소한 실적이다.

삼성전자가 가전에서 시장 우위를 잃지 않기 위해 제2의 혁신에 나서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전자업계 관계자는 “리더가 없는 삼성이 당장 변화를 시도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짚었다. 그러면서 “노키아나 모토로라처럼 시장에서 순식간에 도태된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고 덧붙였다.

재계 관계자는 "삼성은 전문경영인 체제이니 이 부회장이 사업의 디테일한 부분들을 일일이 다 파악하고 챙길 필요는 없다"면서도 "하지만 글로벌 기업인들의 네트워크를 활용하고, 계열사 간 업무를 조율하고, 전체 그림을 그리는 역할은 이 부회장을 대신할 사람이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