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도겸의 차 한 잔] 임병걸 시인의 '시로 읽는 경제이야기'

2017-09-07 10:15

서울 익선동에서 차(茶)인 박동춘 선생과 함께한 임병걸 시인(왼쪽)[사진=하도겸 박사 제공]


우리에게 현대사는 아픔과 고통의 시간의 연속일 수도 있다.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 등은 우리에게 ’가난‘이 무엇인지 생생하게 가르쳐줬다. 하지만 어느듯 가난은 먼나라의 이야기가 되었고 그 자리에 ’쾌락‘이나 ’디지털‘과 같은 단어가 대신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우리 주변에 일상의 삶과 무관하게 보이는 직업군이 있다면?'이라는 질문에 주저하지 않고 ‘시인’을 거론하곤 한다.

“시인은 결코 공중부양을 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그들도 밥을 먹어야 살 수 있고, 무언가 안정된 소득과 일자리를 갈망하며 때로 무엇보다 큰 위력을 지닌 돈을 갈망하는 소시민이기도 합니다. 시인들의 머릿속에도 늘 경제 문제 가 가장 큰 고통과 부담으로 자리한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시인들의 시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자연의 아름다움을 읊거나 삶의 희로애락을 노래하는 가운데 경제와 관련된 시,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먹고 입고 자는 문제를 포함해 생활 속에서 느끼는 애환과 고통, 갈망을 노래한 시가 아주 많이 섞여 있습니다. 꼭 참여시의 장르가 아니더라도 경제 제도와 현상의 모순이나 부조리에 대해 분노하고 비판하는 시도 많이 있습니다. 시는 결코 현실과 동떨어진 것이 아닙니다. 아니, 시는 어쩌면 가장 날카로운 감수성을 지닌 시인들이 누구보다도, 어떤 사회과학적 분석보다도 현실 경제를 예리하게 해부 하는 면도날일 수 있습니다.”

전쟁같은 삶을 살아가야 하는 시인. 시인들의 삶의 애환과 본질을 꿰뚫어보는 고통스러운 아름다움이 시에 있다. 그리고 그 시 속의 경제가 담겨져 있기도 하다. 시의 그릇에 담긴 경제 이야기. KBS 인터넷뉴스를 통해 네이버에 연재된, 총 누적 뷰어 200만 명이 넘는 '시로 읽는 경제이야기'(북레시피)가 임병걸 시인에 의해 세상에 나왔다.

맹자에 “항산(恒産)이 없으면 항심(恒心)도 없다”는 구절이 있는 듯하다. 먹고 살 최소한의 재산도 없다면 예의도덕 등의 마음도 지키기 어렵다. 끝없는 욕망을 소비하는 ‘지금-여기’에서 오직 시만을 꿈꾸며 살기를 우리가 시인에게 바라고 있다면 강요일 따름이다. 금욕주의는 경제 사정에서 유래한다는 마르쿠제의 말이 있다. 하지만 시인에게는 한 장의 지폐보다 한 장의 낙엽이 아까울 때가 있다. 시인의 삶과 시심(詩心)사이의 경계는 어디일까?

시인은 우주에서 원료를 퍼다 쓰니까 재료가 드는 일이 아니라고 너스레를 떨기도 한다. 그렇지만 밤을 낮 삼아, 낮을 밤 삼아 단어 하나, 문장 하나 건지겠다고 거대한 언어의 바다 속에서 바늘 하나 찾는 심정으로 애태우는 비용은 보통 가격이 아닐 것이다. 빨리빨리를 외치는 무한 경쟁 사회 속에서 완행열차나 아날로그의 낭만은 어느덧 사라지고, 동네 서점 대신 멀티플렉스 영화관으로 달려가는 세상이다. 숨 고르기를 할 틈도 없이 우리 곁에서 사라져 가는 일상을 소재로 한 ‘시’를 풀어낸 흥미로운 경제 이야기를 만날 수 있다.

이 가을 자본주의 시장경제라는 괴물의 발톱에 상처 입은 우리 모두에게 이 책에 담긴 시편들은 따스한 위안이 되어줄 것임을 확신한다.

※ 임병걸은 1962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대학에서는 법학을 공부했지만 법률보다는 세상에서 일어나는 현상들에 대해 알아보고 기록하는 일에 더 마음이 끌려 1987년 KBS 기자가 되었다. 도쿄 특파원 생활을 하면서는 한일관계를 깊이 들여다보았고, KBS 보도본부 경제부장과 사회부장을 지냈으며 시사토론 프로그램인 '일요진단' 앵커를 역임하였다. 현재는 KBS 해설위원으로 경제현안을 주로 해설하고 있으며 KBS 일본어 방송에서 시사 토론 프로그램 '금요좌담회'를 진행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