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인사이트] 역사적 건축물은 누가 만드는가?

2017-08-22 14:33

 


역사적 건축물은 비경제적이다.

기원전(BC) 490년 마라톤 전투의 승리를 기념해 아테나 여신에게 바쳐진 파르테논 신전은 대리석 건축물로 정면 25m, 측면 69m에 달했다. 사라졌지만 신전의 중앙엔 금과 상아로 만든 여신의 조각상이 있었다. 고대철학과 논리학의 발원지인 아테네에서 이 같은 초호화 건축이 가능했던 건 시공비와 금리, 적정 수익률 등의 현대적 계산법이 침해할 수 없었던 신에 대한 경외감이 있었기 때문이다. 

BC 2580년 건축된 이집트 푸쿠왕 피라미드는 한 변의 길이가 230.4m, 높이가 146.6m에 달했다. 축구장 두 배가 넘는 길이에 50층 초고층 아파트 높이의 무덤이 만들어진 건 돌더미에 깔려 죽을 수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수천명의 노예를 공사장에 몰아넣을 수 있었던 절대권력의 결과다. 

중국의 만리장성도 경제성을 따졌더라면 불가능했던 건축물이다. 북방 오랑캐의 침입을 막기 위해 국경을 총연장 2만1196㎞의 벽돌담으로 둘러치겠다는 발상 자체가 현대적 관점에서는 불가능하다. 

이들은 지금에 와 해당 국가에 막대한 관광수입을 안겨주는 선조들의 선물이 됐지만 건축될 당시에 의도된 건 아니다. 

현대 민주주의 아래서는 신성에 대한 경외감의 발로로서도, 절대권력의 결과물로서도 이 같은 건축물이 지어지기 힘들다. 뉴욕공공도서관 등 공공이 지은 랜드마크가 없지는 않지만 그것들 역시 파르테논 신전 등에 대한 오마주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그런데도 끊임없이 역사적 랜드마크들이 들어서는 건 발주처로서 절대권력의 역할을 막강한 자본이 이어받고 있기 때문이다.

왕정의 산물인 두바이 부르즈칼리파(높이 829.84m·160층)도 결국 나킬이란 오일자본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1928년 뉴욕 한가운데 70층 마천루(록펠러센터)가 들어설 수 있었던 것도 석유자본의 덕이었다. 잠실 한가운데 롯데월드타워(555m·123층)가 우뚝 서고, 삼성동 한강변에 569m에 달하는 글로벌비즈니스센터(GBC) 건축이 추진되는 건 롯데·현대차 그룹이 발주처로 나섰기 때문이다.

이들도 초고층 시공비에 비해 임대수익 등으로 벌어들일 수 있는 수익이 제한적이란 사실을 잘 안다. 절대권력에서 자본으로 주체가 바뀌었을 뿐 과시란 욕망의 뿌리는 같은 셈이다.

최근에는 공공과 민간이 접점을 찾으려는 시도들이 가시화하고 있다. 수익을 좇을 수밖에 없는 디벨로퍼들에게 공공성을 고려한 건축 계획을 제안토록 하고 공공기관이 대신 부지를 싸게 공급해 주는 민간제안형 PF가 대표적이다.

절대권력과 자본의 역할을 디벨로퍼와 공공기관의 콜라보(협업)로 대체하는 제3의 길인 셈이다. 이런 과정에서 추진 중인 세종시 방축천 공모형 PF 사업 등이 후손들에게 선물이 되는 건축물을 남길 수 있는 모범사례가 되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