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석규의 대몽골 시간여행-21] 샤먼은 어떤 역할을 했나? ①
2017-08-15 09:10
척박한 자연 환경 속에서 자연 친화적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는 유목민들, 그들에게 자연은 그 자체가 운명이고 숭배 대상이다. 그 가운데서도 하늘을 가리키는 텡그리와 땅을 가리키는 가자르는 최고의 숭배 대상이다. 하늘과 땅 사이에 있는 삼라만상은 그 다음 순서다.
최고의 숭배 대상으로 삼는 하늘과 땅은 샤먼(shaman), 즉 무당의 마음속에 깃들어 있다고 그들은 믿고 있다.
그래서 몽골 땅에 티베트 불교가 들어오는 16세기까지 몽골인들은 주술적인 샤머니즘(shamanism)에 젖어 살았다.
그 때까지 샤먼은 그들 생활에 절대적인 영향을 끼치는 인물로 인정돼 왔다. 그래서 몽골인들은 생활상의 모든 중요한 문제를 샤먼에게 의존했다.
▶ 공동유목으로 세력 확장
테무진은 부르테를 구출하기 위해 안다(친구)이자 초원의 또 다른 강자인 자모카와 연합전선을 펼쳤다.
그리고 전투가 끝난 뒤 자모카에게 공동 유목을 제의했고 자모카는 이를 받아 들였다. 유목인 집단 사이에 이루어지는 공동 유목은 최고의 정치적 연합 형태로 간주된다.
요즘으로 말하면 일종의 상호 안보 조약을 바탕에 둔 경제 공동체와 같은 성격을 가진 것으로 볼 수 있다.
▶ 가꾼 것은 가축이 아니라 사람이었다.
성대하게 잔치를 벌이고 밤에는 한 담요에 들어 함께 잠을 잘 정도로 시작은 순조로웠다. 그러나 두 사람의 마음은 처음부터 엇갈려 있었다.
당시에 훨씬 입지가 좋았던 자모카는 실제로 친구에게 베푸는 마음을 가졌을지 모른다. 그러나 테무진은 어렵게 찾아 온 기회를 도약의 발판으로 삼으려는 야심을 애초부터 갖고 있었다.
따라서 결국 나중에는 파국으로 이어지는 수순을 밟아 나갈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공동 유목과 세 번째 안다 맹약은 테무진의 지위를 일시에 자모카와 동등한 지위로 올려놓았다. 테무진은 자신의 세력 확장을 위해 철저하게 자모카를 이용한 것이었다.
높아진 위상을 바탕으로 테무진은 자신의 추종자들을 끌어 모으는 일에 착수했다.
그러니까 이 공동 목초지에서 테무진이 기르고 가꾼 것은 가축이 아니라 사람이었던 것이다.
▶ 너흐르 집단 구축․포섭 동시 진행
테무진의 세력 확장은 두 갈래로 진행이 됐다. 그 하나는 강력한 너흐르 집단을 구축하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자모카 세력 안에 포진해 있는 자신의 씨족 키야트족 귀족들을 공략해 끌어들이는 일이었다.
너흐르란 동지와 같은 충성스런 부하를 말한다. 테무진은 우선 사람들을 끌어들이기 전에 자신의 평판을 높이는 일에 주력했다.
그의 곁에 사람들이 저절로 모여들 수 있도록 분위기를 조성하기 위해서였다.
공명정대하고 관대하면서 포용력을 가진 지도자!
사람의 귀천을 가리지 않는 사람!
특히 소외된 자, 가난한 자에게 특별히 관심 갖고 베푸는 사람!
그러한 이미지의 구축을 위해 노력했고 실제로 많은 일화를 만들어 냈다.
▶ 소문을 통한 자기 포장 전략
물론 이러한 시도는 다분히 의도된 자기 포장 전략이었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테무진이 가진 품성이나 성격이 거기에 근접해 있지 않았다면 불가능한 일이었을 것이다.
테무진의 시도는 그대로 맞아 떨어졌다. 그의 평판은 높아지면서 지도자의 자질을 가진 타고난 인물이라는 소문이 초원에 널리 퍼져 나가기 시작했다.
어느덧 테무진은 새로운 세상을 열어 줄 구원의 빛으로 떠오르고 있었다.
분위기가 충분히 조성된 상황에서 테무진은 앞으로 새로 탄생할 그의 정권의 기둥이 될 키야트 귀족에 대한 공략에 손을 댔다. 키야트족은 보르지긴족과 함께 몽골의 주축을 이루는 세력이었다.
키야트계 귀족들의 지지를 얻지 못하는 한 테무진이 기도했던 새로운 세력의 창출은 물거품으로 끝날 가능성이 짙었기 때문에 이들을 끌어들이는 데 특별한 노력을 쏟았다.
그러한 노력은 성공으로 이어졌다.
▶ 썰물처럼 빠져나간 자모카의 세력
이제 적당한 명분을 찾아 자모카와 갈라서는 일만 남겨 놓고 있었다.
그 빌미는 자모카측에서 먼저 제공했다. 공동 유목 구역 안에서 물밑으로 이루어는 세력 이동을 뒤늦게 감지한 자모카는 분노에 몸을 떨었다.
그러나 그 때는 이미 자신의 세력 가운데 많은 부분이 썰물처럼 빠져나간 뒤였다.
이미 쏟아진 물, 공동 유목을 계속할 경우 자신의 세력이 걷잡을 수 없이 무너질 수밖에 없다고 느낀 그는 테무진에게 헤어질 것을 제의했다. 불감청 고소원(不敢請 固所願)!, 기다리고 있었던 테무진은 주저할 필요가 없었다.
자고 나면 새로운 사람들이 채워졌다. 혼자서 오는 사람, 가족 단위로 오는 사람, 자신의 병사를 모두 데리고 오는 사람....
테무진의 세력은 마치 홍수 때 강물이 불어나는 것처럼 급속히 팽창되고 있었다.
무정하게 형수 호엘룬을 버리고 달아났던 삼촌 옷치긴도 이 때 한 진영을 이끌고 합류했다. 여러 종류의 사람들이 몰려들었지만 그들 가운데는 특히 그 동안 자신의 주군으로부터 착취를 받으며 자유롭지 못하게 살아온 천민 출신과 세습 노비들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그 동안 테무진이 보여준 넓은 도량과 사람을 차별하지 않는 열린 마음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다. 무당 샤먼들의 역할은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각지에서 모여든 사람들, 각기 다른 환경에서 살아 왔고 각기 다른 생각을 가지고 몰려든 사람들의 마음을 하나로 묶는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것을 하나로 묶을 수 있도록 분위기를 조성하는 역할을 한 사람들이 바로 샤먼, 즉 무당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