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민화보]권혁대, 사막과 미래를 푸르게 만드는 삶
2017-08-02 14:35
인민화보 왕자인(王佳音) 기자 =흰 바탕에 녹색 무늬의 티셔츠, 청바지, 남색의 단화......캐주얼한 복장의 권혁대 본부장은 겉모습만으로는 나이를 가늠하기 어려웠다. 하지만 그와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한 지 몇 분도 안 돼 그가 무슨 일을 하는지는 금세 알아차릴 수 있었다. 그가 다른 사람과 이야기할 때 ‘사막화 방지’와 ‘식수조림’이라는 명제는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녹색’과 ‘환경보호’는 이제 그의 삶의 수칙이 되었다.
2004년부터 매년 그는 중국 쿠부치(庫布其)사막을 수차례 드나들고 있다. 나무를 매개로 중국과 한국 청년들 사이에서 소통과 가교 역할도 한다. 수천 명의 청년 자원봉사자들과는 함께 그는 ‘중·한 녹색장성(中韓綠色長城)’을 만드는 중이다. 나무에 대한 그의 열정은 주변 사람들까지 절로 동참하게 만든다. 어느새부터인가 그는 사람을 알게되면 그 사람이 이런 활동에 함께 참여할 것인지, 아닌지가 새 친구를 만드는 판단 기준이 되어 버렸다.
한·중 수교로 시작된 중국 생활
권 본부장은 교양이 넘치는 가정에서 자랐다. 일찌감치 중국을 방문한 경험이 있던 외조부는 그가 어릴 적부터 늘 ‘중국어를 배워 중국이라는 나라를 둘러보아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그의 부친은 양국 관계에 중요한 영향을 미친 인물이다. 바로 중한 수교 협상 당시 ‘베일에 싸였던 인물’이자 초대 주중한국대사를 역임한 권병현 (사)한중문화청소년협회 미래숲 대표다.
중한 수교가 이뤄지던 그날, 권 본부장도 학교에서 수교 소식을 전해 들었다. 동시에 아버지가 왜 그리 말씀을 아끼셨는지도 단번에 이해가 됐다. “중한 수교는 당시 사람들에게 매우 갑작스러운 소식이었습니다. 하지만 그게 얼마나 큰 영향을 가져올지는 아무도 예측하지 못한 것 같아요.” 그 뒤 권 본부장은 중국으로 부임하게 된 아버지를 따라 가족과 함께 처음 베이징 땅을 밟았다. “그 전에는 베이징에 대해 아는 게 많지 않았어요. 하지만 밖에서 들었던 것과 가장 달랐던 점은, 베이징이 겉보기 꽤나 자유로워 보였다는 사실이에요. 지금도 그 기억이 가장 생생해요.”
대학 시절 그는 경영학을 전공했다. 한국 경제가 고속성장을 구가하던 시절이었기 때문에 대기업에 입사하거나 스스로 회사를 차리는 것이 당시 그의 꿈이었다. 대학 졸업 후 SK텔레콤에 입사해 근무를 하다 중국 주재원으로 파견됐다.
중국에 온 그는 외조부의 당부를 떠올렸다. 베이징대에서 중국어를 공부하던 시기에는 모든 기회를 동원해 중국어 공부에 매진했다. 수업 전에는 열심히 예습을 했고, 방과 후에는 최대한 많은 중국인들과 대화하기 위해 애썼다. 지금도 그를 가르쳤던 중국어 선생님의 이름을 기억할 정도다. “당시 다른 어떤 일보다도 중국어 공부에 미친 듯이 매달렸어요.”
2년에 걸친 노력 덕에 그의 중국어는 탄탄한 기반을 다졌다. 그 뒤 몇 년 간 중국에서 근무하며 중국어 실력은 몰라보게 유창해졌다. 말 속에 간간이 베이징 말투까지 배어나올 정도였다.
부친인 권병현 미래숲 대표는 2000년 퇴임 후 한국으로 돌아와 거의 모든 시간과 힘을 중국 식수조림과 양국 청소년 교류활동에 쏟았다. 2001년 1월 8일 그가 설립한 ‘사단법인 한중문화청소년협회(미래숲)’는 양국 청년들과 함께 사막에 나무를 심고 교류활동을 펼치는 민간단체다.
권병현 대표는 매년 봄이 되면 환경에 관심이 많은 100명 가량의 한국 청년대표들을 이끌고 중국을 방문한다. 이들은 사막 식수조림활동을 통해 양국 간 우의와 유대를 강화한다. 이제까지 베이징과 네이멍구(內蒙古)는 물론, 산시(陜西)와 간쑤(甘肅)에도 10곳이 넘는 ‘중·한 우의림(中韓友誼林)’이 조성됐다.
그는 아버지가 땀을 쏟고있는 식수활동과 양국 청소년 교류를 지켜보며 많은 영향을 받았다. 당시 한국에 본부를 두고있던 미래숲은 중국에 식수활동을 갈 때마다 사전에 많은 준비와 조율 작업을 해야 했다. 그 과정에서 중국에 사무처가 없어 많은 불편을 겪었다. 이에 권 본부장은 자신의 사무실 한 켠에 작은 공간을 마련하고 SK텔레콤에서 함께 근무했던 선배를 모셔와 미래숲과 중국 간 조율 작업을 부탁했다. 그도 간간이 협조업무에 참여했다.
권병현 대표는 매년 교류활동을 펼치면서 이 사업이 장기 프로젝트가 되리라 직감했다. 또한 보다 오랫동안 안정적으로 활동을 유지해 나가기 위해서는 중국에 파트너가 필요하다는 사실도 깨달았다. 2006년 미래숲은 하나의 중대한 합작 프로젝트를 계획했다. 중국공산주의청년단 중앙위원회(공청단), 중화전국청년연합회(중청련)와 함께 네이멍구 어얼둬쓰(鄂爾多斯)시 다라터치(達拉特旗)에 위치한 중국의 8대 사막 가운데 하나인 쿠부치 사막에 생태녹화 시범림인 ‘중·한 우호녹색장성’을 조성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쿠부치 사막은 베이징과 가까운 거리에 있다. 또 황허(黃河)의 동·서·북쪽 삼면과 붙어 있어 모래입자가 매우 가늘고 작다. 매년 봄이 되면 이 모래입자가 강력한 북서풍을 타고 모래바람을 형성하여 베이징과 톈진(天津) 지역을 휩쓴다. 이 때문에 쿠부치 사막은 봄철 황사를 일으키는 주요 발원지로 꼽힌다. 사막의 계속되는 동쪽 확장을 막고자 권병현 대표는 각 파트너들과 손을 잡고 쿠부치 사막의 동쪽에 견고하고 모래바람을 잘 막아줄 ‘녹색 벨트’를 만들기로 했다.
권병현 대표는 현재 한국에서 미래숲 본부를 맡고 있다. 자연히 중국과의 소통 업무는 권혁대 본부장이 담당하게 됐다. 2006년 여러 차례 협의와 노력 끝에 미래숲과 공청단은 합작 협약서를 체결했다. 이에 따라 양측은 사막에 건설된 왕복 2차선 도로 양쪽으로 18km에서 28km에 이르는 구간에 방풍(防風)·방사(防沙) 역할을 하는 생태녹화 시범림을 조성하기로 했다. 한국측은 자금 조달을 맡고, 중국측은 사업의 구체적인 기획·실시·관리를 담당하기로 했다.
사막에 나무를 심는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늘 모래 섞인 바람이 강하게 불어오는 이곳에서 과연 나무가 살 수 있을까? 많은 이들이 의구심을 가졌다. 합작사업 초기 미래숲이 섭외한 한국의 여러 전문가들은 사막을 둘러보며 하나같이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권씨 부자는 물러서지 않았다. 봄마다 네이멍구를 찾는 미래숲의 발길은 단 한 차례도 중단된 적이 없었다.
녹색장성의 꿈
사막화는 ‘지구의 암’이라 불린다. 사람의 흔적을 찾아보기 어려운 황무지이자 척박한 사막 땅에 나무를 심는다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매년 식목일을 전후로 쿠부치 사막에는 조금씩 푸릇푸릇한 곳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대학생 자원봉사자들은 녹색 조끼를 입고 손에는 삽과 물통을 든 채 흙을 파내려 가기 시작했다. 4월이었지만 사막의 낮은 강렬한 땡볕이 내리쬐었다. 땀을 뻘뻘 흘리며 묘목을 하나 심고 나면 나무에 자신의 이름을 쓴 명패를 걸었다. 사막 한가운데에 ‘자신의 나무’가 탄생한 셈이다.
그렇게 16년이 흘렀다. 권병현 대표와 여러 자원봉사자들이 쿠부치 사막 동쪽에 손수 심은 묘목들은 이제 그 뿌리를 굳건히 내리고 무성하게 자라났다. 그 모습은 마치 ‘녹색 장병’들이 쿠부치 사막의 동쪽 대문을 지키고 있는 것같다. 이토록 놀라운 성과를 낼 것이라고 누구도 예측하지 못했다.
2006년 미래숲이 공청단, 네이멍구 다라터치인민정부와 함께 쿠부치 사막을 남북으로 16km 가로지르는 방사림(防沙林)을 조성하는 ‘중·한 우호 녹색장성’ 프로젝트에 합의한 이래, 11년간 중국과 한국의 자원봉사자들은 이곳에 포플러, 사류(沙柳) 등 사막에서 잘 자라는 나무 약 84만 그루를 심었다. 그 면적만 무려 2700ha에 이른다. 권 본부장은 구글맵으로 미래숲이 만들고 있는 녹색장성을 보여주었다. 황토빛 사막 군데군데 뚜렷한 ‘녹색 벨트’가 생겨나고 있었다. 그는 지도에서 빨간색과 파란색 구간으로 표시된 부분을 가리키며 말했다. “이곳은 예전에 황사가 심해 현지 주민들이 떠날 수밖에 없었던 지역이에요. 저희가 이곳에 들어가 나무를 심고 풍식을 막기 시작하니까 사막화 때문에 떠나갔던 사람들이 돌아와 지금 10여 가구가 이곳에 살고 있답니다.”
현재 미래숲의 연간 식수활동은 한국 정부와 기업들의 많은 관심과 지원도 받고 있다. 봄에 떠나는 대학생 녹색봉사단 활동은 양국 공공외교사업의 하나로 지정되기도 했다. 권 본부장은 “지금은 대학생뿐 아니라 정부나 기업 등 각계에서 온 인사들까지 쿠부치 사막 식수활동에 자원봉사자로 참여한다”고 귀띔했다.
이런 미래숲의 노력에 한국의 젊은이들도 적극 동참하여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미래숲 자원봉사자 신청자 수는 갈수록 늘어가고 있다. 어릴 때부터 산으로 둘러싸인 한국에서 살아 온 대학생들은 광활한 사막을 경험해 본 경우가 드물다. 그렇기 때문에 이들은 미래숲 활동을 통해 인생에서 잊지 못할 경험을 하기도 한다.
나무 심는 아이들이 ‘미래’다
수십 년에 걸친 노력 끝에 미래숲은 이제 쿠부치 사막에서 어느 정도 성과도 거뒀다. 하지만 권 본부장은 여전히 고민이 가득하다.
그는 “통계를 보면 지금도 1분당 축구장 32개 만한 크기의 땅이 사막으로 바뀌고 있어요. 하지만 현재와 같은 식수 속도로는 사막화를 따라잡기가 어렵습니다. 지금까지 많은 사람들과 기관이 잘 참여해 주었지만 한계가 있는 만큼, 더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불러일으킬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환경보호에 대한 의식은 어릴 때부터 길러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와 미래숲 직원들은 여러 날을 고심한 끝에 어린이와 청소년들의 환경 의식을 고취시키기 위한 ‘나무 심기 카툰 공모전’을 펼치기로 했다. 전국의 아이들이 그린 작품을 모아 전시회를 개최했고, 대기업의 협찬도 받았다.
아이들은 아직 사막에 직접 가서 나무를 심을 수 없는 상황임을 고려해 아이들의 소망은 미래숲 자원봉사자를 통해 이뤄졌다. 사막에 나무를 심고 그 위에 아이들의 이름을 적은 명패를 건 뒤 사진을 찍어 보내 중국 쿠부치 사막에 ‘자신만의 나무’가 생겼다는 것을 아이들에게 알려주는 것이다. “환경에 대한 생각은 아이들의 마음 깊숙이 씨앗처럼 심어져 이 나무와 함께 무럭무럭 자라날 겁니다. 저는 이게 굉장히 의미가 큰 일이라고 생각해요.” 권 본부장의 말이다.
미래숲은 더 많은 이들의 참여를 이끌어 내기 위해 식수사업을 위한 크라우드 펀딩도 고려하고 있다. “나무를 심는 데에는 돈이 드니까요. 나무를 더 많이 심으려면 일단 자금 면에서 뒷받침이 되어야 합니다.”
그는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미래숲은 주로 양국 청소년 교류에만 집중해 왔어요. 하지만 지금은 점점 네트워크가 커져서 올해 행사부터는 중국과 한국뿐 아니라 미얀마, 일본 등의 청년들도 함께 참여할 예정입니다. 이 행사는 이제 국경을 넘어 우리 모두의 터전을 보호하는 활동으로까지 발전했습니다”라고 설명했다.
권 본부장 역시 아버지처럼 식수조림에 대해 ‘미련할 정도로’ 강한 애착이 있다. 그에게는 베이징에서 태어난 세 자녀가 있다. 아이가 태어날 때마다 그는 쿠부치 사막에 나무 한 그루를 심고 아이의 이름을 적어 나무에 달아놓았다. “아이들이 크면, 사막에 너희의 나무가 있다고 꼭 말해줄 겁니다.”
올해 하반기 미래숲은 다시 한번 중국의 ‘일대일로(一帶一路)’ 루트를 밟을 예정이다. 과거 권병현 대표가 나무를 심었던 여러 지역이 이 루트를 따라 분포되어 있다. “아버지가 늘 그 얘기를 하세요. 꼭 저와 같이 가고 싶으시답니다.”
매번 3대(三代)가 모일 때면, 권병현 대표는 손자와 손녀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중국 서북쪽에 가면 큰 생태원이 하나 있단다. 거기에는 풀꽃도, 나무도 있지. 나중에 우리 같이 그곳에 놀러가지 않으련?”
부자는 함께 앉아 웃는 아이들을 바라보았다. 어쩌면 그들이 10년 넘게 이어가고 있는 나무심기는, 가족과 후손에게 고이 남겨주고자 하는 그들의 귀중한 자산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 본 기사는 중국 국무원 산하 중국외문국 인민화보사가 제공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