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민화보]헤어디자이너 정해란, 중국에서의 ‘뷰티’ 인생

2017-06-22 16:22

중국에 온지 20년이 된 헤어디자이너 정해란, 그녀는 중국을 제 2의 고향이라고 말한다. [사진=인민화보 궈사사(郭莎莎) 기자]


인민화보 왕자인(王佳音)  기자 =깔끔한 쇼트 커트, 흰 셔츠, 하늘색 스카프, 요즘 유행하는 블루 데님 나팔바지를 입은 정해란의 첫 인상은 깔끔했고 한국 여성 특유의 온화한 분위기가 주위사람을 편안하게 해준다.
정해란은 ‘정앤리박(丁&李朴) 살롱드박’ 창립자이자 이 브랜드의 예술 총감독이다. 그녀는 한국 샤넬, 구찌, 마크 제이콥스, 모스키노 등 패션쇼와 미스월드 한국지역 총 스타일리스트를 역임했다. 또한 에스티로더, 랑방, 설화수 등 패션 브랜드 광고와 <쎄씨><하퍼스 바자><레이리 허스타일> 등 정상급 패션 잡지 촬영에 참여했으며 <휘가로> 등 패션 미디어가 선정한 ‘중국 10대 헤어디자이너’에 선정되기도 했다.
그녀가 설립한 정앤리박 살롱드박 브랜드는 정앤리박 뷰티그룹(이하 정앤리박)으로 성장했고 베이징(北京)과 산시(山西)성 타이위안(太原)시의 땅값이 비싸기로 유명한 CBD나 백화점 내에 7개 매장을 오픈했다. 정해란은 훌륭한 커트 실력으로 중국 고객의 신뢰를 얻었으며 한국의 미를 베이징에 전파시켰다. 현재도 그녀는 정앤리박 헤어디자이너의 꿈을 갖고 노력하고 있는 제자들에게 정기적인 교육을 통해 더 많은 아름다움을 가르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난초 같은 기질의 그녀는 개인적 매력으로 여성 특유의 강인함과 자신감을 드러낸다. 그녀는 늘 스스로가 모범이 되어 정앤리박 브랜드에 아이디어를 제공하고 있다.

젊음을 밑천으로 해외 진출
1996년 한국 기획사 SM의 H.O.T가 ‘캔디’라는 노래로 가요계에 등장했다. 이때부터 ‘한류’가 중국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헐렁한 티셔츠와 통 넓은 바지가 중국 젊은이들 사이에서 크게 유행했다. 이후 한국 드라마 <별은 내 가슴에>가 중국 시장에 상륙했고 안재욱, 배용준, 장나라 등 한국 연예인이 중국에서 큰 사랑을 받았다.
이와 동시에 거대한 시장 잠재력에 주목하고 ‘젊음을 무기로’ 중국에 진출해 부딪쳐보기로 결심한 한국 젊은이들도 있었다. 정해란도 그 중 한 명이었다. 1995년 그녀의 친구가 먼저 중국에서 일을 시작했다. “그때는 지금처럼 정보가 발달하지 않아 텔레비전과 사람들이 전하는 말로 중국을 알 수 있을 뿐이었다. 생활하기 좋다는 사람도 있었고 낙후됐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다. 하지만 나는 젊으니까 한번 가보는 것이 낫다고 생각했었다.” 정해란은 친구 초청으로 호기심과 불안한 마음을 안고 1996년 중국에 첫 발을 내딛었다.
처음으로 가본 낯선 외국이었지만 정해란은 적응력이 매우 좋았다. 정해란은 업무 외 시간을 이용해 친구들과 서에서 동으로, 북에서 남으로, 윈난(雲南), 신장(新疆), 시안(西安) 등 중국 각지로 여행을 다녔다. 정해란은 “나는 윈난 소수민족 풍경이 좋다. 윈난에서 만난 아가씨들이 착용한 장식품이 매우 아름다웠다. 신장도 좋다. 장엄한 자연풍광에 감동했다”고 말했다.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정해란은 중국 생활에 매료됐고 중국은 그녀의 제2의 고향이 됐다.

자신의 매장을 열다
여러 곳을 다녀본 정해란은 그래도 베이징이 제일 좋았다. “베이징은 고전과 현대가 섞인 도시로 포용적이다. 나는 베이징의 옛 골목을 좋아하고 국제무역지구 CBD도 좋아한다. 게다가 뷰티는 트렌드와 밀접하게 연결된 업종이기 때문에 베이징의 시장 잠재력이 크게 보였다.”
중국에 온 이후 정해란은 베이징의 뷰티 업계와 시장성을 면밀히 관찰했다. 베이징에 다국적기업이 늘어나면서 베이징 직장인의 소비수준도 높아지면서 고객이 백화점에서 쇼핑뿐만 아니라 자신의 외모도 중시하기 시작한다는 것을 알았다. 시장성이 커지는 것을 알고 1996년 정해란은 친구 2명과 정앤리박을 설립했다. 회사명은 각자의 성을 따서 지었고 위치는 당시 베이징의 고급 백화점인 싸이터(賽特)로 결정했다.
설립 초기, 정앤리박은 고품격 뷰티살롱으로 만드는 것에 주력했다. 우아한 인테리어와 고급 제품으로 고객을 사로잡았다. 고객에게 최고의 미용 기술 제공 뿐만 아니라 수준 높은 서비스로 고객에게 감동을 전한 것도 정앤리박의 경쟁 비결이다. 정해란은 “고객에게 세심한 서비스를 제공해야 고객의 마음을 잡을 수 있다”고 말했다.
90년대는 지금처럼 전자상거래가 발전하지 않아 백화점 고객이 안정적이었다. 백화점의 우수한 쇼핑 환경에 한류의 영향이 더해져 정앤리박을 찾는 고객이 점점 늘어났으며, 블로그나 위챗 등 뉴미디어의 홍보는 없었지만 입 소문이 나면서 정앤리박의 고객 충성도는 높았다.
고객 중에는 한국드라마 속 남녀 주인공의 헤어스타일을 보고 주인공과 똑같이 해달라고 요청하는 사람도 있었다. 이럴 때 정해란은 고객의 특징에 따라 고객 스타일에 잘 어울리는 헤어스타일을 제안했다.
90년대 중국은 긴머리, 생머리, 펌이 매우 유행했지만 정해란은 다른 생각이 있었다. “나는 고객에게 짧은 머리를 추천하곤 했다. 짧은 머리는 평소 관리하기도 쉽고 멋도 있으며 젊고 트렌디하기 때문이다. 우리 매장을 처음 찾는 고객 중에는 짧은 머리는 개성이 너무 강해 쉽게 받아들이지 못하기도 했다. 하지만 내 제안을 듣고 짧은 머리를 한 고객들은 대부분 새로운 스타일에 만족했다. 이것도 입 소문이 많이 난 이유다.”
정해란은 한국은 용모를 매우 중요하게 여기는 나라라고 생각한다. 옛부터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전통이 있었다. 그래서 유럽과 미국에서 유행하는 디자인은 한국에 파급력이 좋았고, 한국 헤어디자이너들은 해외의 트렌드를 받아들이면서 동양인의 피부톤과 얼굴형에 맞게 디자인을 변형·발전시켰다. 덕분에 한국은 동아시아에서 트렌드의 리더 역할을 하는 수준이 됐다.
정앤리박은 설립 초기부터 한국적 요소를 가져왔다. 기술에 한국 철학을 담았을 뿐 아니라 한국의 서비스 관리에도 집중해왔다. 정해란은 “직원을 교육할 때 고객에 대한 예의를 특히 강조하고 서비스 의식 함양에 중점을 둔다. 한번은 오랫동안 매장을 찾지 않았던 고객이 오랜만에 방문했는데 리셉션매니저가 고객을 정확하게 기억하자 감동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한국 뷰티 업계와는 달리 중국에는 남성 헤어디자이너가 많다. 이 역시 업계의 특수성 때문이다. 정해란은 “헤어디자이너는 매우 고된 직업으로 한 단계 한 단계 연습을 통해 성장한다. 때론 하루종일 서있기도 해서 여성들은 견디기 힘들다. 내 두 파트너들도 개인적인 이유와 건강 때문에 귀국했고 나 혼자만 남았다”고 회고했다.
뷰티 업계에 20년 동안 종사하면서 한국 여성인 정해란은 경쟁이 치열한 뷰티 업계에서 명성있는 헤어디자이너로 성장했다.
 

헤어디자이너 정해란이 설립한 정앤리박 살롱드박 브랜드는 수년간 발전으로 정앤리박 뷰티그룹으로 성장했다. 사진은 정앤리박 베이징 완류(萬柳)점이다. [사진=인민화보 궈사사 기자 ]

정해란은 자신감이 있는 여자가 제일 아름답다고 생각한다. 날마다 집을 나서기 전, 그녀는 정성껏 화장을 하고 밝은 마음으로 새 하루를 맞는다.[사진=인민화보 궈사사 기자 ]


초심으로 돌아가다
고객이 빠르게 늘어나자 정앤리박은 매장 확장에 박차를 가했다. 1996년에서 2004년까지 짧은 8년 동안 정앤리박은 총 11개 매장을 오픈했지만 동시에 정앤리박은 창립이래 최대 위기를 맞았다. “그때 나는 자신만만했다. 교육 효과도 좋았고 관리 시스템도 매우 안정적이었다. 그래서 경영 상황이 안 좋은 미용실을 인수해 정앤리박 브랜드로 변신시켰다. 그러나 나중에야 인재 양성은 서둘러선 안 되고 조금만 소홀히 해도 브랜드에 악영향을 끼친다는 것을 알았다. 나는 큰 댓가를 치루고 나서야 11개 점포를 6개로 줄였다. 다시 초심으로 돌아가 인재 양성에 중점을 두었다.”
위기를 겪은 정앤리박은 인재 양성의 중요성을 깨닫고 교육 시스템을 정비했다. 현재 교육은 정앤리박의 업무에서 매우 중요한 부분으로 자리잡았다. 초급 1급에서 고급 6급까지 단계별로 매우 명확하고 엄격한 기준을 정했다.
정해란은 학생마다 기초가 다르기 때문에 시험에 합격하는 시간도 다르다고 소개했다. 일반적으로 1급에서 6급까지 3~4년이 걸린다. 기초가 없는 학생은 고객 응대와 물건 다루기부터 시작한다. 시간은 많이 걸리지만 학생들은 시작할 때부터 서비스 의식이 생기고 이런 습관은 교육을 마치고 현장에 투입되어서도 계속된다.
최고급인 6급에 합격하려면 보다 엄격한 시험을 거쳐야 한다. 실제 작업한 모델헤어스타일을 가져다가 원장님과 매니저, 교육 담당 선생님 앞에서 하나하나 작품을 설명하고 모든 이에게 인정을 받아야 통과된다.
현재 정앤리박 매장에서 일하는 헤어디자이너는 대부분 중국인으로 모두 6급 시험을 통과했고 장기간의 훈련을 거쳐 현장에 나왔다. 회사에 입사한지 10여 년에서 20년 된 디자이너도 있다. “다른 매장과는 달리 정앤리박은 기초교육을 매우 중요시하면서 인재를 교육한다. 우리는 기술로 승부하기 때문에 기술은 기본이고 신념도 있어야 한다. 우리는 학생들에게 기술도 가르치지만 서비스 의식도 심어준다. 그리고 한국의 전통 예절도 가르친다. 직원들이 회사와 함께 성장하고 발전하게 하고 싶은 것이 바램이다.”
지난해 창립 20주년을 맞은 정앤리박은 앞으로 나아갈 방향이 매우 뚜렷하다. 교육이라는 핵심 업무에 집중해 인재 배출에 힘쓰고, 내실은 건강하게 천천히 다지는 것이다.
 

정엔리박은 헤어디자이너의 꿈을 갖고 노력하고 있는 제자들에게 정기적인 교육을 통해 더 많은 아름다움을 가르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교육과정은 보통 일반적으로 1급에서 6급까지 3~4년이 걸린다. 신입 헤어디자이너가 작품발표회를 하고 있다. [사진=본인제공]


자신감있는 여성이 제일 아름답다
정해란 본인이 직접 말하지 않는다면 그녀의 외모를 보고 나이를 추측하기란 매우 어렵다. 아마도 그녀의 직업과 관련이 있겠지만 그녀는 친절하고 온화한 분위기를 풍기면서도 강단이 있어 보인다.
중국 생활 20여 년 째인 정해란은 중국어를 능숙하게 구사할 뿐 아니라 중국 친구도 많다. 날마다 집을 나서기 전, 그녀는 정성껏 화장을 하고 밝은 마음으로 새 하루를 맞는다. “내 직업은 사람들과 직접 만나는 것이다. 내 기분과 태도가 고객에게 직접 전달되기 때문에 먼저 내 마음을 밝게 해야 아름다운 기운이 고객에게 전달된다.”
여성의 아름다움에 대해 정해란은 “자신감 있는 여성이 제일 아름답다고 생각한다. 자신감을 갖고 마음을 열고 가족과 친구와 좋은 관계를 유지해야 한다. 외모는 지나치게 가꿀 필요가 없지만 마음은 잘 가꿔야 한다. 적극적이고 긍정적인 마인드는 다른 사람이 쉽게 느낄 수 있다. 때문에 당신이 그런 마인드를 가진다면 사람들은 당신과 함께 있는 것을 좋아할 것이다.” 일이 끝나면 그녀는 운동, 여행, 친구와의 만남에 시간을 쓴다. 가족 관계를 매우 중요시하는 그녀는 일이 아무리 바빠도 주말은 가족과 함께 보낸다.
헤어디자이너를 하든, 회사에서 행정 관리를 하든 정해란은 늘 일에서 즐거움을 찾는다. 그녀는 자신의 직업을 사랑한다. 아름다움을 만들고, 아름다움을 가르치고, 아름다움을 전달하고, 학생들이 힘들게 배워 현장으로 나가는 것을 지켜보고, 고객이 만족해서 돌아가는 것을 보면서 얻는 성취감이 그녀를 만족스럽게 한다. 제2의 고향 중국에서 정해란은 청춘을 보냈고 성공과 기쁨을 얻었다.

* 본 기사는 중국 국무원 산하 중국외문국 인민화보사가 제공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