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포커스]여론이 법정의 문턱을 넘어서면 안된다
2017-07-18 06:00
이후에도 100년 전쟁에서 프랑스를 살린 잔다르크, 아내와 그 친구를 살해한 혐의의 미식축구선수 O. J. 심슨 등 하나뿐인 법 정의를 놓고 어떤 형태로든 여론과의 갈등이 있었던 관련 재판들은 있었다. 시대와 성격은 달랐지만 세상에 던진 교훈은 같았다. 여론이 법정의 문턱을 넘으면 안 된다는 것이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1심 공판이 막바지를 향해 가고 있다. 재판은 결정적인 증거 없이 양쪽의 지루한 공방으로 흐르고 있다. 재판부는 8월 2일 결심공판을 하겠다고 밝혔다. 그동안 법정에 제출된 증거나 증인들의 증거들을 종합해 보면 '증거가 차고 넘친다'던 특검의 당초 호기가 무색하다. 재판부는 뇌물죄의 ‘스모킹 건(smoking gun·결정적인 증거)’이라고 여겨지던 안종범 전 청와대 경제수석의 수첩도 직접증거가 아닌 정황증거로만 받아들였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청와대 참모들에게 삼성 현안과 관련된 지시를 내렸다는 증거도 나오지 않았다. 청와대에서 삼성 현안과 관련된 부처들에 압력을 행사했다는 증언도 없었다. 압력을 받았다는 부처 실무자들의 증언도 없긴 마찬가지다. 오히려 반대의 증언이 눈에 띈다.
금융지주회사 전환과 관련, 정은보 금융위원회 부위원장은 "금융위는 신경을 많이 쓰면서 보고했는데, 안 수석은 매번 보고를 받고도 별도의 멘트가 없었다. 안 수석이 너무 관심이 없어서 서운했다"고 했다. 특검이 증거로 제시한 '말씀자료'에 대해서도 문서를 작성한 청와대 행정관은 박근혜 전 대통령이나 안종범 전 수석의 지시를 받은 내용을 담은 것이 아니라 행정관 본인이 '이런 게 중요할 것 같다'고 추측해서 담은 내용에 불과하다고 증언했다.
증언 거부는 법에 규정된 피고인의 권리이다. 누구는 행사할 수 있고, 누구는 행사할 수 없다는 것은 있을 수가 없다. 그런데 삼성 측 증인이 증언거부권을 행사하자 특검은 "삼성은 법 위에 있느냐"며 비난을 했다. 특검의 주장은 일부 매체에 보도됐다. 법정에서의 권리 행사가 여론에서는 '전횡'으로 둔갑하는 일이 벌어진 셈이다.
'국정농단'의 핵심 수혜자인 정유라씨가 변호인의 반대를 무릅쓰고 새벽 2시에 특검 관계자와 만나 이날 오전 전격적으로 법정에 출석해 어머니 최순실씨에게 불리한 증언을 하며 삼성을 몰아세우는 듯한 주장을 했다. 일부에서는 '사이다 증언'이라며 치켜세웠다. 증언하는 건 정씨의 자유이지만, 삼성에 불리한 증언을 했다는 이유로 정씨에 대해 긍정적인 평가가 나오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 특검이 '증거'가 아니라 '여론전'으로 삼성을 압박하는 조짐을 보이는 것 같아 안타깝다.
특검은 기소에 이르기까지 발빠르고 거침없이 수사를 진행해 국민들에게 찬사를 받았다. 그렇다고 모든 것이 다 용인되는 것은 아니다. 만에 하나 자신들의 생각대로 재판이 흘러가지 않는다고 해서 편법을 쓰려 한다면 국민에 대한 기만이고 적폐 청산을 내세우는 문재인 정부의 부담이 될 것이다. 물론 그러지 않을 것이라고 믿는다. 사실에 근거하지 않은 무조건적인, 삼성에 대한 일부 비난 여론이나 삼성에만 이중 잣대를 들이대는 일부 세력의 주장이 재판부의 공정한 판단에 영향을 줄 일은 없다.
지난 12일 미국 아이다호주 휴양지 선밸리에서 '선밸리 콘퍼런스'가 열려 애플의 팀 쿡 최고경영자(CEO)가 글로벌 경쟁업체의 거물들과 환담하는 사진이 다수 매체에 실렸다. 한국에서 유일하게 초대받은 이 부회장은 구치소에 수감 중이라 글로벌 경쟁업체들과 정면승부를 못하고 있다. 특검이라도 이번 재판에서 '증거'를 통한 정면 승부를 벌이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