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오른 한미FTA 재협상]빚 독촉하듯 내민 '트럼프 청구서'…정부, 시장동요 최소화 안간힘

2017-07-13 17:03
대미 무역흑자 감소에도 '파상공세'…개정 넘어 재협상까지 갈까 당혹
정상회담서 제기한 자동차‧철강 등 재조정 대상 유력

배군득·노승길 기자 = 지난 2012년 발효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이 5년 만에 수정안을 놓고 테이블에 올려진다. 형식은 ‘FTA 개정협상’이지만, 시장에서는 그동안 꾸준히 거론되던 자동차‧철강 등 관세 문제까지 포함돼 사실상 재협상이 아니냐는 관측이다.
 

[김효곤 기자]

미국의 무역 파상공세는 어느 정도 예상됐다. 지난 한‧미 정상회담에서도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FTA 재협상을 언급하며 개정안 가능성에 대한 분위기를 고조시켰다.

이처럼 미국이 FTA 개정에 대한 확고한 의지를 내비치자, 정부는 시장 동요를 최소화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특히 최근 대미 무역흑자가 감소 추세임에도 불구하고 미국이 강경한 파상공세를 취하자, 정부는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무역협회에 따르면 올해 1~5월 무역수지는 미국을 상대로 68억6000만 달러 흑자를 기록했다. 하지만 이는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41억 달러나 감소한 수치다. 대미 무역흑자가 꾸준히 하향곡선을 그리고 있는 것이다.

정부는 산업통상자원부 내 통상교섭본부 설치가 끝나는 대로 공동의장을 구성해 개정협상 개최 시기를 논의할 계획이다.

◆주사위 던져진 개정협상 테이블··· 쟁점은 ‘불공정’

이번 개정협상에서 눈여겨볼 대목은 양측이 규정하는 ‘불공정’에 대한 명확한 기준이다. 우리나라는 자동차와 철강에 대해 불공정 행위에 해당되지 않는다는 입장을 꾸준히 미국에 설명해 왔다.

그러나 미국은 정상회담에서도 자동차와 철강을 불공정 무역의 대표사례로 꼽았다. 개정협상의 큰 맥락 자체가 이들 분야에서 우선적으로 해결돼야 하는 이유인 셈이다.

자동차의 경우, 미국은 자국 자동차에 대한 우리나라 비관세장벽을 끊임없이 지적했다. 철강 역시 덤핑 수출을 불공정이라고 지목했다.

미국 상무부가 조만간 내놓을 무역적자 보고서에는 이 분야를 포함한 16개국의 불공정 사례를 담을 것으로 관측된다.

보고서는 무역상대국에 불리한 내용이 담길 가능성도 높다. 미국 정부는 이를 토대로 FTA 개정협상 테이블에서 우위를 점하겠다는 포석으로 풀이된다.

반면 우리 정부는 미국 주장에 오해가 있다는 견해다. 한‧미 FTA 체결 후 미국 자동차의 한국 수입 증가율(37.1%)은 한국 자동차의 미국 수출 증가율(12.4%)보다 3배 가까이 높다.

또 한국을 경유해 미국으로 가는 중국 철강은 한국 전체 철강 수출물량의 2% 남짓에 불과하다. 미국이 제기하는 불공정 수위에 해당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미국은 자동차‧철강 이외에도 법률시장 개방, 스크린 쿼터제, 신문‧방송 등에 대한 외국 지분 투자 허용 등도 협상 테이블에 올릴 것으로 전망된다.
◆ 정부 "협상 개시하려면 양측 합의 필요"··· 한·미FTA 개정 절차는

한‧미 FTA 협정문에 따르면 한쪽이 공동위원회 특별회기 개최를 요청하면 별도의 양측 합의가 없을 경우, 상대방은 30일 이내에 개최에 응해야 한다. 다만 양측의 합의가 있다면 30일 이후가 될 수도 있다.

우리 측은 산업통상자원부 내 통상교섭본부를 설치하는 방안 등 정부조직법이 개정 중이고, 우리 측 공동의장인 통상교섭본부장도 임명되지 않은 점 등을 미국 측에 설명해 공동위 개최 시기를 정할 계획이다.

특히 공동위 개최에 앞서 의제나 개최 시기, 장소 등 실무적으로 협의할 것이 많아 정부는 국장급 관계관을 미국에 보내 미 무역대표부(USTR)과 세부적 이슈에 대해 조율한다는 방침이다.

공동위 특별회기가 열리면 양측의 뜨거운 공방이 예상된다. 공동위는 양국 공무원으로 구성되며 협정 이행감독, 규정해석, 개정 검토, 협정상 약속수정 등에 대해 컨센서스(의견일치)로 결정한다.

공동위가 협정개정 검토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미국은 이를 토대로 공동위에서 한·미 FTA 개정협상 개시를 제안할 것으로 관측된다.

이 역시 한·미 FTA 협정상 우리가 반드시 미국의 FTA 개정협상 제안에 응할 의무가 있는 것은 아니다. 공동위에서 개정협상 개시를 결정하기 위해서는 양측의 합의가 반드시 필요하기 때문이다.

여한구 산업부 통상정책국장은 “추후 공동위원회가 개최돼 미국이 FTA 개정협상 개시를 요구하는 경우, 양측 실무진이 FTA 시행효과를 공동으로 조사·분석·평가한다”며 “이후 FTA가 양국 간 무역불균형의 원인인지를 먼저 따져보는 게 필요하다는 입장을 당당하게 개진할 것”이라고 말했다.

공동위에서 한·미 FTA 개정 합의가 이뤄진 이후의 절차도 복잡하다. 한국은 통상절차법, 미국은 무역촉진권한법(TPA)에 따라 관련 절차를 밟아야 한다.

협정을 전면 개정할 경우, 미국은 협상개시 90일 전에 의회에 협상개시 의향을 통보해야 한다. 연방관보 공지, 공청회 등 절차를 거쳐야 하고 협상 개시 30일 전에는 협상 목표도 공개해야 한다.

만약 원만하게 개정협상이 이뤄지지 않아 협정을 폐기할 경우, 한쪽 서면통보만으로도 가능하다. 이렇게 되면 다른 쪽 의사와 상관없이 서면통보한 날로부터 180일 이후 협정이 자동종료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