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 책을 만나다] 육아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여성…"행복의 기초가 흔들흔들"
2017-07-13 06:00
남편이 죽어버렸으면 좋겠다 | 삶의 의미 | 해가 지는 곳으로
박상훈 기자 =밀린 집안일, TV리모콘과의 손가락 씨름, 아이들과 놀아주기 등 주말·휴일엔 '의외로' 할 일이 많아 피곤해지기 일쑤다. 그렇지만 책 한 권만 슬렁슬렁 읽어도 다가오는 한 주가 달라질 수 있다. '주말, 책을 만나다'에서 그런 기분좋은 변화를 느껴보는 것은 어떨까.
◆ '남편이 죽어버렸으면 좋겠다' 고바야시 미키 지음 | 박재영 옮김 | 북폴리오 펴냄
2012년 2월 일본 마이니치 신문에 실린 한 칼럼은 인터넷 포털 사이트에서 '남편'을 입력하면 첫 번째 연관 검색어로 '죽었으면 좋겠다'는 말이 나온다는 내용을 소개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여성의 고용곡선이 'M'자를 나타내는 국가는 한국과 일본뿐. 아이를 낳고 키우는 30대 여성들이 회사를 많이 그만두기 때문이다. 오죽하면 육아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해 겪는 여성의 고통을 '맘고리즘'(Mom+Algorithm)이란 신조어로 표현할까.
청년 고용과 결혼, 출산·육아로 말미암은 부당 해고 등의 사회문제를 주로 다뤄온 저자는 워킹맘, 전업주부, 중년 여성 등 남편에게 살의를 느끼는 아내 14명을 심층 취재했다.
저자는 그녀들의 삶을 찬찬히 되짚으며 '남편이 죽어버렸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피해망상에서 비롯된 비윤리적 희망사항이 아님을 설명하고, 독박 육아와 독박 가사를 피할 수 없는 일·가정 양립의 현주소를 구석구석 조명한다. 더 나아가 아내에게 생명을 위협받지 않기 위한 남편의 행동 지침을 제시하고, 가정을 바로 세우기 위한 사회의 의식 변화, 제도 개선을 촉구한다.
행복의 기초가 흔들리는 부부 문제의 원인이 구시대적 성 역할 의식과 그에 따른 남녀 노동 환경의 격차에 있음을 새삼 깨닫게 해준다.
272쪽 | 1만3000원
◆ '삶의 의미' 알프레드 아들러 지음 | 김세영 옮김 | 부글북스 펴냄
"삶의 근본적인 법칙은 극복의 법칙이다. 이는 자기보존을 위한 투쟁과 육체적 및 정신적 균형을 위한 노력, 육체적 및 정신적 성장, 완성을 위한 노력 등에 의해 뒷받침되고 있다."
지그문트 프로이트, 칼 융과 함께 정신분석 운동을 폈던 오스트리아의 의사·정신분석학자 알프레드 아들러에게 '삶의 현장'은 사람의 정신이 성장을 이루고 정신의 병을 고칠 수 있는 곳이었다. 그가 '산다는 것은 곧 스스로를 발달시키는 것'이라고 강조한 데는 그의 이런 삶의 철학이 깔려 있다.
아들러는 다른 심리학자들이 '행동'이라 부르는 것을 '움직임'이라고 부른다. 인간뿐만이 아니라 모든 유기체는 단 한 순간도 멈춤이 없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움직임은 사람의 생각과 감정, 행동을 포함하며 어떤 사람의 움직임을 파악하면 그 사람의 정신에 든 병도 고칠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그에 따르면 사람의 길엔 세 가지의 중요한 문제, 즉 인간·직장·사랑 다루기가 버티고 있다. 이 문제들은 사람이 인간 사회와 우주, 이성(異性)과 맺는 관계에서 비롯된다. 이들을 어떤 식으로 해결하느냐에 따라 사람의 운명이 좌우되는데, 이때 중요한 것이 바로 공동체 정신이다.
아들러는 "동료 인간들과 어울리고, 진화론적인 의미에서 더 높은 곳을 향하게 돼 있는 인류 공동체와 호흡을 같이 한다면 정신과 육체에 문제될 것이 전혀 없다"고 주장한다.
어릴 때 애지중지 보살핌 속에 자란 사람은 커서 예외 없이 정신적 문제를 안게 되지만, 삶의 여러 요소가 서로 맞물려 작용하면서 그 대부분은 정상 궤도를 밟게된다는 분석은 오늘날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사람들은 어릴 때의 문제를 바로잡지 못하고, 결국 많은 고통을 겪게 되기 때문이다.
312쪽 | 1만6000원
◆ '해가 지는 곳으로' 최진영 지음 | 민음사 펴냄
특유의 박력 있는 서사와 긴 여운을 남기는 서정으로 '사랑하는 존재'로서의 인간을 꾸준히 그려온 최진영이 신작을 내놨다.
'해가 지는 곳으로'는 최진영이 최초로 선보이는 아포칼립스(apocalypse, 종말·재앙) 소설로, 정체 모를 바이러스가 전 세계를 뒤덮은 혼란의 시기 감염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이 안전한 곳을 찾아 떠나는 여정을 다룬다.
듣지도 말하지도 못하는 동생 '미소'를 지키며 맨몸으로 러시아를 걸어 온 '도리'는 밤을 보내기 위해 머물던 어느 마을에서 일가친척과 함께 탑차
를 타고 세계를 떠돌던 '지나'와 만나게 된다.
도리와 지나는 일상이 송두리째 삭제된 폐허 속에서 조심스럽게 꽃피운 사랑을 "우리만의 이야기를 새로 쌓을" 기회일지 모른다고 말하며, 과거의 상처에 붙들리지 않고 미래의 불안에 잡아먹히지 않겠다는 다짐을 한다. 이는 눈앞에 있는 서로의 얼굴을 똑바로 보겠다는 견고한 약속이기도 하다.
"불행이 바라는 건 내가 나를 홀대하는 거야. 내가 나를 하찮게 여기고 망가트리는 거지. 난 절대 이 재앙을 닮아 가진 않을 거야. 재앙이 원하는 대로 살진 않을 거야."(본문 55쪽)
타인에 대한 불신이 극에 달하고, 모든 감정이 죽어 버린 듯한 재앙의 한복판에서도 꺼지지 않는 로맨스가 묵직한 울림을 준다.
208쪽 | 1만3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