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 칼럼] 잠자고 있는 개인소장 '고문헌' 깨워라

2017-07-11 06:00
박주환 국립중앙도서관장

박주환 국립중앙도서관장 [사진=국립중앙도서관 제공]


우리나라에서 고문헌(古文獻)이란 일반적으로 일본에 의해 강제 병합된 1910년을 기점으로, 그 이전에 만들어진 서적과 문서를 가리킨다. 국내에 고문헌이 얼마나 전해지고 있는지 물어본다면, 대개는 몇 십만 권 정도 있을 것이라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놀랍게도 우리나라에는 321만 책의 고서와 107만 점의 고문서 등 총 428만 책(점)이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국립중앙도서관이 소장하고 있는 자료가 1100만 권임을 감안한다면, 우리나라에 전해지는 고문헌의 수가 420만 이상이 된다는 것은 결코 만만치 않은 숫자다. 이는 우리나라가 지식자료의 생산에 탁월한 문명국이었다는 증거이며, 우리가 대대손손 물려주어야 할 소중한 문화유산으로서의 고문헌에 대한 책임감 또한 높아져야 함을 느끼게 해준다.

국내 최대의 고문헌 소장처인 국립중앙도서관에는 약 28만 책의 고문헌이 보존되어 있는데, 이는 우리나라에 있는 전체 고문헌의 6.5%에 불과하다.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장서각 등 고문헌 소장 기관의 협의체인 한국고전적보존협의회 40개 회원기관이 소장하고 있는 고문헌을 모두 합하여도 231만으로, 전체 추정치의 53.9% 정도이다.

즉, 우리나라 고문헌의 절반가량이 사찰, 서원, 향교, 문중, 개인, 고서점 등의 민간에 흩어져 있는 것이다. 이들 고문헌의 대부분은 전문지식의 부족, 시설 미비, 보존 비용 등의 문제로 인해 체계적인 관리가 어렵고, 심지어는 소장하고 있는 책이 어떤 가치를 지닌 귀중본인지 파악조차 못하는 경우도 많다. 더욱이 고문헌의 상당수가 고가에 거래되고 있어 도난 위험에 항시 노출되어 있으며, 도난의 위험 때문인지 일부 소장자나 소장처는 보유 중인 고문헌을 일반에 알리는 것을 꺼린다고 한다.

고문헌은 단순한 기록물이 아니라 우리의 소중한 문화유산이고, 그 혜택은 현재 우리 세대뿐만 아니라 미래 세대도 누려야 한다. 따라서 우리들에게는 고문헌을 체계적으로 관리해 영구 보존해야 할 책임이 있고, 그 책임은 민간과 정부가 함께 져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 국립중앙도서관에서는 2007년부터 ‘민간소장 고문헌 발굴사업’을 수행해 오고 있다.

국립중앙도서관은 매년 민간에 있는 고문헌을 발굴하여 목록집 간행, 자료정리, 자료촬영 및 디지털화 등을 하고, 결과물은 한국고전적종합목록시스템에 등록하여 국민들에게 서비스하고 있다. 이 사업을 통해 민간소장 고문헌 3만4930여 책이 발굴돼 체계적으로 관리할 수 있게 됐다. 또 발굴과 정리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소장자·소장처 관련 사항이 기록으로 남게 돼 도난 등으로 소유권 분쟁이 발생하는 경우 이를 해결하는 법적 근거를 제시하는 기능을 수행하기도 한다.

국가대표도서관인 국립중앙도서관은 납본이라는 법적 근거를 통해 우리나라에서 생산된 모든 지식정보자원을 수집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그러나 과거에 생산된 고문헌은 납본제도를 통해 수집되지 않아 별도로 조사하고 수집하여야 한다. 이에 국립중앙도서관은 예산을 확보해 고문헌을 비롯한 미소장 자료의 수집에 노력을 기울이고 있으나 고서들의 가격이 고가이고 예산은 한정돼 있어 이를 충분히 수집하지 못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고문헌 소장자와 소장처의 기증과 기탁은 국립중앙도서관의 고문헌 발굴과 수집사업에 큰 힘이 되고 있다. 그 대표적인 사례로, 지난 2015년 조선후기 실학자인 규남 하백원 선생의 가문은 955점의 고문헌을 국립중앙도서관에 기탁하였다. 규남 선생의 후손이 선조의 소중한 유산을 영구 보존하기 위한 최선의 선택이 국립중앙도서관의 ‘민간소장 고문헌 발굴사업’에 참여하여 기탁하는 것이라고 생각하여 이루어진 것이다. 우리 도서관에서는 이를 기념해 규남 선생의 학문과 사상을 주제로 한 심포지엄과 고문헌 강좌를 개최하고 특별전시회를 열기도 했다.

국립중앙도서관은 민간소장 고문헌 발굴사업을 통해 우리나라 고문헌을 체계적으로 관리하고 영구 보존해야 하는 책무를 민간에 있는 자료들에까지 확장하고 있다. 앞으로 국립중앙도서관은 국내뿐만 아니라 국외에 흩어져 있는 고문헌 발굴사업도 전개하여 우리의 소중한 문화유산 공개 및 영구 보존을 위해 더욱 노력할 계획이다. 국립중앙도서관의 민간소장 고문헌 발굴사업에 우리 사회의 많은 관심과 동참을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