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준의 智樂弼樂 4]. ‘드레퓌스의 단추’와 김기춘씨의 사약
2017-07-09 20:00
조용준의 智樂弼樂 4. ‘드레퓌스의 단추’와 김기춘씨의 사약
작가·문화탐사 저널리스트
1895년 1월 5일 프랑스의 유대인 포병 대위 알프레드 드레퓌스(Alfred Dreyfus)는 앵발리드 기념관 마당에 부동자세로 서 있었다. 이윽고 그의 옷에서 견장과 단추가 뜯겨져 나갔다. '르 피가로'는 이 상황을 다음과 같이 묘사했다. “군적 박탈을 상징하는 의식으로 단추와 견장이 떼어져 나가는 것을 옅은 안개 너머 꽤 가까이서 볼 수 있었다. ··· 그의 사악한 몸으로부터 인간적 가치와 사회적 신분, 그가 유린한 군대의 계급장 덕분에 그가 지금까지 누렸던 모든 것들이 하나씩 벗겨져 나갔다···.”
드레퓌스의 단추는 ‘인간적 가치와 사회적 신분’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었다. 19세기 남성에게 단추의 사회적 함의는 명예였다. 그래서 단추를 떼어내는 것은 명예를 빼앗고 땅에 처박는 행위였다. 그것은 그의 군적을 박탈하고 기아나 ‘악마의 섬’으로 유배 보낸 일보다 더 가혹한, 남성으로서 가장 견디기 힘든 모욕이었다.
드레퓌스의 혐의는 독일 스파이라는 반역죄였다. 그러나 독일대사관으로 전해진 편지를 쓴 진짜 범인이 에스테라지(Esterhazy) 소령이었음이 나중에 밝혀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군부 고급장교들은 자신들의 잘못을 덮기 위해 드레퓌스의 무죄를 인정하지 않고 국수주의 왕당파와 함께 대대적인 반유대주의 여론몰이로 나갔다. 그리하여 드레퓌스 사건은 그가 무죄라는 진보적 지식인과 개신교, 유죄라고 고집하는 보수층과 가톨릭 세력 간의 진영 싸움으로 변질되고 말았다. 소위 좌·우파 대립으로 이어진 것이다.
드레퓌스는 감옥에서 12년을 지낸 다음에야 무죄를 인정받았다. 그러나 군부는 그의 무죄를 꼬박 100년이 지나서야 인정했다. 그러니 사건을 계층대립으로 몰고 간 군부의 음모와 책략은 완벽히 성공했다. 당시 사건 당사자들은 다 죽어 사라졌고, 살아생전 그들의 ‘명예’는 온전하게 보전 받았으니 말이다.
드레퓌스 사건은 96년이 지난 1991년 한국 땅에서 재현되었다. 그해 봄은 노태우 정권의 실정과 공권력의 폭력에 항의하는 대학생·노동자들의 시위와 분신이 잇따랐다. 김기설 전민련 사회부장이 서강대 옥상에서 분신자살한 것이 5월이었다. 그러자 김지하는 “죽음의 굿판을 당장 걷어치워라”는 글을 발표했고, 예수회 신부이자 서강대 총장인 박홍은 “지금 우리 사회에는 죽음을 선동하는 어둠의 세력이 있다”며 성경에 손을 올리고 기자회견을 했다.
이 사건은 2015년 5월, 무려 24년이 지나서야 대법원이 무죄로 확정했다. 이 사건을 만들어내고 판결한 사람들, 유서와 필적이 같다고 감정결과를 쓴 국립과학수사연구소 담당자 ‘단추’는 떼어지지 않았다. 아무도 사과하지 않았고, 그들의 명예는 말짱하게 지켜졌다. 국가폭력과 공작에 의해 강기훈씨에게 남은 것은 상처투성이 삶과 암 투병에 지친 육신밖에 없었는데 말이다.
2017년 지금 이 땅은 ‘드레퓌스의 단추’로부터 자유로운가. 2007년 대선 당시 김경준씨 기획입국설 조작과 BBK 가짜편지 사건은 여전히 짙은 그늘을 드리우고 있다. 많은 이들은 이 사건의 진실이 아직 드러나지 않고 은폐되거나 조작되었다고 생각한다. 최근엔 국민의당 제보 조작사건까지 불거졌다.
왜 이런 일들이 반복해서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그것은 선량한 시민의 단추를 뜯는 사람들의 단추를 떼지 않기 때문이다. 아무리 불법을 저질러도 소나기 오고 바람 불 때만 잠시 피해가면 합법적으로 ‘뒤’를 보장받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드레퓌스의 단추를 뗐던 무리들이 그랬던 것처럼 그들의 은밀한 살롱에서 웃음을 흘리며 시간이 가기만 기다린다.
최근 김기춘씨가 법정 재판 중에 이런 말을 했다. “망한 왕조의 도승지를 했으면 사약을 받지 않겠느냐. 재판할 것도 없이 사약을 받으라면 깨끗이 마시고 끝내고 싶다.”
그를 옹호할 마음은 추호도 없지만, 그의 심정은 이해할 것도 같다. 그는 중앙정보부 대공수사부장, 서울지검 공안부장 등을 지내며 평생 남들에게 거짓 딱지를 붙이고 단추를 떼서 인생을 망치게 만들며 살아온 사람이었다. 그랬던 그였는데 막상 자신의 단추가 ‘법률에 의해’ 떼일 상황에 처하니, 그 치욕을 감당하기 힘들어진 것이다. 그래서 차라리 사약을 마시겠다고 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