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봉준호 감독 "사랑스러운 '옥자', '동물농장'서 영감 얻었다"
2017-07-02 00:10
아파트 단지에서 경기도의 작은 마을, 세계를 축약해놓은 기차까지 범위를 넓힌 그는 한 작품 안에서 강원도 산골부터 미국 뉴욕까지 넘나들게 됐다. 극 중 인물들이 더 액티브(active)해진 것도 이 때문이다.
지난 29일 개봉한 영화 ‘옥자’(감독 봉준호)는 비밀을 간직한 채 태어난 거대한 동물 옥자와 강원도 산골에서 함께 자란 소녀 미자(안서현 분)의 이야기를 다룬 작품이다. 미국 스트리밍 회사 넷플릭스가 제작비 5000만달러(한화 570억 원)를 투자한 오리지널 영화다.
“개봉을 앞두고 여러 일들이 있었네요. 하지만 저는 평소와 비슷한 마음으로 기다리고 있어요. 재밌게 보셨으면 하는 마음이죠. 스트리밍으로 보시는 분들은 스마트폰보다 대형 TV나 프로젝터를 권장합니다. 이왕이면 가까운 상영관을 찾아주시면 좋죠. 저나 촬영 감독이 보여주고자 했던 것들이 있기 때문에, 디테일을 보기 위해서는 (극장이) 더 좋겠죠.”
“이 정도는 뭐…. 찍지 못한 스트레스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죠. 영화가 완성 돼 받는 스트레스잖아요? 아예 찍지 못했다면 한이 됐겠죠. 하하하. 옥자가 너무 귀엽잖아요. 걔를 상상만 하다가 끝냈다면 정말 한이 맺혀서 오뉴월 서리로 내렸을 거예요. 저는 완성 시키는 사람이니까, 이 문제는 제 손을 벗어난 영역이라고 생각해요. 저는 투자배급사의 대표도 아니잖아요? 창작자로서 무사히 완성하고 보여드릴 수 있게 됐으니까요.”
옥자의 탄생 과정은 어땠을까? 강원도 산골을 누비는 동물과 소녀의 모습이 기묘하기도 하고 사랑스럽기도 해 물었더니, 봉 감독은 “혹시 강아지 키우시나요?”라고 물어왔다.
그리하여 귀엽고 사랑스러운 옥자가 탄생했다. 슈퍼 돼지로 불리지만 코끼리의 피부, 하마와 돼지를 합쳐놓은 기묘한 얼굴의 동물이다.
“전체적으로는 돼지룩인데 소심하게 변형하는 것보다 과감하게 변형하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돼지 같지 않은데 사람들은 계속 돼지라고 부르는 묘한 모습이 보고 싶었고요. 결국 유전자 조작으로 드러나니까 GM답게 모양을 변형하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괴물’을 디자인한 장희철 씨와 옥자에 대한 많은 이야기를 주고받았는데 돼지, 하마 외에도 매너티 사진을 적극적으로 나눴어요. 미국 플로리다에 사는 순하고 평화로운 동물이에요. 이 얼굴에서 영감을 얻었죠.”
미자에게 있어 옥자는 반려동물이자 둘도 없는 친구다. 어찌 보면 옥자는 ‘반려 동물’인 셈인데, 그에게 흔한 동물 이름이 아닌 사람 이름을 지어준 것은 왜였을까?
“그건 미자의 할아버지인 희봉의 만행이라고 생각해요. 하하하. (안)서현이도 제게 ‘제 이름은 왜 미자예요?’라고 물어본 적이 있어요. 촌스러운 작명 센스는 일제 잔재인 작명 센스라고 봤죠. 해외에서도 ‘옥자’라는 이름에 관심이 많았어요. ‘오케이자(Okja)’라고 부르기도 하고, 그 이름에 관해 궁금해 했죠. 때마다 저는 ‘젊은 애들에게 붙여주면 기절해버릴 만큼의 촌스러운 이름’이라고 답했어요. 영국에서는 그런 이름이 ‘마가렛뜨’라고 하더라고요. 세계 어디에나 그런 이름이 있다고요.”
시놉시스를 쓰던 때에는 ‘애니멀’이라는 가제가 붙어있었다. 그러던 중 “가축에는 이름을 붙이지 않는다. 이름을 붙이는 순간 하나의 존재로 정이 들어버려 도축장으로 떠날 때 힘들어진다”는 칼럼니스트 황교익의 이야기를 듣게 됐다. 그는 특별한 존재인 슈퍼 돼지에게 이름을 붙여주기로 했다.
“처음에 제목을 들으면 다들 의아해 해요. ‘할머니 이야기인가? 아니면 워낭소리 같은 건가’ 싶기도 하죠.”
관객들의 오해는 제목뿐만이 아니었다. 미국이나 호주 등 서구권 관객들은 포스터 및 굿즈 등에서 사랑스럽게 표현된 옥자를 보고 “디즈니 가족영화 쯤으로 착각하고” 영화를 보러오는 일도 있었다. 제 2의 ‘판의 미로 - 오필리아와 세 개의 열쇠’ 같은 사태가 벌어진 셈이다. “무장해제하고 보던 관객들이 충격을 받는 일”도 더러 있었다. “반려동물을 키우는 이들에게는 공포영화 급”이라고 거들자, 그는 수긍하며 “일본 시사회 때도 많은 분들이 울더라”고 회상했다.
“많은 여성 관객들이 우는 걸 보면서 ‘저들은 분명 애묘인일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일본은 고양이를 많이 키우니까. 반려동물을 키우는 분들은 호러적으로 받아들이는데 우리나라에서 12세 관람가가 떨어졌어요. 그걸 보고 ‘등급 위원회 분들은 동물을 키우지 않는 구나’라고 생각했죠. 하하하. 나름 엄정한 판단 기준과 공정으로 기준을 세우셨겠지만. 나라마다 기준이 다르니까요.”
봉준호 감독은 특히 관객들이 불편해할 신에 관해 이야기하며 알폰소 신을 짚었다. 공장식 축산의 단면이자 알폰소와 옥자의 강제 교미 신으로 인해 해외에서도 불편한 기색을 보였다고.
“다른 할리우드 스튜디오에서는 ‘알폰소 신을 뺀다면 제작을 생각해보겠다’고 했어요. 그런 조건들이 많았죠. 하지만 옥자가 겪는 수난을 보여줘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유일하게 그런 것에 문제제기를 하지 않은 게 넷플릭스였어요. 뭐든 해도 좋다고. 하하하. 뭐랄까 넷플릭스는 회사가 묘해요. ‘Fu**** Delicious’라는 대사가 있었는데, 해외 각국에 자막 번역을 할 때 ‘가장 센 언어로 뭉뚱그리지 말라’고 지침이 나온대요. 창작자의 입장에선 고맙죠. 최종 편집권도 주고, 18세 이상 관람가여도 상관없다고 하니까.”
창작의 자유를 만끽하게 해준 넷플릭스와의 작업은 이후 봉 감독에게도 영향을 미칠까? 봉준호 감독은 가볍게 수긍하며 현 영화계 현황을 설명했다. “명장 마틴 스콜세지 감독이 왜 넷플릭스로 갔겠느냐”면서.
“마틴 스콜세지 같은 감독이 왜 넷플릭스로 갔을까요? 창작의 자유를 원하기 때문이겠죠. 스튜디오에서도 마틴 스콜세지 같은 감독을 빼앗기고 싶지 않다면 유연해져야할 거예요. 제가 이렇게 반복해 언급하는 건 넷플릭스가 잘 되라고 하는 말은 아니고…. 이렇게 언급해야 (영화 스튜디오들은) 변하고, (넷플릭스는) 변하지 않기 때문이죠. 저는 거창하게 영화의 미래에 관심이 없어요. 제 작품의 완성도에만 관심이 있죠. 영화 업게 전체를 신경 쓰기엔 저는 아직 모자랍니다. 대신 선택에 대한 예의와 책임을 지려고 하는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