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용론’ 위기극복 10년 ‘코트라’, 새로 도약해야

2017-06-19 06:00
코트라 “역할·위상 바뀌나?”(하)

아주경제 채명석 기자 = 중소기업 지원과 해외기업의 국내 투자 유치, 통상활동 등을 통합 진행하는 코트라를 차지하고자 하는 부처간 갈등은 과거에 있었다.

1997년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사태 발발과 함께 집권한 김대중 정부는 정부조직 개편을 단행하면서 산자부의 전신인 통상산업부의 통상 부문을 외무부 산하로 떼어내 장관급 수장이 이끄는 별도조직 통상교섭본부를 신설했으며, 두 부처의 명칭은 각각 산업통상자원부, 외교통상부로 바꿨다.

외통부는 이 기회를 살려 정부조직법과 무역투자진흥공사법을 고쳐 코트라를 가져오겠다고 나섰다. 통상외교 활동의 원활한 추진 및 재외공관과의 원활한 업무 협조 관계를 이뤄내기 위해서는 민간경제 지원 역할을 하는 코트라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산자부가 강력히 반발하며, 첨예하게 갈등이 대립되는 가운데, 1998년 4월 14일 국무회의에서 김대중 대통령이 “코트라를 산자부 소속으로 만든 것은 잘못이다. 외통부를 만든 뜻을 모르느냐”며 강하게 질책하는 등 통상업무의 외통부 일원화를 지시하면서 코트라 이전은 시간문제로 보였다.

하지만 6일 후 국무조정실은 코트라의 산업부에 놓아두기로 결정했고, 청와대도 승인했다. 중소기업 수출진작 등 국내 산업과 관련된 부분은 외통부보다 산자부가 맡는 게 타당하다는 지적과 함께 정부조직법을 개편한지 얼마 안된 시점에 다시 조직 개편을 추진하는 것은 시기적으로도 적당하지 않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그런데, 당시 양 부처간 갈등에 드러나지 않았으나 코트라를 차지하기 위해 또 다른 부처가 접근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바로 재정경제부였다. 전직 코트라 고위 관계자들에 따르면, 기존 재정경제원에서 김대중 정부 출범 후 예산 부문을 떼어낸 뒤 발족한 재정경제부는 부처간 경쟁에서 밀리지 않는 위상을 갖기 위해, 특히 김대중 정부로부터 힘을 받은 외통부를 견제하기 위해 코트라를 가져오기 위한 물밑협상을 진행했다는 것이다.

전직 코트라 고위임원은 “당시 재경부에서 코트라에 ‘백지수표’를 제시했다. 예산을 마음껏 쓰라는 의미였다”면서 “산자부의 반대와 내부 의견 차 때문에 실현되지 않았으나 재경부로 말을 갈아탔더라면 코트라의 위상이 높아졌을 것이라는 후회도 많이 하고 있다”고 전했다.

◆산자부와 갈등 고조, 무용론으로 확대
1990년대 중반 이후 코트라는 수출 진흥과 더불어 빠르게 해외로 빠져 나가는 국내기업을 대신해 외국기업의 국내 투자유치 업무를 부여받았다. 이에 영문 사명은 그대로 코트라이지만 한글로 풀어쓰면 ‘대한무역진흥공사’에서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로 바뀌었다.

1990년대 부처간 갈등 이후 코트라는 산자부 산하기관이라는 지위를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다.

하지만 코트라에겐 새로운 위기가 찾아왔다. 2000년대 들어 소리 소문 없이 코트라 무용론이 제기되더니 2006년 일부 해외 무역관에서의 비리사실이 감사 결과 적발되면서 감사원 차원에서 코트라에 대한 대대적인 사정에 돌입, 분위기는 최악의 상황까지 몰렸다.

이에 대해 당시 코트라에 근무했던 인사들은 주무부처인 산자부와의 껄끄러워진 관계가 배경에 자리잡고 있었다고 주장했다.

전직 코트라 인사는 “산자부와 코트라는 주무부처-산하기관의 관계였으나 해외 업무를 많이 하는 조직의 특성상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분위기, 외국어 실력이 뛰어난 인재들이 많이 포진한 코트라는 산자부 공무원들이 콘트롤 하는 데 한계가 있었다”면서 “수출 지원 정책을 수립할 때에도 해외시장 상황에 어두운 공무원들과 의견충돌이 많았는데 양측 모두 조직에 대한 자부심이 컸기에, 내재된 갈등이 컸다”고 설명했다.

그는 일본의 경제산업성과 도쿄전력과의 갈등 관계와 비슷하다고 보면 된다고 덧붙였다. 경산성-도쿄전력 갈등은, 일본 최고 대학인 도쿄대학교를 졸업생들 가운데 우등생들이 도쿄전력으로 다수 입사해 이들이 상대적으로 낮은 점수에 공직에 입문한 경산성 공무원들과의 업무 공조에 비협조적으로 나서면서 벌어진 것을 말한다.

이런 가운데 줄곧 산자부 고위 공무원의 낙하산 인사가 사장에 취임했던 코트라는 2005년 최초로 내부 인사가 사장으로 승진, 산자부와의 갈등이 최고조에 달했고, 무역관 비리 사태가 터졌다. 이듬해 감사원은 감사 결과 코트라 해외 무역관 30% 이상 축소, 대대적인 구조조정을 권고한 데 이어 민간 단체인 한국무역협회와의 통합론까지 제기됐다.

코트라의 자체적인 구조조정 노력,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벌어진 저성장 기조에 따른 전세계적 무역 감소 추세 등으로 인해 중소기업 수출 지원의 필요성이 대두되면서 역할은 재조명 됐고, 지금까지 그 위상을 지켜오고 있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가 출범하면서 코트라의 중소벤처기업부 이전 문제가 다시 조명을 받고 있다.

그동안 별도의 언급을 피했던 코트라는 김재홍 사장이 직접 나서 산자부 존치론을 강조했다. 김 사장은 지난 14일 창립 55주년 기자간담회에서 “산자부에 남는 것으로 되는 것 같다. 산자부나 중기부나 수출에 총괄할 수 있는 곳으로 가는 것이 합당하다. 수출은 단순히 제품만을 파는 것이 아니라 판매, 마케팅 등 전체를 아우를 수 있어야 한다”고 전했다.

코트라 관계자는 “변화된 환경에 따라 주무부처가 바뀔 수 있지만, 중소기업 수출지원에만 한정한다면 코트라의 특성을 제대로 활용할 수 없을 것”이라면서 “범 정부차원에서 코트라의 역할을 재조정하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