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희 서원대 교수, 소시민 '구보'씨의 눈으로 한국 사회를 톺아보다
2017-06-08 15:06
'해방 이후 한국의 풍경' 시리즈 3권 출간
아주경제 박상훈 기자 ="사실 운동회는 학생 가족은 물론 지역민 모두가 기다리던 공동체의 축제라는 성격이 강했어. 교장선생님, 면장, 지서장이 나란히 단상에 앉아 도란도란 얘기를 나누고, 아장아장 걷는 아이부터 갓 쓴 할아버지까지 모두가 참여하는 축제였으니까. 학교 운동회는 학생들의 애국심을 환기하는 국가적 규율 장치로 활용된 때도 있지만, 무엇보다 지역사회의 잔치 성격이 강한 집단 기억의 공간이었어."(본문 62쪽)
1935년생 소시민 '구보' 씨는 1980~90년대 학교 운동회를 이같이 회상하며 "요즘은 운동회를 잘 안 한다고 해. 내용도 많이 달라져 기존의 일부 종목에 새로 추가한 것들이 많아"라고 입맛을 다신다.
구보 씨는 잔치와 모임 외에도 의복·주거, 주식·부식, 문명·유행, 국가·국민 등을 주제로 해방 이후 70여 년간의 한국 사회를 톺아본다. 격변의 한국사를 지나온 그의 삶에는 정치사 위주의 통사가 담아내지 못한 일반 대중의 일상과 문화가 켜켜이 쌓여 있다.
김 교수는 구보 씨의 눈으로 본 우리 사회 풍경 이야기 '구보 씨가 살아온 한국 사회'와 더불어 '정부광고로 보는 일상생활사', '정부광고의 국민계몽 캠페인'(이상 살림출판사) 등 세 권을 각각 '해방 이후 한국의 풍경' 시리즈 1·2·3권으로 출간했다.
'구보 씨가 살아온 한국 사회'는 일반 대중의 입을거리와 먹거리를 비롯해 주거문화, 유행가, 경제발전 등 70여 년간 한국 소시민의 삶이 어떻게 변화해왔는지를 짚는다. 무미건조한 시대별 이슈의 나열이 아니라, 마치 옛날이야기를 들려주는 듯한 생생한 어투가 이어져 쉽고 흥미롭게 책장을 넘길 수 있다.
1979년 8월 20일 경향신문에 실린 대한석탄공사와 한국연탄공업협회의 공동 광고 '에너지 절약'편은 "에너지 절약! 연탄 한장·석유 한방울·전기 한등"이라는 헤드라인 아래, 광부가 탄광에서 일을 마치고 걸어 나오는 장면을 사진으로 제시했다. 보디 카피에서는 에너지 절약의 핵심 전략을 따로 요약 정리하기도 했는데, 계몽적 광고에 대한 비판은 차치하고라도 우리가 주목할 대목은 시대가 바뀌어도 한국 사회라는 공동체를 유지하기 위한 노력은 다양한 방식으로 계속된다는 점이다.
이 밖에도 중앙국립극장(현 국립극장)의 '국립극단 공연'편(1957. 11. 28. 동아일보), 체신부(현 우정사업본부)의 '전화 거는 방법'편(1969. 10. 11. 경향신문) 등 흥미로운 광고 이야기가 눈길을 끈다.
3권 '정부광고의 국민계몽 캠페인'에는 "적게 낳아 잘 기르자"(1960년대), "딸 아들 구별 말고 둘만 낳아 잘 기르자"(70년대), "둘도 많다" "잘 키운 딸 하나 열 아들 안 부럽다" "하나씩만 낳아도 삼천리는 초만원"(80년대) 등 인구정책의 변화를 고스란히 보여주는 계몽적 카피를 비롯해 "쥐를 잡자!"는 헤드라인으로 대변되는 전국 동시 쥐잡기 운동 광고, "아직도 우리 사회에 유해 식품이 유통된다는 것은 문화 국민의 수치"라고 지적했던 부정불량식품 캠페인 광고 등이 등장한다.
시대의 변화를 앞지르진 않아도, 서투를지언정 시대에 조금씩 조응해왔던 나라의 정책을 하나하나 돌이켜보는 것은 독자들에게 여유있는 웃음을 주기에 충분하다. 그렇지만 이들 광고를 마냥 유희로 치부할 수는 없다.
"전매청은 이번 애연가 여러분의 선택의 폭을 보다 넓혀 드리기 위하여 제조담배의 품종을 다양화하였읍니다"(전매청 '새 담배 발매' 광고, 1974, 동아일보)같은 양두구육(羊頭狗肉) 광고나 "수출 실적 1억 불을 돌파하는 날을 수출의 날로 기념하고 이를 계기로 수출 증진 사상을 전 국민에게 고취"(대한무역진흥공사 '수출의 노래' 광고, 1954, 한국일보)한다는 과잉 계몽성 광고가 지금은 없다고 확신할 수 없기 때문이다.
1권 136쪽 | 2권 148쪽 | 3권 148쪽 | 각권 48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