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꿈의 제인' 이민지라는 도화지

2017-06-08 07:00

영화 '꿈의 제인'에서 소현 역을 맡은 배우 이민지[사진=엣나인필름 제공]

아주경제 최송희 기자 = 이를테면 도화지 같은 인상. 식상한 표현이겠지만 배우 이민지(29)를 이보다 더 잘 설명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언제나, 어디서나 극 중 캐릭터와 완벽한 일체감을 가지는 그는 어떤 인물, 어떤 삶이든 그려낼 준비가 돼 있다.

대중이 이민지를 각기 다른 얼굴로 기억나는 것도 이와 같은 맥락이다. 때로는 밝은 소녀, 때로는 우울하고 슬픈 얼굴을 그려내는 그는 지난달 31일 개봉한 영화 ‘꿈의 제인’에서도 이제까지 보지 못한 또 다른 얼굴을 드러냈다.

어디에도 받아들여지지 못한 소녀 소현(이민지 분)과 누구와도 함께하길 바라는 미스터리한 여인 제인(구교환 분)의 특별한 만남을 그린 ‘꿈의 제인’에서 이민지는 가출 청소년 소현 역을 맡았다.

“오래간만에 우울한 모습으로 돌아왔죠? 하하하. 그동안 ‘응답하라1988’, ‘선암여고 탐정단’ 등 밝은 캐릭터를 하다가 오랜만에 억압받는 캐릭터를 맡게 되니 친정으로 돌아온 기분이 들어요. 역시 저는 고통을 받아야 재미를 느끼는 것 같아요. 하하하.”

영화 '꿈의 제인'에서 소현 역을 맡은 배우 이민지[사진=엣나인필름 제공]


영화 ‘꿈의 제인’이 세상 밖으로 나오기까지 걸린 시간은 약 2년여 정도. 이민지는 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처음 완성된 영화를 보게 됐다. 그로부터 약 반 년이 지나 다시금 정식 개봉을 앞두게 된 상황. 주연배우인 이민지의 감회는 남다를 수밖에 없었다.

“부국제 상영할 때 처음 봤어요. 시나리오에 담긴 것들이 영상으로 옮겨지면서 더욱 의미 깊어졌죠. 영화 말미 제인이 공연하는 장면이 있는데 그 장면의 경우에는 후시 녹음할 때부터 기대가 컸어요. ‘전체적으로 한 번 보고 후시 녹음을 하겠다’며 요청을 하기도 했었거든요. 완성된 영화를 보고 나니 더 와닿는 느낌? 울컥하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죠.”

소현은 안쓰러운 아이다. 혼자 남겨지는 것이 두려워 어떻게든 사람들과 어울리려 애쓰지만 그런 소현을 받아주는 이는 없다. 관객들의 안타까움을 샀던 소현을 이민지는 어떻게 받아들였을까? 그에게 소현의 첫인상을 물었다.

“타의로 이기적인 선택을 하는 아이라는 느낌이었어요. 처음에는 이기적인 모습이 있다고 생각했었는데 연기를 하면서는 이기적이라기보다는 사회성, 감정 표현, 대화하는 방법을 배울 기회가 없었다는 느낌이 들더라고요. 연민에 대한 감정이 커졌어요. 제인을 더 빨리 만났다면 어땠을까?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소현은 극단적 상황에 처해지고 자신만의 방법으로 살길을 찾는다. 소현이 겪는 상황들은 극단적이지만 그가 겪는 감정들은 보통의 관객들 역시 가깝게 느낄 만한 구석이 많았다. 이민지에게 “소현의 면면 중 이해할 수 있던 부분”에 대해 질문했다.

영화 '꿈의 제인'에서 소현 역을 맡은 배우 이민지[사진=엣나인필름 제공]


“일단 소현을 연기하면서 어렸을 때 느낌을 떠올리려고 노력했어요. 저는 내성적인 사람이었거든요. 가만히 있어도 친구가 모이는 아이가 있고, 누군가의 근처에 있어야만 무리에 속할 수 있는 아이가 있잖아요. 제가 바로 후자에 가까웠어요. 이제는 혼자서도 잘 즐길 수 있는 나이가 되었지만, 예전엔 그랬죠. 완벽하게 소현을 이해할 순 없었지만, 이 친구가 처한 상황에 대한 이해는 있었어요.”

그렇다면 반대의 경우는 무엇일까? 이민지는 “가출팸이라는 무리 안에서 벌어지는 일은 이해할 수 없었다”고 답변했다. 상황적으로도 충격적이지만 아이들이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이는 모습에 두려움까지 느꼈다고.

“감독님게도 ‘이게 현실적일까?’ 하는 질문을 많이 했어요. 아이를 죽이고 트렁크에 담아 묻거나, 살해한 다음 불로 태우기도 하잖아요. ‘아무리 그래도 아이들인데…’ 감독님께 제 마음을 전달하니, 감독님께서는 ‘가출팸의 현실은 더 잔혹하다. 더 안 좋다’고 하시더라고요. 쉬이 이해할 순 없었지만, 그 현실에 노출된 아이들을 이해하려고 했어요.”

소현에 대한 이해와 오해. 이민지는 의뭉스러운 소현을 가장 가깝게 표현하기 위해 숱한 고민을 거쳤다. 그렇다면 연기적인 측면은 어땠을까? 그에게 연기적, 캐릭터 적인 면에서 소현을 어떻게 접근했는지 질문했다.

“소현이는 제인과 지수 사이에서 왔다 갔다 하잖아요. 화자 같은 느낌으로…. 그렇기 때문에 그들의 감정에 따라가면 중구난방일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 최대한 감정 표현을 절제했어요. 그사이에 클로즈업을 많이 땄는데 미묘한 표현을 하는 것에 중점을 뒀죠. 소현이는 다른 친구들보다 더 사회성이 떨어지고 못 배운 친구니까. 감정표현이나 말하는 방법을 배울 수 없었고 드러낼 수 없다고 생각했어요. 어린 아이들이 무표정으로 일관하는 것 같은 느낌을 주려고 했죠.”

영화 '꿈의 제인'에서 소현 역을 맡은 배우 이민지[사진=엣나인필름 제공]


이민지의 해석으로 인해 소현은 더 풍성한 서브 텍스트를 지니게 됐다. 도화지처럼 극 중 인물을 생생하게 그려내는 이민지에게도 어려운 점이 있었을까? ‘꿈의 제인’을 연기하면서 연기적으로 느낀 고충을 물었다.

“같이 연기하는 친구들이랑 너무 친해져 버린 거? 하하하. 병욱팸에 대한 두려움을 늘 가지고 있어야 하는데 경혜를 비롯해 병욱팸 친구들이랑 너무 가까워진 거예요. 다들 매체 연기를 처음 해보는 친구들이라서 마냥 신기해하고 즐거워하는 걸 보면서 저도 휘말려버렸던 것 같아요. 너무 재밌게 논 거죠. 너무 극과 극이다 보니까 친분을 가지고 있으니 감정적으로 힘든 부분도 있었던 것 같아요.”

조성희 감독의 영화 ‘짐승의 끝’을 비롯해 ‘애드벌룬’, ‘세이프’ 등 다양한 독립영화에서 활약한 이민지지만 “처음으로 매체 연기를 하는 친구들에게 부러움을 느끼기도” 했다. 그들의 독보적 이미지에 대한 열망이었다.

“병욱 역의 이석형이나 나경 역의 경혜 등, 다들 캐릭터가 워낙 확고해서…. 그런 독보적인 분위기가 부러웠어요. 저는 워낙 평범하잖아요? 동명이인도 너무 많고…. 한때는 이름이라도 독특한 거로 (예명을) 지어볼까? 했었는데 이미 작품을 많이 해버려서요. 하하하. 어떤 강렬한 하나의 이미지에 대한 열망도 있어요.”

소녀의 이미지가 강한 이민지지만 그는 소녀 외에도 임산부, 조선족 등 다양한 캐릭터를 연기해왔다. “어려 보이는 건 좋지만 언제까지 교복을 입을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다”는 그는 다양한 캐릭터와 작품에 대한 열망을 숨기지 않고 드러냈다.

“자꾸 왔다 갔다 해요. ‘무매력이 매력이다’ 싶다가도, 한 가지 독보적 이미지를 가졌으면 좋겠다 싶죠. 또 교복을 언제까지 입을까 걱정하기도 하고 또 입을 수 있을 때 실컷 입어야지 생각해요.”

영화 '꿈의 제인'에서 소현 역을 맡은 배우 이민지[사진=엣나인필름 제공]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 故 김영애와 함께한 영화 ‘현기증’에서 이민지는 모두의 예상을 뒤엎고 일진 학생 역을 맡아 열연하기도 했으니 말이다.

“그때 일진 역과 일진에게 맞는 아이 역할이 있었어요. 오디션을 보고 당연히 맞는 역을 맡겠구나 했었는데 이돈구 감독님이 ‘아니다. 때리는 역이다’라고 하시는 거예요. 너무 궁금해서 왜냐고 물었더니 ‘맞게 생긴 애가 때리면 재밌을 것 같다’고 하시더라고요. 머리가 띵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나쁘지 않은데?’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돈구 감독님처럼 ‘그렇게 보이지 않는 애’가 벌이는 것들에 대해 연기해보고 싶어요.”

아직 보여줄 것이 너무도 많은 이민지. “열심히 차기작을 고르는 중”이라는 그에게, “다음번에 만날 때까지 지킬 수 있는 약속을 한 가지 하자”고 제안했다.

“글쎄요. 빠른 시일 안에 다시 만날 수 있었으면 좋겠네요. 그때는 조금 더 여유 있는 사람이 돼 돌아올게요. 사진도 자연스럽게 찍고! (인터뷰용 사진 촬영 시, 이민지는 상당히 어색해했다.) 사진 찍을 때 여유가 넘쳤으면 좋겠네요. 이런 것들이 익숙해 보였으면 좋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