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꿈의 제인' 조현훈 감독, 누구도 상처받지 않기를
2017-05-29 07:00
제인(구교환 분)은 트랜스젠더다. 때때로 미러볼을 훔치고, 비치볼을 주우며 버려진 아이들을 품기도 한다. 가출 청소년들의 엄마를 자처한 그는 불행한 인생을 불행한 아이들과 견디며 살아간다. 시시한 행복을 꿈꾸는 제인과 아이들이지만 삶은 언제나 녹록지 않은 법이다.
영화 ‘꿈의 제인’(감독 조현훈)은 명암(明暗)에 관해 이야기한다. 어디에도 받아들여지지 못한 소녀 소현(이민지 분)과 누구와도 함께하길 바라는 미스터리한 여인 제인이 만나며 벌어지는 일련의 사건은 “녹록지 않은 삶” 그 자체다.
극 중 인물들은 앞을 내다볼 수 없을 정도로 깊은 어둠 속에 살고, 한줄기 내리는 빛은 강렬하고 또 아름답다. 조현훈 감독은 제인과 아이들이 겪는 불행과 시시한 행복을 섬세하게 바라보고 또 어루만지고자 했다. 어둠이 깊은 곳에서 빛은 더 강렬해지기 마련이므로. 조현훈 감독은 영화의 곳곳에 어떤 빛을 녹여내고자 했다.
다음은 조현훈 감독과의 일문일답이다.
제21회 부산국제영화제(이하 부국제)에 이어 언론시사회까지 마쳤다. 볼 때마다 기분이 다를 것 같다
- 부국제 때는 뭐랄까. 떨어져 보기가 힘들었다. 후반 작업을 마친 직후였기 때문이다. 시간이 조금 흘러 언론시사회 때 한 번 더 보았는데 그때는 (관객의 입장에서) 볼 수 있었다. 영화를 보면서 현실과 초현실을 구분하는 것이 무의미하다는 생각이 들더라. 이 일이 정말로 일어났느냐 논리적인가 하는 것보다 감정의 흐름과 소현의 욕망에 따라 보게 됐다. 관객들도 이런 흐름대로 봐주었으면 좋겠다.
캐스팅이 화려하다. 구교환부터 이민지, 이주영 등 독립영화계에서는 다들 유명한 배우인데
캐스팅 후 만족도도 높았겠다
- 그렇다. 하하하. 사실 구교환이나 이민지가 관심받는 것도 좋지만 박경혜(나경 역)라는 배우가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것도 기분이 좋다(박경혜는 드라마 ‘도깨비’를 비롯해 영화 ‘조작된 도시’ 등에 출연했다). 약간 과장해서 친동생 같은 기분이 든다. 자부심도 느껴지고…. ‘우리 영화에는 이렇게 열심히 하고, 잘하는 배우들이 많이 있다!’는 느낌이다.
조현훈 감독의 말처럼 배우들이 인상 깊었다. “열심히 하고, 잘하는” 배우들이었다
- 대개 연기 경험이 많지 않은 배우들이었다. 하지만 다들 열정적이었고 패기가 넘쳐서 제가 도움을 많이 받았다. 디렉션을 기다리는 스타일이 아니라 그 안에서 동선을 짜는 등 적극적인 모습을 보여줬다. 패기로 똘똘 뭉쳐, 자유롭고 신선한 아이디어를 많이 내줬다.
이번 작품에서 가장 주안점을 둔 부분은 무엇인가?
- 제가 이번 영화에서 가장 조심해야 하고 신경 쓴 점은 ‘뭘 보여줄까?’가 아니라, ‘뭘 덜어내야 할까?’였다. 이 영화가 누구에게도 상처 주지 않기를 바랐다. 때문에 선택하는 것이 어려웠고 오래 걸렸다. 다루는 이야기가 어떤 분들에게는 무심한 상처를 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로서 역할을 하려면 보여주지 않아야 할 것들에 신경을 쓰자고 생각했고 그것을 목표로 삼았다.
트랜스젠더·가출 청소년 등 예민하게 다가갈 수밖에 없는 캐릭터들이 주를 이뤘다. 가장 경계한 점은 무엇인가?
- 구교환과 제가 가장 중요하게 여겼던 것은 ‘흉내 내지 말자’는 점이었다. 제 주변에 트랜스젠더 친구들이 몇 있는데 그들을 만나고 취재하면서 내린 결론은 ‘제인에 관해 단정 짓지 말자’는 점이었다. 우리는 제인이 어떤 여자고, 뭘 먹고, 뭘 보았고, 무슨 생각을 하는지에 관해 이야기를 나눴다. 사석에서나 회의에서나 그런 공정만 이뤄졌다. 연기적 캐스트를 표현하기 위해 무엇을 하자고 만든 건 없었다. 제인이라는 인물 그대로를 받아들이고 만나는 날만 기다린 것 같다. 그리고 구교환이라는 배우가 제인을 섬세하고 예민하게, 대상화하지 않으려 했다.
소현을 비롯해 가출 청소년 캐릭터를 만드는 과정도 궁금하다. 취재는 어떻게 이뤄졌나?
- 신문 기사나 아이들을 기반으로 한 창작물을 보다가 쉼터를 찾아가게 됐다. 선생님이 만남을 주선해줬고 아이들과 가까워지면서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누군가 이 영화를 10분만 본다면, 제인과 소현의 첫만남을 보여주고 싶다”고 말했었다. 그만큼 가장 중요하고 공들인 시퀀스일 텐데
- 결국 저는 소수자도 아니고 아이들도 아니다. 연출자의 입장에서 그 점을 많이 고민했어야 했다. 그 인물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면 가장 신경 써야 할 것 무엇일까를 고민했고, 제인과 소현의 첫만남은 그에 대한 결과물인 셈이다. 그 10분이 결과이자 시작인 셈이다. 거창하게 들릴 수도 있지만 제인이 하는 말들이 진심 어리게 전달될 수 있기를 바랐다. 그러기 위해서는 그 10분이 필요했다. 그 10분을 위해 나머지 부분을 만든 것이다. 이야기 전달이 필요하니까. 저는 아이들의 삶을 함부로 전시하거나 무책임하게 내팽개쳐두는 방식으로 끝맺는 것처럼 잘못된 일은 없다고 생각한다.
극 중 딸기 케이크는 소현에게 중요한 요소다. 소현의 전사와 관련된 부분인데 삭제되었다고 들었다
- 극 중 소현과 친모의 에피소드가 있었다. 소현의 친모에 대한 언급들, 즉 친모의 죽음과 관련된 대사나 전사들이 있었는데 제인과 소현의 관계를 더 명확하게 혹은 복잡하게 만드는 방향을 줄이기 위해 삭제했다. 1부에서는 쉼터 선생님, 2부에서는 뉴월드 직원으로 나오는 주희(박현영 분)의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가 잠시 나오지 않나. 그것만으로 소현이 제인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방향이 잡힌다고 생각했다.
소현이 제인을 어머니처럼 여기는 것?
- 오히려 반대다. 어머니에 대한 언급이 지속적이거나 반복적이면 제인과 소현의 관계가 너무 단순화될 거라 여겼다. 소현이 제인을 어머니처럼 생각하는 건 아니다. 존경과 동경의 마음이 있는데 마치 그게 모녀 관계로 단순화될까 봐 그런 위험을 없애고자 한 것이다.
현실과 초현실을 구분하는 것이 무의미하다고 했지만, 영화의 흐름상 현실과 초현실의 경계가 명확하게 느껴지는데
- 연출자가 의도한 대로 결과물이 나오지 않을 때도 있다. 영화는 유기적으로 많은 조건이 연결돼 하나의 생명체(?)처럼 변화하기 마련이다. 능동적으로 변화하고 만들어가는 경향이 있는 것이다. 저는 (시나리오를 쓸 땐) 명확한 구분을 두고 방향을 잡았지만, 찍을 땐 그것에 얽매이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양가적인 태도를 가지고 직관적 판단으로 찍고자 했다. 제가 말씀드린 건 의도와는 별개로 결과물에서는 즐겁게, 흥미롭게 감상하시길 바란다는 것이다. 실제로 일어난 일이나 현실, 비현실에 상관없이 흐름을 쫓다 보면 결국 말하고자 하는 것이 어떤 의미로든 전달된다고 본다. 그게 영화가 가진 미덕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많은 힌트가 있다고 생각한다. ‘꿈’의 제인, ‘현실’ 속 제인을 구분하는 것은 색의 조화라고 보는데
- 현실과 비현실을 구분하기보다는 소현이 원하는 상상, 꿈, 소망의 반영이라고 생각한다. 자기가 이상적 공간이나 인물, 가족을 떠올릴 때 본 것 안에서 재해석이 있고 재배치가 있기 마련이니까. 마음을 반영한 것의 차이인 거다. 그런 의미에서 병욱팸이 가진 특성은 형광등의 불빛이었다. 의상과 조명도 푸른빛, 동일한 톤으로 작업했다. 그것 또한 소현의 어떤 상상의 반영이라고 볼 수도 있는 거다.
‘꿈의 제인’에는 여러 복선, 힌트가 있다. 재관람하는 이들에게 팁을 준다면?
- 아마 여러 번 보실 분은 없겠지만…. 만약 재관람을 하신다면 미술, 의상, 조명, 음악 등을 주의 깊게 보시길 바란다. 하하하. 2부에는 음악이 거의 없다. 어떤 사건 이후 음악이 나오는데 그때부터 벌어지는 일들은 소현의 마음과 관련이 있어서 음악을 거의 깔지 않았다.
또 말씀하신 대로 소품 적으로 반복되는 게 있다. 한 번 관람하시는 분들이 캐치하기 힘든데 명확하게 짚어야 할 것들이 있다. 소현이 먹는 음식들이 반복되기도 하고. 그런 것들처럼 숨은 장치는 분명 있다. 하지만 만든 사람 의도대로는 볼 필요는 없으니 장치로 하여금 본인의 논리에 맞춰 개인적인, 자유로운 감상으로 해석하시길 바란다. 달리 해석이 되더라도 의미 있게 느껴질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