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험계약 고지의무, 소비자 아닌 보험사에 부과해야"

2017-05-30 13:47
금감원, 지난해 고지의무 민원 1400건 돌파
정운천 의원, '상법 일부 개정안' 대표 발의

아주경제 임애신 기자 = 보험회사의 '갑질' 중 하나로 여겨지는 고지의무 위반을 줄이기 위해 소비자가 아닌 보험회사에 의무를 지워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황현영 국회입법조사처 정치행정조사실 법제사법팀 입법조사관은 30일 '보험소비자 보호를 위한 고지의무의 입법적 개선방안' 보고서를 통해 "새로 출범한 현 정부의 최우선 정책과제로 꼽히는 게 민생"이라며 "민생의 관점에서 보험소비자 보호 문제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실제 질병·사고 등 예기치 못한 위험에 대비 보험계약을 체결하지만 정작 사고가 나서 보험금을 청구하면 보험회사로부터 지급이 거절되는 일이 많다.  
 

[사진= 아이클릭아트 제공]

특히, 보험회사와 보험소비자 사이에 자주 발생하는 분쟁 중 하나가 고지의무 위반이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고지의무 위반으로 인해 제기된 민원건수는 지난해 한 해만 1424건에 달한다.

이처럼 고지의무 위반 관련 민원이 많은 것은 고지의무가 보험사가 아닌 보험계약자에게 지워졌기 때문이다. 현행법에서는 보험계약을 체결할 때 보험계약자가 보험자에 대해 중요한 사항을 스스로 알리고 부실하게 고지를 하지 않을 의무를 규정하고 있다.

만약 보험계약자가 중요한 사항임에도 알리지 않거나 부실하게 고지했다면 보험회사는 보험계약을 일방적으로 해지할 수 있다. 또 보험사고가 발생한 경우에도 원칙적으로 보험자에게 보험금지급을 거절할 수 있다.

보험계약자는 보험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데다 보험금 지급에 있어 어떤 게 주요 사안인지 판단하기 어렵다. 때문에 실무에선 보험자가 서면으로 질문할 사항을 정하고 이를 중요한 사항으로 추정하고 있다. 질문표 이외의 사항도 중요한 것이라고 하면 보험계약자는 여전히 이를 고지해야 하는 부담이 있다.

대법원도 지난 2004년 보험자가 질문하지 않은 사항을 보험계약자가 스스로 답하는 것을 기대하는 건 어렵다는 판결을 내렸다.

황 조사관은 "보험자가 보험에 대해 더 많은 정보를 가지고 있음에도 보험계약자에게 일방적으로 고지의무를 부여하고 그 책임을 지우는 것은 불합리하다는 지적이 나온다"고 말했다.

프랑스·독일·일본 등 주요국에서는 보험소비자가 적극적으로 알려야 하는 고지의무를 폐지하고, 보험회사가 질문하는 것에만 수동적으로 답변토록 하는 응답의무를 채택해 보험소비자를 보호하고 있다.

황 조사관은 "보험계약 체결 시 보험자가 알고 싶은 내용을 스스로 질문하고, 보험계약자는 이에 대답할 의무만 부여하는 방식으로 보험소비자를 보호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즉, 보험계약자는 보험자가 서면으로 질문한 중요한 사항에 대해서만 답하도록 변경해 고지의무 부담을줄이자는 것이다.  그는 "보험계약자는 보험자가 서면으로 질문한 사항들에 대해서만 성실히 답변하면 고지의무 위반 위험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이를 위해서는 법개정이 필요하다. 국회 산업통상자원위원회 간사인 바른정당 정운천 의원은 지난 29일 가입자의 고지의무를 보험사가 소비자에게 묻고 확인하는 방식으로 바꾸는 내용의 '상법 일부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정운천 의원은 "그동안 보험회사가 보험소비자에게 일방적 고지의무를 부과해 이를 지키지 못해 피해를 보는 경우가 빈번히 발생했다"며 "보험계약 시에 보험회사가 직접 질문하고 소비자는 이에 대답할 의무만 부여해 보험소비자를 보호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