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유라, 덴마크 도피 245일 중 150일은 구치소 독방서 지내

2017-05-30 06:30

어린 아들 내세워 강제송환·구금 피하려 했지만 관철 못해
에이스 변호사 선임해 '버티기'…'엄마가 다했다' 혐의부인
송환불복 항소심 돌연 철회…1주일에 한 번꼴로 아들 면회

(코펜하겐=연합뉴스) 김병수 특파원 = 덴마크에서 귀국을 거부하며 버티던 정유라 씨가 30일 오후 한국 송환 길에 오르게 돼 245일간의 도피생활을 마감하게 됐다.

박근혜정부에서 이른바 '비선 실세'로 불렸던 어머니 최순실 씨의 국정농단 의혹 사건의 진실을 밝혀줄 핵심 관계자 중 한 명으로 꼽혔던 정 씨는 어떻게든 검찰 수사와 사법처리를 피하려고 안간힘을 썼지만 245일이라는 시간만 허비한 채 결국 법의 심판대에 서게 됐다.

독일에서 생활하다가 작년 9월 28일 덴마크 올보르로 몰래 거처를 옮긴 정 씨의 덴마크 도피생활은 그 시작은 창대했을지 모르지만, 국내 강제송환을 앞둔 시점의 그 끝은 초라하고 미미해 보인다.

무엇보다 정 씨는 덴마크에서 245일간 지내면서 150일을 구치소에서 보냈다.

정 씨는 어머니의 국정농단 의혹이라는 태풍이 몰아치자 덴마크로 옮겨온 뒤 출산으로 잠시 그만뒀던 승마를 계속하며 2020년 도쿄 올림픽 출전을 위해 재기를 준비해왔다.

그러던 중 정 씨는 이화여대 부정입학 및 학사 특혜 의혹, 삼성전자의 승마 지원을 빌미로 한 제3자 뇌물 수수 혐의 등으로 인터폴에 수배를 받게 됐고, 올해 1월 1일 올보르 경찰에 체포됐다.

정 씨는 체포 이튿날 올보르 법정에서 열린 구금심리에서 자신의 혐의에 대해 부인으로 일관했다.

덴마크 검찰이 한국으로부터 송환 요구를 받은 정 씨의 혐의를 지적하자 정 씨는 "모든 것을 엄마가 다 했다", "나는 모른다"며 부인했다.

한편으로는 당시 19개월 된 어린 아들을 내세워 자신이 한국에 송환되면 어머니 최 씨처럼 구속되게 돼 아이를 볼 봐줄 사람이 없다고 읍소하며 덴마크의 인도주의에 호소했다.

정 씨는 아이를 계속 보게만 해 준다면 귀국할 용의가 있다면서 '조건부 귀국 의사'를 내보이며 한국 특검과 협상을 시도하기도 했다.

하지만 덴마크 사법당국의 판단은 냉정했다.

덴마크 검찰이 정 씨의 경우 덴마크에 연고가 없어 도주할 우려가 있다며 정 씨의 송환 여부를 결정할 때까지 신병확보를 위해 구금을 요청하자 법원은 이를 수락했다.

정 씨는 구금은 부당하다며 고등법원에까지 호소, 구금을 면해보려 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한국 특검으로부터 정 씨 송환을 요구받은 덴마크 검찰은 정 씨 문제를 아주 신중하게 처리했다.

2월 말까지가 활동시한인 한국 특검은 활동을 마치기 전에 정 씨를 한국으로 송환해 혐의에 대해 조사할 것을 희망했지만, 덴마크 검찰은 한국 상황은 살피지 않고 자기들 시간표대로만 움직였다.

덴마크 검찰에 정통한 소식통은 "덴마크 검찰은 송환을 결정할 경우 송환 불복 소송까지 염두에 두고 철저하게 문제를 살펴보기 때문에 상당 시간이 걸릴 수 있다고 한다"고 설명했다.

그 결과 덴마크 검찰은 당초 한국의 송환 요청 한 달 이내에 송환 여부를 결정짓겠다는 언급과는 달리 두 차례 연기를 거쳐 3월 17일에야 정 씨의 한국 송환을 결정했다.

정 씨는 또 덴마크에서 유명한 에이스급 변호사를 잇달아 선임해 검찰이 송환 결정을 내릴 경우 법정 싸움에서 이를 뒤집기 위해 부심했다.

제일 먼저 정 씨 변호를 맡았던 얀 슈나이더 변호사를 비롯해 변호 도중 갑자기 사망한 피터 마틴 블링켄베르 변호사, 마이클 율 에릭슨 변호사 모두 덴마크의 일류변호사로 꼽힌다.

이 때문에 정 씨는 '황제변론'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더욱이 정 씨는 지난 1월 2일 법정에서 한국 언론과 가진 인터뷰에서 덴마크 국선변호사의 도움을 받고 있다고 주장했지만, 사실이 아닌 것으로 탄로 나 '거짓말 논란'에 휩싸이기도 했다.

한국 송환 지연작전을 편 정 씨는 에이스급 변호사의 도움과 덴마크 검찰의 신중한 업무 처리 덕분(?)에 특검의 수사 칼날은 피할 수 있었다.

그렇지만 덴마크 검찰과 법원이 더이상 정 씨 희망대로 움직이지는 않았다.

정 씨는 덴마크 검찰이 한국 송환을 결정하자 곧바로 올보르 지방법원에 이의를 제기하고 송환 결정을 뒤집기 위한 법정 투쟁에 들어갔다.

그러나 덴마크 지방법원은 4월 19일 1심에서 한국으로 송환하라고 선고, 검찰의 손을 들어줬다.

정 씨는 지방법원 결정에 불복, 고등법원에 곧바로 항소했으며 내달 8일 항소심 재판을 기다리던 중 갑자기 항소심을 자진 철회, 한국 강제송환을 수용했다.

정 씨가 갑작스럽게 마음을 바꾼 것은 2심 재판에서 1심 판결을 뒤집기 어렵다고 판단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또 오랜 시절 구금 생활로 인해 피로감이 겹치고 5월 9일 실시된 한국 대선에서 정권이 교체돼 계속 버티기를 해도 실익이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특히 정 씨가 한국에 들어가 실형을 받을 경우 덴마크 구치소 생활 기간은 복역 기간으로 인정되지 않기 때문에 정 씨로선 귀국을 늦출수록 '이중복역 기간'이 길어질 수밖에 없다는 현실도 작용했다는 후문이다.

두 번째 변호를 맡았던 블링켄베르 변호사는 언론 인터뷰에서 정 씨의 덴마크 망명 가능성까지 거론하며 정 씨의 강제송환을 지연시키기 위해 골몰했으나 후에 정 씨는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이를 명쾌하게 부인했다.

한편, 정 씨가 표면적으로 한국 송환을 거부한 이유는 아이와 떨어질 수 없다는 것이었다.

덴마크 검찰과 법원은 구금 중인 정 씨에게 어린 아들과 면회할 기회를 제공, 정 씨는 1주일에 한 번 정도 아들을 만난 것으로 전해졌다.

덴마크 구치소 생활이 한국보다 훨씬 호사스럽고 자유롭다는 점도 정 씨가 자진 귀국을 머뭇거린 요인 중 하나로 꼽힌다.

정 씨는 책상은 물론 TV와 냉장고까지 갖춰진 구치소에서 생활했고, 심지어 피자를 주문해서 먹을 수도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덴마크 구치소 생활이 더 편하고 자유롭더라도 2023년 8월까지 유효한 체포영장이 떨어진 정 씨에겐 내일을 기약할 수 없다는 점에서 새로운 시작을 위해 한국행을 결심한 것으로 보인다.

이에 따라 정 씨가 귀국 이후에 검찰 수사에 성실히 임할지 주목된다.

bingsoo@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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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