칸영화제 폐막…'무관'의 한국영화, 고른 호평 속 외연 확대
2017-05-29 05:31
'넷플릭스' 뜨거운 논란 …여성 감독 '선전'
(칸=연합뉴스) 조재영 기자 = 올해로 70회를 맞은 칸국제영화제가 28일(현지시간) 12일간의 여정을 마치고 막을 내렸다.
프랑스 남부의 휴양 도시 칸은 올해도 세계 각국의 스타들과 관광객들이 몰려들었지만, 영화제 도중 날아든 영국 맨체스터 공연장 폭탄 테러 소식으로 축제 분위기는 예전처럼 떠들썩하지는 않았다.
경쟁부문에 초청된 19편 가운데 평론가들의 열광적인 지지를 이끌어낸 작품도 없어 다소 밋밋한 분위기가 이어졌다.
그나마 칸을 달군 것은 넷플릭스 논란이었다. 온라인 배급방식을 둘러싼 논란은 영화제 내내 이어지며 칸을 토론의 장으로 만들었다.
한국영화는 수상에 실패했지만, 평단의 고른 호평을 받으며 세계 영화계에 한국을 알렸다.
◇한국영화 수상 실패…평단의 고른 지지는 성과
올해 칸영화제에 진출한 봉준호 감독의 '옥자'와 홍상수 감독의 '그 후'는 수상 명단에 포함되지 못했다.
이에 따라 한국영화는 지난해에 이어 2년 연속 수상에 실패했다.
두 작품 모두 칸에서 공개된 이후 비교적 호평을 받았기에 수상에 대한 기대가 컸던 게 사실.
그러나 넷플릭스 논란과 올해 칸영화제 경쟁부문에 처음 진출했다는 점 등은 봉 감독에게 불리하게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사실 '옥자'는 제작비 5천만달러(약 600억원)가 투입된 영화로, 저예산 예술 영화들을 주로 상영하는 칸 경쟁부문에서는 이례적인 작품이었다. 그런데도 칸영화제가 '옥자'를 초청한 것은 그만큼 봉 감독에 대한 애정을 보여준 것이라는 분석이다. 따라서 칸영화제는 앞으로도 봉 감독에게 러브콜을 보낼 가능성이 크다.
신작 '그 후'로 네 번째 경쟁부문에 진출한 홍 감독 역시 평단의 고른 지지를 얻었으며 작품의 외연을 넓혔다는 평가다.
영화제 소식지 '스크린데일리'는 '그 후'에 평점 2.5점을, 영화전문지 '르 필름 프랑세즈'는 2.1점을 매겼다. 전체 경쟁작 19편 가운데 중간 정도 수준이다.
전찬일 영화평론가는 "그동안 홍 감독의 영화에 대한 폭넓은 지지는 없었지만, '그 후'는 이례적으로 각국의 고른 지지를 받았다"면서 "이번에 수상은 못 했지만, 홍 감독 영화의 외연이 그만큼 넓어진 것은 큰 성과"라고 평가했다.
이외에 미드나이트 스크리닝에서 상영된 '불한당'(변성현 감독)과 '악녀'(정병길 감독)가 칸 현지에서 뜨거운 호응을 받으면서 한국영화의 위상을 높였다.
◇예상 벗어나지 않은 수상작
올해 칸영화제에는 총 19편의 경쟁작이 선보였지만, 뚜렷한 두각을 나타낸 작품은 많지 않았다.
영화제 소식지인 스크린데일리의 평점을 보면 4점 만점 가운데 3점을 넘긴 작품은 '러브리스'(3.2점)와 '유 어 네버 리얼리 히어'(3.1점) 두 작품뿐이었다. 지난해 5편이 3점 이상을 받은 것에 비하면 적은 편이다.
그래도 수상작들을 보면 비교적 호평을 받은 작품들이 수상 목록에 들었다.
스웨덴 루벤 외스틀룬드 감독의 '더 스퀘어'가 황금종려상을 받은 것은 작품의 화제성에 비해 다소 의외라는 반응도 있다. 그러나 영화적 수준이나 완성도 면에서는 높게 평가를 받았던 작품이다.
심사위원 대상을 받은 로뱅 캉피요 감독의 '120 비츠 퍼 미닛'도 수상작으로 점쳐졌던 영화다. 인권 에이즈 운동 단체 액트 업(ACT UP)의 이야기를 다룬 '하드코어 휴먼 드라마'로, 강렬한 드라마가 평단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올해는 여성감독 3명이 진출해 2명(소피아 코폴라 감독, 린 램지)이 수상의 영예를 누렸다. 1993년 '피아노'의 제인 캠피온 감독이 여성감독 최초로 황금종려상을 받은 지 24년 만에 여성감독 황금종려상 2호가 나올지 관심이 쏠렸으나, 다음으로 미뤄지게 됐다.
2009년과 2012년 '하얀 리본'과 '아무르'로 황금종려상을 두 차례나 거머쥔 오스트리아의 거장 미하엘 하네케(75) 감독은 5년 만에 신작 '해피엔드'를 들고 칸을 찾았으나 빈손으로 돌아가야 했다.
◇칸영화제 달군 '넷플릭스 논란'
올해 칸영화제를 달군 것은 작품보다도 넷플릭스 논란이었다.
온라인으로 배급하는 넷플릭스 영화 '옥자'와 '더 메예로위치 스토리스'(미국 노아 바움백 감독)가 칸영화제 70년 역사상 처음으로 경쟁부문에 진출했기 때문이다.
프랑스 극장협회의 반발이 거세면서 칸영화제 집행위원회는 내년부터 극장 개봉 영화만 경쟁 부문에 초청하겠다고 방침까지 바꿔야 했다.
그러나 칸영화제 경쟁부문 심사위원장인 스페인의 영화감독 페드로 알모도바르가 영화제 개막일인 지난 17일 "극장에서 볼 수 없는 영화에 황금종려상이 돌아가면 거대한 모순이 될 것"이라고 언급하면서 영화제가 발칵 뒤집혔다.
알모도바르는 며칠 뒤 미국의 영화전문지 인디와이어와 인터뷰에서 통역이 잘못돼 빚어진 오해라는 취지로 해명했다.
지난 19일(현지시간) 뤼미에르 대극장에서 열린 '옥자' 언론 상영회에서는 스크린에 넷플릭스 자막이 뜰 때 야유가, 봉준호 감독의 이름이 떴을 때는 환호가 나오기도 했다.
다른 영화 감독들도 공식 기자회견 때마다 온라인 배급방식에 대한 질문 공세에 시달려야 했다.
넷플릭스 논란은 결과적으로 넷플릭스와 칸영화제 모두에 '윈윈'이 된 것으로 보인다.
넷플릭스는 노이즈 마케팅 효과를 톡톡히 봤다. 칸영화제도 손해를 본 것은 없다. 70주년임에도 테러에 대한 경계 강화와 마땅한 화제작이 없어 비교적 조용히 열린 올해 영화제에서 그나마 넷플릭스 논란이 활기를 불어넣었기 때문이다. 칸영화제가 던진 배급방식의 변화와 영화의 정의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은 당분간 세계 영화계에 주요 화두가 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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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