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의 상징물' 돌하르방 "날 좀 찾아줍써!"

2017-05-25 06:00

명칭·유래 등 연구 답보상태…"더 많은 관심 필요"

(제주=연합뉴스) 변지철 기자 = 저는 제주의 대표 상징물이라 일컬어지는 '돌하르방'입니다.

툭 튀어나온 부리부리한 눈에 넓적한 주먹코, 꾹 다문 입을 하고 벙거지를 쓴 모습은 누가 봐도 잘생긴 얼굴은 아닙니다.

그런데도 '제주'하면 바로 '돌하르방'을 떠올릴 정도로 많은 분들이 저를 아껴주십니다.

그런 저에게도 출생의 비밀이라 할까요? 고민이 많습니다. 왜냐구요?

◇ 돌하르방 둘러싼 명칭·기원 논란

사실 저는 제 진짜 이름이 무엇인지, 제가 언제부터 어떻게 왜 태어났는지 모릅니다.

'돌하르방'이라는 말은 누구나 알듯 '돌 할아버지'라는 뜻의 제주방언이지만 원래 제 이름은 아닙니다.

돌하르방 명칭은 해방 이후부터 어린아이들 사이에서 불리다가 1971년 제주도 민속자료 제2호로 지정되면서 공식화됐습니다.

조선왕조 500년 기간은 물론 오랜 세월 사람들은 '벅수머리', '우석(성)목', '무석(성)목', '옹중석(翁仲石)' 등 다양한 이름으로 저를 불렸지만 본디 제 이름이 무엇인지 알 길이 없습니다.

이 때문에 지방문화재 지정 당시 공식명칭을 두고 논란이 일기도 했습니다.

저는 제주의 많은 돌하르방 중에서도 관덕정에 있는 제주 민속자료 제2-1호인 첫째입니다.

조선시대 당시 48형제가 있어 제주의 행정구역인 제주목·대정현·정의현 등 1목 2현의 성문 밖 입구에 세워졌다고 합니다.

형제들은 모두 제주에서 흔한 현무암으로 만들어졌는데, 1목 2현 중 어디에 있느냐에 따라 모양과 크기에 공통점과 차이가 있습니다. 크기만 말하면, 제주목 형제들의 평균 신장은 181.6㎝로 가장 크고, 정의현은 141.4㎝, 대정현은 136.2㎝입니다.

48형제 중 지금은 제주목(23기)·대정현(12기)·정의현(12기)의 47형제만 남았습니다. 제주목에 있던 형제 1기의 행방은 하늘로 솟았는지 땅으로 꺼졌는지 오리무중입니다.

게다가 제주목의 형제 2기는 서울 경복궁 내 국립민속박물관 야외전시장으로 옮겨져 결국 제주에는 45형제만 남아 있는 셈입니다.

제주에 남아 있는 형제들도 사람들의 무관심과 시가지 발달과정에서 무단으로 옮겨지면서 원래 위치가 아닌 관공서와 공항, 학교, 관광지 등으로 뿔뿔이 흩어졌습니다.

솔직히 48형제가 맞는지도 의문일뿐더러 우리 형제들이 언제 누구에 의해 어떤 목적으로 만들어졌는지 그 기원에 대해 속 시원히 설명해주는 사람이 없습니다.

어떤 사람은 저희의 기원이 몽골·인도네시아·중국 등 외국이라고 말하기도 하고, 혹자는 제주도에서 자연스럽게 생겨났다고 하기도 합니다.

또 다른 사람은 한반도에 널리 있는 돌 장승의 영향을 받았다고 말하고 있지만, 누구의 말이 맞는지 알 수 없습니다.

맏이로서 동생들 볼 면목이 없습니다.

◇ 제주 사람들의 돌하르방 사랑

예부터 제주 사람들은 저희 형제를 마을의 악한 기운을 막고 소원을 이뤄주는 수호신이라 생각했습니다.

할머니들은 저를 보면 두 손을 모아 합장하고, 공손히 허리를 굽혀 절을 하기도 했습니다. 마을에 질병이 번지지 않은 것도, 숱한 난리가 일어났을 때 피해를 보지 않은 것도 모두 다 저희 덕분이라 믿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아기를 갖지 못한 여인들이 저희의 코를 쪼아서 돌가루를 물에 타 먹곤 했기 때문에 대정현에 있는 제 아우는 결국에 코가 떨어져 나가기도 했답니다.

어느덧 시간이 지나다 보니 저는 제주의 상징이 됐습니다.

너나 할 것 없이 저희 형제들의 모습을 만들어 기념품을 만들기도 했고, 심지어 토종꿀·오미자차 등도 돌하르방 모양을 한 병 속에 담아 팔았습니다.

인기가 너무나 좋아서 1984년 제주에서 전국소년체전(1만1천500여명 참가)이 열릴 당시에는 토산품으로 지정한 제주의 50종 131개 품목 중 돌하르방 기념품이 1만여 개가 팔리기도 했습니다.

제작자에 따라 멋대로 기념품이 제작되는 문제가 발생하자 1987년에는 제주도에서 저희 형제 중 제주시 삼성혈 입구 동쪽에 세워진 돌하르방과 KBS 제주방송국 정문, 서귀포시 표선면 성읍 남문, 대정읍 인성리의 돌하르방 등 4기를 표준형으로 정해 공예품·기념상품·광고·전시물 등의 제작 기준으로 삼기도 했습니다. 지금은 이런 기준에 상관없이 다양한 형태의 돌하르방이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이외에도 고르바초프 소련 대통령 등 중요한 손님이 제주를 찾을 때마다 제 모형이 선물로 전달되는 영광(?)을 누리기도 했죠.

돌하르방 특허를 둘러싼 논란으로 제주도 전체가 발칵 뒤집힌 적도 있었습니다.

1993년 인천의 한 업자가 제 모습을 상표로 특허청에 등록, 독점권을 행사하는 바람에 수십년 전부터 돌하르방 형상을 이용해 토산품을 만들고 석재 가공업을 해 온 사람들이 당장 일을 그만둬야 할 상황까지 놓이기도 했던 것입니다.

논란은 제주도와 도의회 차원에서 국무총리에 돌하르방 상표등록 취소를 건의하는 등 사회문제로 불거지자 해당 개인이 자진 등록 취소를 하면서 일단락됐습니다.

이처럼 유명세를 누린 탓일까요? 제주의 대표 상징물에 대해 조사를 하면 도민들은 언제나 저를 1순위로 꼽아주셨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부탁이 있습니다.

저희 형제를 아껴주시는 만큼 돌하르방에 대해 더 많은 관심을 가져주기 바랍니다.

연구도 하고 자세한 조사를 통해 제가 누군지 언제부터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속 시원히 밝혀주실 수는 없을까요?



bjc@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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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