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혁 사각지대] <中> 특수활동비-‘권력자 쌈짓돈’…적폐청산은 가까이에 있다
2017-05-25 00:00
아주경제 최신형 기자 =개혁은 공존의 미학이다. 개혁에 따른 분열과 통합의 균형점이 필요하다. 어느 한쪽만 청산 대상으로 삼는 불균형적 혁신은 위험하다. 피아(彼我)를 가르는 개혁이 아닌 탈정파적 사회적 혁신이 절실하다는 얘기다. 입법부 역시 예외는 아니다. 87년 체제 이전 입법부는 민주주의의 보루였다. 군부 독재 시절 땐 통법부로 전락한 아픈 역사도 있었다. 이제는 국회도 변할 때다. 민주화 이후 민주주의 시대를 맞아 한층 비대해진 국회에도 개혁의 사각지대는 존재한다. 기득권의 공고화는 비정상의 일상화다. 이에 본지는 총 3회 기획을 통해 개혁 사각지대의 그늘을 되짚어본다. <편집자 주>
예산 편성의 명확한 법적 근거는 없다. 그런데도 1년 예산은 9000억원에 달한다. 사용 후 영수증 처리 등을 생략해도 상관없다. 문재인 대통령의 업무지시 5호인 이영렬 전 서울중앙지검장과 안태근 전 법무부 검찰국장의 ‘돈봉투 만찬’의 핵심 고리다. 기밀 유지가 필요한 국정수행 활동에 드는 경비인 ‘특수활동비’ 얘기다.
특수활동비는 ‘권력의 쌈짓돈’이다. 사용 증빙자료 첨부의 예외조항 탓에 ‘깜깜이 예산’, ‘눈먼 돈’으로 불린다. 민주정부 10년 때도, 공공정보 개방화(정부 3.0)를 추구한 직전 정부 때도 ‘깜깜이 예산’은 법 예외 지대였다.
◆지난 10년간 특수활동비 8兆 웃돌았다
24일 정치권에 따르면 특수활동비의 법적 근거는 기획재정부의 ‘예산안 및 기금운용계획안 작성 지침 내 특수활동비’ 항목, ‘국가정보원법’(제3조1항5호)의 정보 및 보안 업무의 기획·조정 등이다.
지난 10년간 특수활동비는 8조원을 웃돈다. ‘한국납세자연맹’이 정보공개청구를 통해 17개 기관을 정리한 결과, 2007년부터 2016년까지 총 특수활동비는 8조5000억원이었다.
국정원이 4조7000억원으로 가장 많았고 △국방부 1조6000억원 △경찰청 1조2000억원 △법무부 2600억원 △청와대 2500억원가량 등으로 조사됐다.
올해 특수활동비 예산 편성은 국가정보원 4947억원을 비롯해 △국방부 1814억원 △경찰청 1301억원 △법무부(검찰 포함) 288억원 △청와대 265억원 △국회·국민안전처 81억원 △미래창조과학부 58억원 △국세청 54억원 △감사원 38억원 △통일부 21억원 △국무조정실 12억원 △외교부 8억원 △관세청 7억원 △국민권익위원회 4억원 △대법원 3억원 등이었다.
◆특수활동비 ‘옥상옥 특권’··· 20대 관련 법안 1건
문제는 국가정보원 이외 법적 근거가 사실상 전무한 특수활동비가 국가재정법(제37조)에 따라 총액으로 편성하면서 타 부처들도 ‘묻지마 예산’으로 끼워넣는다는 점이다. ‘각 부처의 묻지마 예산→깜깜이 예산→혈세의 사적 유용→감시 무풍지대’의 악순환을 반복한다는 얘기다.
국회의 개혁 의지도 문제다. 행정부 감시의 마지막 보루인 국회 역시 특수활동비 수혜 기관이다. 여당 원내대표는 월 5000만원, 야당 원내대표는 월 4000만원, 각 상임위원장은 월 1000만원 정도 지급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19대 국회 땐 여야 내부에선 특수활동비의 카드 사용을 쇄신안으로 내놨지만 흐지부지됐다. 특수활동비 폐지 관련 법안은 소관 상임위에서 2년 넘게 계류하다가 임기 만료로 자동 폐기됐다.
20대 국회에선 국정원 특수활동비에 대한 국회 통제 강화 관련 법(박찬대 더불어민주당 의원 대표발의)이 단 한 건만 발의돼 있다. 정부여당의 혁신 의지가 시험대에 오른 셈이다. 야당은 이미 특수활동비에 대한 칼질을 예고했다. 자유한국당과 국민의당은 “특수활동비의 전면적 손질이 불가피하다”며 예산 삭감 의지를 드러냈다.
배종찬 리서치앤리서치 본부장은 이날 본지와의 통화에서 “정부여당은 올해 연말 지지도의 조정기를 거칠 것”이라며 “기득권 내려놓기를 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에 부딪힐 것”이라고 말했다. 이재교 세종대 교수도 “특수활동비는 구시대 유물”이라고 꼬집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