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사우디 연설 균형외교 무너뜨려…"미국적 가치 훼손" 비판도
2017-05-22 12:55
"사우디 등 수니파편 든 것"…"인권문제 거론 없어"
아주경제 윤은숙 기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1일(현지시간) 사우디아라비아 리야드에서 열린 '이슬람 아랍-미국 정상회담'의 기조연설에서 이슬람국가들과 미국의 연대를 강조하고 나섰다. 극단주의에 맞서서 함께 평화를 추구해야 한다는 내용이 골자이지만, 일부에서는 이날 연설이 미국의 중동외교 균형을 무너뜨렸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 이슬람에 유화적 제스처 불구··· 미 언론 "수니파 편만 드는 것은 위험"
이날 연설에서 이슬람 국가들에 대한 트럼프 대통령의 어조는 이전과는 확실히 달랐다. 유세 당시 무슬림의 전면 입국금지를 외쳤던 트럼프 대통령은 완전히 톤을 바꿔 이슬람 세계와의 관계 회복을 바란다고 강조했다. 또 이슬람 국가들은 극단주의를 몰아낼 미국의 파트너라고 치켜세웠다.
미국 일간지 USA 투데이는 "(트럼프의) 발언이 잘못된 것은 없지만, 이 같은 표현은 이슬람 친화정책 추진에 있어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면서 "선과 악의 분명한 선을 긋는다는 것은 사우디를 대표로 하는 수니와 이란을 대표로 하는 시아파 사이를 구분하는 선을 긋는다는 것을 암시한다"고 지적했다.
신문은 또 "수니와 시아의 오랜 긴장이 계속되는 상황에서 미국이 이처럼 기울어진 외교를 할 필요가 있는지 모르겠다"면서 "사실 이슬람국가(IS), 알카에다 등 대부분의 극단주의 이슬람 단체는 수니파이며, 9·11 테러를 일으킨 사람 중 상당수도 사우디 국적자였다"고 비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또 "이란이 평화의 동반자가 될 때까지 양심적인 모든 나라는 이란을 고립시키는 데 협력하면서 이란 국민이 정의로운 정부를 가질 날을 위해 기도하자"고 촉구했다.
이에 대해 이란 정부는 공식적인 반응을 내놓지 않았지만, 모하마드 자바드 자리프 이란 외무장관은 트위터에서 "진정한 선거를 치른 이란이 민주주의와 근대화의 수호자라는 미국 대통령에게 공격받았다"며 "이것은 (미국의) 외교정책인가. 아니면 단순히 사우디에서 4800억 달러(약 537조원)를 얻어내기 위한 것인가"라고 비난했다.
◆ "인권에 대한 언급 없어··· 반미국적 연설"
이번 연설에 대해 긍정적인 평가도 있었다. 전 CBS 유명앵커인 밥 시퍼는 "이번 연설은 꽤 대통령다웠다"라고 짚었다. 미국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는 트럼프 대통령이 이슬람권 국가와의 관계를 개선하기 위해 온건한 연설을 했다고 평가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유세 당시부터 사용해온 '급진 이슬람 테러리즘(radical Islamic terrorism)'이라는 용어를 의도적으로 생략한 것이 상징적인 의미를 띤다고 미국 언론들은 전했다.
그러나 일부에서는 트럼프 대통령이 지나치게 유화적인 제스처를 취한 것이 아니냐는 비판도 있다. 워싱턴포스트(WP)는 트럼프의 연설이 "미국적 가치를 이해하지 못하고 훼손한 반미국적 연설이었다"고 비판했다. WP는 "사우디를 성스러운 땅이라고 부른 트럼프 대통령은 인권의 중요성에 대해서는 제대로 언급하지 않으면서 인권을 짓밟는 독재 정권에 대한 칭찬만을 늘어놓았다"고 비난했다.
미국은 인권 타압을 이유로 러시아, 중국, 이란, 쿠바와 같은 정권들을 비난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우디아라비아에 대해 칭찬을 늘어놓으면서 이중적인 모습을 보였다는 것이다.
한편 이번 순방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압델 파타 엘시시 이집트 대통령과 만남을 가지며, 그를 친구라고 부르기도 했다.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은 엘시시 대통령이 선거로 선출된 대통령을 2014년 쿠데타로 몰아냈다는 이유로 그와의 만남을 거부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