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길원의 헬스노트] 주치의 선정, 오롯이 대통령의 몫이다

2017-05-18 06:13

(서울=연합뉴스) 김길원 기자 = 요즘 의료계에서는 문재인 대통령의 주치의로 누가 선정될지가 초미의 관심사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비선진료로 주치의의 명예가 땅에 떨어진 상황에서 청와대에 새로운 주치의 시스템이 도입될지를 두고도 이목이 쏠린다.

대통령 주치의는 보통 새 대통령이 취임한 후 1개월을 전후한 시점에 선정되는 게 일반적이다. 더욱이 문 대통령은 정부 출범 한 달 반 만인 다음 달 말 미국에서 한·미 정상회담을 개최할 예정이어서 늦어도 이달 말이나 다음 달 초에는 주치의가 임명돼야 대통령을 수행할 수 있다.

하지만 주치의 선정과 임명이 녹록지만은 않을 전망이다.

이는 지난 정부에서 온전히 대통령의 건강을 책임져야 할 주치의들이 비선 실세인 최순실이 만들어 놓은 잘못된 비선진료의 틀에 갇힌 채 되레 이들과 은밀하게 얽히고설켜 있었던 것으로 확인되면서 이번 기회에 청와대의 주치의 시스템을 바꿔야 한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기 때문이다.

의료계에서는 새로운 주치의 시스템으로 청와대에 상주하는 의무실장 또는 국군 의무대장이 주치의를 겸임하거나, 국가 공공병원이나 대학병원을 대상으로 주치의 병원을 공모해야 한다는 주장까지 나오고 있다.

여기에 더해 아예 대통령 주치의 제도 자체를 없애자는 의견도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대통령제 국가가 어떤 형태로든 주치의를 두고 있는 점을 고려하면 너무 극단적이라는 지적이다. 카자흐스탄이나 중동 일부 국가의 경우는 주치의는 물론이고 별도의 '대통령 병원'(President's hospital)을 두고 있을 정도다.

우선 청와대 의무실장이나 국군 의무대장이 주치의를 겸임하는 데 대해서는 미국처럼 대통령이 국군 의료시스템을 적극적으로 이용한다는 측면에서 나름의 설득력이 있다. 국가 안위와 직결되는 국군 통수권자의 건강을 군 의료기관이 맡는 것은 당연하다는 논리다. 이 경우 대통령이 병원을 이용할 때 보안 유지와 경호가 용이하다는 장점도 있다. 지금까지 민간에서 임용해온 의무실장도 국군수도통합병원 등의 군의관 중에서 선발하면 된다.

실제로 미국은 '백악관 닥터(White House Doctor)'란 이름으로 군의관이 사실상 대통령 건강을 책임지고 있다. 주치의 밑에는 내과, 외과 등 진료 분야별로 군의관 5명이 한팀이 돼 움직인다. 이는 무엇보다 미국의 군 병원이 다른 유명 병원 못지않은 진료 수준을 갖췄기에 가능하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군 의료기관의 진료 역량이 이에 미치지 못한다는 게 이런 대안의 결정적인 한계로 꼽힌다.

대통령 주치의를 지낸 A씨는 "현재 우리나라 군 병원의 진료 수준이 많이 높아졌다고는 하지만, 아직은 주요 대학병원이나 미국 군 병원의 수준에는 미치지 못하는 게 현실"이라며 "향후 국군 병원이 민간병원 수준으로 진료의 질을 높인 후라면 모르겠지만, 지금 당장 국군 진료시스템에 대통령의 건강을 맡기는 건 시기상조"라고 잘라 말했다.

그는 "주치의는 대통령에게 응급상황이 발생했을 때 보안을 유지하면서 최선의 조치를 할 수 있는 자문 의료진 인맥과 판단력 등을 두루 갖춰야 한다"면서 "(주치의 선정은) 의료기관별 진료시스템과 수술의 질 차이 등 현실적인 부분을 최우선으로 고려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강조했다.

모 의과대학의 한 교수도 "우리나라 군 병원 진료는 아직 급성기 환자(치료환자)보다는 치료 후 회복단계의 정양환자가 많은 편"이라며 "군 병원의 수준을 높여야 하는 건 맞지만 지금 당장 대통령 주치의를 군에서 임명하는 건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주치의 병원 공모제'는 대통령 진료를 담당할 병원을 지정하고, 이 병원에서 주치의도 함께 맡는 방식이다. 박근혜 정부 시절에 성행했던 비선진료 같은 문제를 막을 방안으로 제시되고 있다. 대통령의 건강은 국민 모두의 관심사인 만큼 대통령의 진료 병원과 주치의를 함께 임명함으로써 투명성을 꾀하자는 주장이다.

또 그동안 서울대병원과 세브란스병원 등 일부 병원에서 도맡았던 주치의를 다른 공공병원과 대학병원으로 저변을 넓힘으로써 특혜 시비와 같은 잡음도 일소할 수 있다는 논리다.

하지만 이 주장도 주치의 임명이 촉박한 상황에서 공모와 선정에 이르는 복잡한 절차와 선정요건 등이 또 다른 논란이 될 수 있고, 보안이 생명인 대통령의 건강을 책임지는 병원과 주치의를 이렇게까지 공개하는 게 맞느냐는 지적이 부담이다.

한 대학병원 교수는 "기존에 주치의를 맡았던 병원을 피해 대통령의 인맥과 학맥에 닿는 의사나 병원을 고르다 보면 결국은 또 주치의 선정이 투명해지지 못하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공모제와 같은 과도한 주장까지 나오는 것 같다"고 분석했다.

여기에다 기존에 대통령을 진료해온 주치의 병원의 경험을 무시할 수 없다는 반론도 만만찮다. 다만, 주치의와는 별도로 미국처럼 국가 보건을 책임지는 '보건 사령관'(Surgeon General)을 둬야 한다는 데는 의료 전문가들 사이에 공감대가 형성돼 있는 분위기다.

주치의의 사전적 의미는 '어떤 사람의 병을 맡아서 치료하는 의사'다. 새 대통령의 주치의 선정에 가장 중요한 건 무엇보다 '주치의' 그 자체의 역할에 충실해야 한다는 점이다. 그동안의 사회적 논란을 떠나, 임무가 막중한 대통령의 건강을 책임지고, 최선을 다해 진료할 수 있는 실력을 갖춘 인물을 뽑는 게 무엇보다도 중요하다는 의미다. 그렇다면 외부의 의견이 아무리 많더라도, 새 주치의를 선정할 권한은 오롯이 대통령에게 있는 셈이다. 시스템을 바꾸는 것은 그 이후에 해도 늦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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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