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문재인 대통령의 사람들 '아름다운 퇴장'
2017-05-16 13:33
이호철, 양정철, 최재성 등 2선 후퇴
“가야 할 때가 언제인가를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이형기, '낙화' 중)
인구(人口)에 회자(膾炙)되는 시의 한 대목이다. 시인이자 언론인이었던 작자(作者)는 봄에 ‘분분한 낙화’를 보면서 이렇게 읊었다.
달아나는 봄과 찾아오는 여름, 곧 다가올 가을을 준비하는 모습을 담담하게 그려낸 이 시구(詩句)가 떠오른 것은 문재인 대통령의 참모들이 훌훌 떠나는 모습을 만났기 때문이다.
그는 '제 역할은 여기까지입니다'라는 장문의 글에서 “머나먼 항해는 끝났습니다. 비워야 채워지고, 곁을 내줘야 새 사람이 오는 세상 이치에 순응하고자 합니다. 그분이 정권교체를 이뤄주신 것으로 제 꿈은 달성된 것이기에 이제 여한이 없습니다”라고 밝혔다.
그는 이어 “정권교체를 갈구했지 권력을 탐하지 않았습니다. 좋은 사람을 찾아 헤맸지 자리를 탐하지 않았습니다”라며 “멀리서 그분을 응원하는 여러 시민 중 한 사람으로 그저 조용히 지낼 것입니다. 잊힐 권리를 허락해 주십시오”라고 호소했다.
이에 앞서 ‘3철’ 중 맏형인 이호철 전 청와대 민정수석도 문 대통령이 취임하는 날 해외로 출국했다.
이 전 수석은 지인들에게 “마침내 정권교체가 되고 제가 존경하는 노변(노무현 전 대통령), 문변(문재인 대통령) 두 분이 대통령이 됐다. 살아오면서 이만한 명예가 어디 있겠나. 영광이다”며 “마침내 저도 자유를 얻었다. 자유를 위해 먼 길을 떠난다”고 밝혔다.
이 전 수석은 그러면서 “삼철이라고 불리는 우리는 범죄자가 아니다. 문 대통령이 힘들고 주변에 사람이 없을 때 곁에서 묵묵히 도왔을 뿐”이라며 “그럼에도 정치적 반대자들은 ‘삼철’을 공격했고, 일부 언론은 이를 증폭시켰다. 이런 비난과 오해가 옳다거나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괜찮다. 담담하게 받아들인다”고 속내를 내비쳤다.
이 전 수석의 글은 윤승용 전 청와대 홍보수석이 SNS를 통해 소개했다. 그의 마음도 아름답게 다가왔다.
‘아름다운 퇴장’에는 최재성 전 민주당 의원도 동참했다. 그는 문 대통령이 당 대표를 지낼 때 ‘호위무사’로 불리기도 했다.
최 전 의원은 SNS를 통해 문 대통령의 제안이 있었음을 시사하며 “인재가 넘치니 원래 있던 한 명쯤은 빈손으로 있는 것도 괜찮다고 제 마음을 말씀드렸다”고 말했다.
그는 “대통령에게 신세 지는 것은 국민께 신세 지는 것인데, 정권교체 과정에서 국민께 진 신세를 조금이라도 갚는 일을 택하는 것이 좋다는 생각”이라고 설명했다.
최 전 의원은 “이런저런 하마평에 답하는 글이 됐으면 해서 올린다”라고 사족처럼 덧붙였다.
문 대통령이 취임한 이후 이어지는 인사에서 이른바 '측근'들을 찾아보기 힘들다. 대통령이 약속했던 ‘대탕평’의 실천은 인사(人事)에서 시작해 인사(人事)로 끝난다. ‘성공한 대통령’이 되기 위해서는 ‘대탕평 인사’가 필수조건이다.
노무현 정부에서 청와대 인사비서관을 지낸 최광웅 데이터정치연구소장은 본지의 특별기고를 통해 "문 대통령 스스로가 취임사에서 밝혔듯이 야당과의 ‘공존’만이 살 길이다. 그것을 제대로 실천해낼 수 있는 참모, '아니오!'라는 쓴소리도 마다하지 않을 참모가 문재인 대통령의 성패를 좌우한다"고 지적했다.
다시 문 대통령의 측근들이 보여준 ‘아름다운 퇴장’을 생각한다. 그것은 문 대통령의 빚이지만 그 빚을 떠난 이들에게 곧바로 갚지 않고 국민들에게 갚아나갈 것을 제언한다.
문 대통령의 측근들이 남긴 아름다운 퇴장의 변(辯)은 어느 칼럼의 글보다 눈부시다.
이형기 시인의 '낙화'는 이렇게 끝을 맺는다. “나의 사랑, 나의 결별 샘터에 물 고인 듯 성숙하는 내 영혼의 슬픈 눈”
[박원식 부국장 겸 정치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