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바른정당 탈당 사태, 명분도 없고 염치도 없다
2017-05-02 10:37
탄핵대선을 장미대선으로 착각한 것인가?
막판 대선 판이 크게 요동치고 있다. 바른정당 소속 13명이 2일 탈당을 선언하며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선 후보에 대한 지지를 선언했다. 이들의 탈당이 판세 자체를 뒤집지는 못하겠지만, 보수 진영의 표 쏠림 등으로 인한 대선 구도의 변화가 불가피할 전망이다.
대통령 선거라는 최대의 정치 행사를 앞두고, 변수는 늘 존재하기 마련이다. 혹자의 말대로 ‘정치는 생물’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바른정당 사태는 명분도 없고, 정치인으로서의 최소한의 염치도 없는 노릇임은 분명하다.
그들이 뛰쳐나온 자리에는 이미 다른 조직책이 선정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다시 돌아가 자신의 자리를 내놓으라고 윽박지를 것이다. 국회의원으로서 가장 중요한 것은 차기 선거에서의 승리이기 때문에, 복당에 따른 약속을 이미 받았을 지도 모를 일이다.
생각해보자. 바른정당을 창당한 날, 이들이 내건 것은 ‘깨끗하고 따뜻한 보수로 새출발하겠다’였다.
이번에 탈당 결행할 때 앞장선 이들은 김무성계다. 당시 무릎을 꿇고 맨 앞자리를 차지한 것도 김무성 의원이었다. 무슨 창피인가?
바른정당을 창당할 당시와 지금의 상황이 무엇이 달라졌나? 그 당시에 각종 의혹들이 불거져 나온 단계였다면 지금은 그 의혹들로 인해 대통령이 탄핵되고, 검찰에 구속돼 본격적인 재판이 시작된다.
달라진 상황이라고는 자신들이 선출한 대통령 후보의 지지율이 오르지 않은 것이다. 유승민 바른정당 대선 후보의 낮은 지지율이 그들의 탈당 명분이라면 참 부끄럽기 짝이 없다.
만일 김무성 의원이 대선 불출마를 선언하지 않고 대선 후보로 선출됐다면 어떻게 했을까? 그때는 유승민계로 분류되는 의원들이 탈당했을까? 그러지 않았을 것이다. 최소한 염치가 있기 때문이다.
자신이 몸담았던 당을 뛰쳐나와 새로운 정당을 출범시킬 때는 그만한 각오가 필요하고, 정치적 신념으로 충만했을 것이다. 그런 각오와 신념을 헌신짝처럼 버린 행위는 당장 눈앞의 일만 생각하고 국민적 심판이라는 미래를 내다보지 못한, 혹은 억지로 하지 않은 어리석음의 소산이다.
이번 대선은 정확하게 정의하자면 ‘장미대선’이 아니라 ‘탄핵대선’이다. 대통령이 최순실 게이트로 인해 탄핵되고 구속돼 사법처리를 앞두고 있는 상황에서 실시되는 조기 대선이다.
대통령이 탄핵 당한 책임이 있는 정당을 뛰쳐나와 호기롭게 새로운 보수를 말할 때, 그 명분은 옳았다. 궤멸된 보수진영의 새로운 성을 쌓아가기를 바라는 국민들도 많았기 때문이다.
‘도루묵’이라는 생선이 있다. 이 생선 이름의 유래를 보면, 조선시대 선조가 왜군을 피해 의주까지 달아나 먹을 것이 없는 처지에서 수라상에 오른 생선을 맛있게 먹은 뒤 묵이라고 불리는 이 생선에 은어라는 이름을 하사했다. 선조는 전쟁이 끝나 환궁한 뒤 그 생선의 맛을 잊을 수 없어 다시 수라상에 올리게 하자 그 맛이 아니었다. 선조는 다시 묵으로 하라고 말해 도루묵이 되었다고 한다.
도루묵은 억울할 것이다. 자신이 변한 것이 아니라 선조의 입맛이 변한 것이다. 바른정당을 창당할 때의 마음과 지금의 마음이 바뀐 것은 선조가 전쟁 때의 입맛과 환궁 이후의 입맛이 바뀐 것과 무엇이 다를까?
‘정치는 생물’이지만 그 기본은 신의(信義)다. 국회의원은 국민에게서 신의라는 표를 얻어 정치를 하는 것이다. 국민들은 신의를 잃어버린 정치인을 도루묵으로 취급한다.
대선까지 불과 6일밖에 남지 않았지만, 대선 판은 더 크게 요동칠 수도 있다.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의 집권을 막기 위해서라면 어떤 것이라도 할 수 있다는 이른바 ‘반문(反文) 연대’는 여전히 불씨가 꺼지지 않고 있다. 그래서 우리 정치가 얼마나 나아질까.
[박원식 부국장 겸 정치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