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窓] 봄·여름·가을·겨울, 그리고 봄
2017-04-09 16:23
서울은 지난 1일부터 9일까지 영등포구 여의서로 일대에서 여의도 봄꽃축제가 열렸다. 같은 기간 석촌호수 일대에서 석촌호수 봄꽃축제도 진행됐다. 대구도 지난달 25일부터 9일까지 이월드와 83타워 전역에서 별빛봄꽃축제가 개최됐다. 강릉에서는 오는 12일까지 경포봄꽃잔치가 열린다.
전국 최대 봄꽃 축제인 진해 군항제는 지난달 31일 전야제로 막을 올렸다. 10일까지 열리는 올해엔 보다 풍성해졌다. 처음으로 북카페가 개관하고 다양한 해양레저스포츠대회도 동시에 개최됐다. 경상남도 창원시는 진해 군항제를 맞아 진해구 음지도 진해해양공원 내 솔라파크 전시동 2층 ‘바다소리 북카페’를 개관했다. 진해해양공원은 군항제 관련 행사가 많이 열리는 주 무대다. 진해구 일대에서는 ‘2017 창원 전국 해양레저스포츠 제전’, ‘2017 창원 국제 드래곤보트 대회’ 등 각종 해양레저스포츠 대회가 동시에 열렸고 수많은 사람들이 방문했다.
만개(滿開)를 찾아 떠나는 시간의 향연(饗宴)에서 불현듯 시가 떠올랐다. 그것도 절대 어울릴 것같지 않는···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지금은 남의 땅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나는 온몸에 햇살을 받고
푸른 하늘 푸른 들이 맞붙은 곳으로
가르마 같은 논길을 따라
입술을 다문 하늘아, 들아
내 맘에는 나 혼자 온 것 같지를 않구나
네가 끌었느냐 누가 부르더냐
답답워라 말을 해다오
~
대표적인 항일시인인 고(故) 이상화가 1926년 개벽(開闢)지 6월호에 발표한 시다. 대구 출생으로 1919년 3·1운동이 일어나자 대구학생시위운동을 지휘했다. 그는 일제에 대한 저항의식과 조국에 대한 애정을 절실하고 소박한 감정으로 노래했다. 첫 연 첫 행의 “지금은 남의 땅,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라는 구절은 이 시의 가장 핵심적인 부분이다. 일제하의 민족적 울분과 저항을 노래한 몇 안 되는 시 가운데서도 매우 함축성 있게 모든 것을 말해주고 있어서다.
긴 어둠의 터널을 지나 새로운 시대를 맞을 준비를 하는 이때 하필 그 시가 오버랩됐을까. 무의식, 즉 지각작용과 기억작용이 없는 이른바 무의적(無意的)인 의식장애의 상태에서 아무 생각 없이 나온 것이라 그냥 치부하려고도 했다. 하지만 교육심리학 용어에 나오는 연역적 추론(演繹的 推論 , deductive inference)으로 되짚어 봤다.
결론부터 말하면 유구한 역사에서 우리 민족이 가장 크고 아픈 상처를 입은 한국사의 특수한 시기였다는 점을 찾을 수 있었다.
우리나라는 나라 안팎으로 큰 도전을 받고 있다. 2017년 3월 10일 헌정사상 최초의 현직 대통령이 파면됐다.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가 불거지면서 광화문 촛불집회와 대한문 태극기집회가 연일 이어졌다. 영하권 날씨에도 불구하고 집회 열기는 뜨거웠다. 대통령을 형상화한 인형이 단두대에 올라가기도 했고 성조기가 등장하고 군가도 흘렀다. 탄핵사태로 인한 국론분열이 극에 치달았다.
3년 만에 수면 밖으로 모습을 드러낸 세월호 선체 조사를 통한 참사의 진상규명을 촉구하는 목소리도 연일 터져나오고 있다. 경제지표도 우울하다.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 정세도 그 어느 때보다 꼬여 있다. 중국의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사드) 보복이 거세지고 있고 북한은 핵실험으로 우릴 위협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국가동력은 무기력에 빠졌다. 북핵과 사드로 미국과 중국이 으르렁거리지만 그저 지켜볼 뿐이다. 꺼져가는 동력을 살려보자고 대선후보들이 속속 나오며 표를 호소하지만 서로 헐뜯기 바쁘다. 오직 정권 쟁취에 혈안이다.
빨라진 대선 시계에 검증할 시간도 빠듯한 마당에 비판만 난무한다. 검증에 들어가면 발뺌부터 한다. 국가적 사안에 대해 자기의 주견(主見)도 없다. 그저 유리하다 싶으면 말을 바꾼다. 국가 발전을 위해 진정성 있는 ‘참후보’가 보이지 않는다. 심지어 그의 당선을 위해 열심히 뛰고 있는 참모들에게조차 “그가 대통령이 되면 잘할 것 같은가?”라고 물으면, 돌아오는 대답이 “글쎄요”라고 한다니 더 이상 무슨 말이 필요할까.
하지만 대한민국 역사를 보면 큰 국가 위기가 닥칠 때마다 슬기롭게 극복해 왔다. 맑은 하늘과 함께 봄은 찾아왔다. 그동안 대기를 뒤덮었던 미세먼지가 최근 봄비에 씻긴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