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기림의 머니테크] 마이너스통장의 함정
2017-04-02 06:00
KB국민·신한·우리·KEB하나·NH농협은행의 마이너스통장 잔액은 39조5386억원(2월 말 기준)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마이너스 통장의 장점은 급하게 돈이 필요하면 수천만원까지 바로 인출할 수 있다는 것이다.
급여이체 등을 하는 주거래은행에서 쉽게 계좌를 만들 수 있어 많은 직장인들이 마이너스통장을 이용한다. 마이너스 통장은 이자부담이나 원금상환 압박이 적어 한 번 이용하기 시작하면 사용액이 조금씩 늘어나는 경우가 많다.
최근 은행들이 앞다퉈 마이너스통장 금리를 올리면서 부실화 가능성이 커지고 있으며, 또 다른 가계부채의 뇌관으로 지적받고 있다. 지난달 24일 은행연합회가 공시한 은행별 마이너스통장 대출금리를 보면, 지난달 기업은행의 마이너스통장 대출금리는 평균 6.22%까지 상승했다.
2개월 전인 지난해 12월 5.99%보다 0.23%포인트 오른 것이다. 한국은행 기준금리는 8개월째 1.25%로 유지되고 있지만 많은 직장인들이 사용하는 마이너스통장 금리는 계속 오르고 있다.
국내에서 개인고객이 가장 많은 KB국민은행의 지난달 마이너스통장 금리는 지난해 12월 5.53%보다 0.4%포인트가 오른 평균 5.93%다. 우리은행(4.84%)과 신한은행(4.64%)은 4% 후반대이다.
은행들은 신용등급이 가장 좋은 1~3등급 고객들에 대해서도 4~5%의 금리를 책정한 것으로 알려진다. KEB하나은행이 1~3등급 고객의 마이너스통장에 대해 4.05%, NH농협은행도 4.19%의 금리를 책정했다.
기업은행은 이보다도 높은 4.53%의 금리를 최고 신용등급 고객들에게 책정했다. 지방은행인 경남은행(5.37%)과 전북은행(5.05%)의 경우 1~3등급 고객들의 마이너스통장 금리가 5%를 넘었다.
마이너스통장 금리가 기준금리보다 4~5배나 높은 이유는 뭘까. 상품 구조상 이자를 올려도 고객들이 알기 어렵기 때문이다.
마이너스통장은 쓸 때마다 해당일 금리를 적용해 이자를 계산한다. 수시로 변하는 통장의 잔액을 매일 반영하는 셈이다.
예를 들어 3000만원 한도의 통장을 보유한 고객이 어제 1000만원을 사용하고 2000만원의 잔액이 남았으면, 1000만원에 대해 어제 기준 금리로 이자를 계산한다.
오늘 500만원을 갚아 2500만원이 한도잔액으로 남으면 다시 500만원에 대한 이자를 오늘 금리로 적용해 1개월의 이자를 합산하는 식이다.
또 이자가 빠져나가는 날도 매달 다르다. 따라서 어떤 달은 35일에 대한 이자를 내야 하고 어떤 달은 28일간의 이자만 내도 된다. 결국 고객은 이자액이 수시로 변하기 때문에 적용 받은 금리를 쉽게 알 수 없다.
정말 마이너스통장이 필요한지 생각해봐야 한다. 아주 쉽고 직관적인 관점으로 생각해 보자. 1000만원의 마이너스 통장을 가진 사람이 언제 자산을 모을 수 있을까.
아마도 마이너스를 다 메우지 않고서는 절대로 돈을 모을 수 없을 것이다. 마이너스 통장을 정리하기 위해 열심히 적금을 하는 사람을 만난 적이 있다.
그에게 제시한 방법은 저축을 하지 말고 그 돈으로 일단 마이너스 통장을 갚으라는 것이었다. 마이너스 통장을 정리한 뒤 저축을 시작해서 자산을 만드는 것이 돈 관리의 올바른 순서다.
그러자 그 고객은 "지금 붓고 있는 적금이 1년 뒤면 만기가 되므로 마이너스 통장을 없앨 수 있다. 그 후 다시 만나 상담을 받겠다"고 말했다.
그리고 약속대로 1년 후 다시 만났다. 그러나 상황은 하나도 변하지 않았다. 마이너스 대출 금액이 오히려 2000만원으로 불었다. 신용도가 좋으니 은행 측에서 마이너스 대출 한도를 늘려주었던 것이다.
한도가 늘어나니 마치 재산이 불어난 것 같은 기분이 든다. 현금 인출기에서 버튼만 눌러도 돈이 나오니 굳이 빨리 갚아야 한다는 생각도 들지 않았다고 했다.
게다가 따로 요구하지 않아도 은행이 마이너스통장의 기간을 자동으로 연장해 주니 어느새 한도를 다 채우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돈의 속성이다. '마이너스통장을 갖고 있지만 열심히 돈을 모으면 부자가 될 수 있다'란 생각부터 당장 버려야 한다. 단언컨대 한 번 마이너스통장을 사용하기 시작하면 없애기 어렵고, 그만큼 돈을 모으는 길은 멀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