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창] 책임이라 쓰고 권력이라 읽는 우리 행정

2017-03-30 14:41
시대착오적 공직자는 파면돼야

 



아주경제 김창익 기자 = 대통령이 탄핵되고 검찰에 소환됐다. 결국엔 구속영장실질심사를 받으러 법원에도 나왔다. 작년 10월 19일부터 시작된 촛불의 힘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난 10일 대통령이 파면되기까지 20회에 걸친 촛불집회가 있었다. 참가한 연인원만 1600만명에 이른다. 

주목할 만한 점은 어떤 억압과 폭력도 없었다는 점이다. 지금까지 집회 참가자들의 평화적 시위에 초점이 맞춰졌지만 공권력의 비폭력도 비약적인 변화다.

현재 40대 이상의 경우 많은 이들이 광장에서 공권력으로부터 폭력을 당한 경험이 있다. 박정희·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들을 거치는 동안 광장에선 공권력이 자행한 수많은 폭행이 있었고 심지어 총칼이 난무한 적도 있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본의 아니게 대한민국 민주주의 발전의 방증이 됐다. 박 전 대통령은 130여일간 광화문 광장에서 자신의 퇴진을 외치는 목소리를 향해 어떤 억압과 폭력도 가하지 않았다. 그가 민주주의적인 리더라서기보다는 우리사회의 민주주의가 그만큼 한 단계 더 성숙했다는 증거다. 섣부른 공권력의 투입이 감당할 수 없는 민심의 이반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우리사회는 국민이 평화적으로 대통령을 파면시키는 수준까지 진보했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를 겪는 과정에서 우리는 자존감에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입었지만 반대급부로 스스로 성숙함을 확인하기도 했다.

하지만 우리의 정치와 행정 곳곳에서는 아직도 이 같은 역사와 사회의 발전에 보조를 맞추지 못하는 지진아들을 많이 볼 수 있다.

대표적인 게 건설 인·허가 행정이다. 기자가 만나는 수많은 건설사업자들은 여러 가지 고충사항 중 인·허가 과정에서 관할당국의 갑질을 최고로 꼽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 

공공기관의 도심정비사업 관련 컨설팅을 제공하는 A업체의 대표는 “(서울시의 경우) 과장에게 설명하는 데 한 달이 걸렸는데 국장 단계로 넘어가면 똑 같은 설명으로 다시 한 달을 더 허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 이후 실장 단계에서도 이 같은 절차가 그대로 반복된다고 한다. 심지어 그 대표는 서울시 국장 출신이다. 

사업이 지연될 경우, 보통 대출을 끼고 사업을 하는 건설사업자 입장에선 수익성 악화로 이어지기 때문에 애간장이 타는데, 담당 공무원들은 급할 게 전혀 없다는 태도를 보이기 일쑤라는 것이다.

세종시에서 복합개발을 하는 B시행업자는 “공모 당시보다 개선된 디자인을 적용하기 위해 추가 비용을 감수하면서까지 설계변경 작업을 하는데도 심의위원들은 경직된 잣대로 무조건 안 된다고만 해 난감했다”고 토로했다.

수도권에서 대단지 아파트 분양 사업을 준비 중인 C시행업자는 “조합사업으로 인·허가를 받은 사업장인데 일반분양 사업으로 변경을 추진하던 중 경쟁업체로부터 항의를 받은 공무원이 사실상 인·허가 업무를 올스톱한 상태”라고 하소연했다. 그가 주변 다른 분양 예정단지들보다 분양가를 낮게 책정하려고 하자 다른 사업자들이 이를 막기 위해 고의적으로 인·허가 당국을 자극했다는 것이다. 담당자 입장에서는 불필요한 잡음을 만들 이유가 없으니 업무에서 사실상 손을 놓았다는 것이다.

행정 공무는 공적 서비스다. 다시 말해 민간이 사업을 원활히 할 수 있도록 보조역할을 해주는 책임을 가진 업무를 말한다.

하지만 우리사회의 공적 서비스 영역에서는 아직도 ‘책임’이라고 쓰고 ‘권력’이라고 읽는 공직자들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자기 책무를 다하며 묵묵히 일하는 대다수의 공직자들을 폄훼하려는 것은 아니지만 불행히도 그렇지 않은 경우도 허다하다.

이번 게이트를 통해 우리는 민심이 최고권력을 얼마든지 갈아치울 수 있다는 점을 확인했다. 국민의 공적 서비스에 대한 기대치도 높아졌다. 

민간 영역에서는 세계 최고의 휴대폰과 자동차를 만드는 수준으로 발전했는데, 대한민국 행정의 브랜드 가치는 아직 세계 최하위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국민이 부여한 책임을 권력이라고 읽는 공직자는 이제 철저히 가려서 파면시켜야 한다. 그러지 않을 경우 정부는 이제 민심을 감당하기 힘들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