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창] 골프 스코어와 수능 점수
2017-03-02 15:23
노력한 대로 결과 나오는 매력...사회에 지친 40대 중년에겐 힐링의 해방구
아주경제 김창익 기자 = 대학 동기동창 모임에서 최근 골프가 단골메뉴가 됐다. 다들 이제 40대 중반이 되면서 하나둘씩 머리를 올리기 시작해 급기야 수년전부터는 학번 골프대회가 매년 열리고 있다.
최근 이른바 번개모임에서 한 동기가 “너는 골프가 왜 좋냐?”고 물었다. 1년 전쯤인가부터 골프에 미쳐 최근 70대 후반의 ‘라베(라이프 베스트 스코어)’를 기록한 친구였다.
한 때는 골프라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던 때가 있었는데 정작 질문에 뾰족한 답을 못했다. 질문을 한 친구가 정적을 깼다. 생각해보니 골프와 공부가 상당히 닮았더란 것이다.
얘기인 즉 이랬다. 대한민국에서 골프는 적어도 중산층 이상의 스포츠다. 친구들과 즐기는 게임보다는 접대골프가 많은데 하는 쪽이나 받는 쪽이나 사회에선 오피니언 리더그룹이다. 그들은 대부분 학창시절 우등생이었다. 모의고사 성적이 방에 붙으면 대부분 1·2등을 다투었던 선두그룹이다. 계량화된 성적은 그들의 자존감을 지켜주는 보증수표였다.
사회에 나오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선배에 눌리고 후배에 치이면서 어찌어찌 하다보니 고된 살아남기의 관문을 통과하긴 했는데 쓸개 빼고 간 혹사시키는 사이 자존감은 너덜너덜해졌다. 그런 40대 중년의 중산층들에게 골프는 일종의 해방구란 것이다.
한국에서 골프는 일종의 비즈니스여서 그 안에도 사회가 있고 정치가 있기는 하지만 어찌됐든 스코어 카드는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자신의 성과에 대한 기록이다. 모두들 "즐겁게 치면 되지"라고 말하지만 스코어에 따라 귀가길 기분이 달라지는 건 부인할 수 없다. 등수별로 자존감이 커지는 학창시절과 정확히 오버랩이 된다는 것이다.
공부든 골프든 노력의 배신은 없다. 비슷한 머리를 가진 무리가 등수를 가르면 십중팔구 책상에 오래 앉아 있던 친구가 이긴다. 골프도 마찬가지다 선천적인 운동신경보다는 연습장에서 때린 공의 숫자로 승자가 결정된다. 노력은 전적으로 자신이 컨트롤 할 수 있는 영역이니 몸은 피곤할지 몰라도 정신적인 스트레스는 적다.
자신이 통제하지 못하는 부품화된 사회에 짓눌린 자존감을 적어도 주말 하루 녹색의 필드위에서 힐링(치유)하는 게 골프인 셈이다.
그 친구의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이면서 우리사회가 상당히 계량화의 괴리에 빠져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학창시절 등수대로 줄서는 것에 익숙해진 사람들이 이끌어가는 사회인 데 정작 조직에서의 성과를 계량화하는 데엔 익숙하지 않고 그럴만한 수단도 정교하지 않다.
그러다보니 고비고비마다 이른바 ‘님의 뜻’에 내 목을 거는 경우에 많이 직면하게 된다. 비계량화의 범주에 속하는 정성평가, 다시말해 인사평가자의 마음에 드는 지가 적어도 성과만큼 중요할 수도 있다는 얘기다. 마음에 든다란 말은 한국사회에선 상당히 많은 의미를 내포한다. 일을 잘해서일 수도, 회식자리에서 분위기를 잘 띄우는 등 팀웍에 공헌을 해서일 수도 있다. 또 고향이 같아서일 수도 고등학교 후배여서 일수도 있고, 술자리에서 이른바 사내정치를 잘해서일 수도 있다. 위스콘신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딴 한 동기가 박근혜 대통령 집권 후 입방아에 올랐던 것도 같은 맥락이다.
공직에 있는 한 친구는 “과장까지야 몰라도 국·실장이 되려면 대통령 출신지역을 먼저 보는 게 우리의 현실”이라고 꼬집었다. 회계법인에 다니는 동기도 “좀 더 정교해지자고 수직·수평 다면평가란 걸 하기는 하는 데 결국 좀더 복잡해진 정성평가 아니겠냐”고 했다.
밤 세워 공부하는 게 이같은 복잡다난한 평가의 잣대 앞에서 벌어지는 생존게임에 비하면 식은죽먹기였다는 사실을 알게 된 40대 중년들은 학창시절을 떠올리며 골프 연습장을 찾는다.
장갑을 끼고 골프화를 갈아신고 심호흡을 하며 마인드 컨트롤을 한다. 공 치는 순간만큼은 모든 것을 잊자. 상사의 질타도, 어학연수 팸플릿을 들고와 방긋 웃는 아들녀석의 미소도, 연말 건강검진 결과도 250m 타깃 앞에선 다 잊자고 말이다.
노력이 그대로 성과로 이어지는 배신 없는 골프 타석에서 40대 중년은 그렇게 두 시간 가량 한 주를 힐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