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민화보]퉁런탕(同仁堂), 중의약의‘글로벌 명함’이 되다

2017-03-24 16:46

인민화보 왕자인(王佳音) 기자 =호주 시드니의 조지 스트릿(George St), 뉴질랜드 오클랜드 번화가의 상업중심구역(CBD), 두바이 헬스케어시티(DHCC)에 가면 공통적으로 볼 수 있는 것이 있다. 바로 베이징 퉁런탕이다. 금색 간판을 내건 퉁런탕은 이색적인 자태로 해외 소비자들의 발길을 당기고 있다.
1993년 홍콩에 최초의 의약품 소매 매장을 연 뒤 20여 년간 중국 베이징 퉁런탕(그룹) 책임유한회사(이하 퉁런탕)는 해외 26개 국가 및 지역에 130여 개의 점포망(소매 약국·중의 문진소·보양센터 포함)을 구축했다. ‘중국인이 있는 곳에는 퉁런탕이 있다’는 말은 지금에 이르러 ‘건강 수요가 있는 곳에는 퉁런탕이 있다’는 말로 변화했다. 이제 퉁런탕은 중의약 문화의 글로벌 홍보대사가 되었다.
 

2013년, 베이징 퉁런탕은 중국을 대표하여 한국에서 열린 ‘세계전의약박람회’에 참여했다.[사진=퉁런탕 제공]


국경을 넘어 세계로
1669년 설립된 퉁런탕은 중국 중의약 업계의 대표적 ‘라오쯔하오(老字號, 100년 이상의 오랜 역사를 지닌 중국 대표 브랜드)’이다. 청(淸)나라 황제의 약 처방을 담당하며 총 188년간 황제 8명의 약을 책임졌다. 300여 년의 역사 속에서 퉁런탕은 줄곧 ‘포제(炮制) 과정이 아무리 번잡하더라도 인력을 아끼지 아니하고, 재료가 아무리 귀하더라도 물자를 아끼지 않는다’는 고훈(古訓)을 고수하며, 오늘날 중국 중의약 문화의 대명사가 되었다.
“1993년 퉁런탕은 홍콩에 ‘제1호’ 해외 분점을 개설했다. 퉁런탕 제품은 앞서 홍콩에서 상당히 긍정적인 입소문을 얻었고, 홍콩 시장은 퉁런탕의 해외 진출의 ‘전초전’이 되었다.” 퉁런탕의 해외진출 과정을 회고하며 딩융링(丁永玲) 퉁런탕그룹 회장은 이같이 말했다. 현지에 보다 효과적으로 녹아들기 위해 퉁런탕은 약품의 품질 보장을 전제로 직원, 공장은 물론, 심지어 원자재까지 현지 것을 적극 사용했다. 또한 안궁우황환(安宮牛黃丸) 제조기법 같은 핵심기술을 제외하고는 가공업무 대부분을 현지업체에 위탁했다. “이렇게 해서 비용을 낮출 수 있었을 뿐 아니라 현지에 보다 많은 취업기회를 제공할 수 있었다.” 딩융링의 말이다.
10년간의 탐색기를 거친 퉁런탕은 제품, 상점, 의료, 문화, 네 가지를 동시에 강조한 이른바 ‘사위일체(四位一體)’의 발전 전략을 세운다. 2003년 홍콩에 베이징 퉁런탕 국제유한회사를 세운 것을 계기로 퉁런탕은 해외 화교의 문을 두드렸다. 이후 2013년 베이징 퉁런탕 국약(國藥)유한회사가 홍콩 증시 상장에 성공한 뒤 본격적으로 유럽 시장 진출을 개시했다. 2016년에는 미국 시장에 발을 들였다. 뉴욕 시청과 로스엔젤레스 시청으로부터 표창장을 받은 데 이어 샌프란시스코 시정부는 9월 30일을 ‘퉁런탕의 날’로 지정했다.
현재 퉁런탕은 해외에 현대적 제약, 소매 비즈니스, 의료서비스라는 3대 핵심업무를 구축해놓고 있다. 또한 세계 곳곳에 중의 양생보건센터를 설립하는 등 중의약과 중국식 보양보건방식을 해외의 현지인들에게 전파하고 있다.
퉁런탕을 알기 전, 캐나다에서 20여 년간 살았던 장(張)씨는 중의약에 대해 거부감을 갖고 있었다. 그러나 3개월 전 있었던 한 가지 사건이 중의약에 대한 그의 생각을 완전히 바꿔놓았다. 당시 장씨는 위가 좋지 않았다. 속이 불편하다고 느낄 때마다 양의(洋醫)를 찾아갔지만, 이들은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말만 되풀이할 뿐이었고, 그의 증세는 점점 더 심각해졌다. 장씨가 퉁런탕을 찾게 된 것은 가족들의 권유 때문이었다.
퉁런탕 토론토점의 중의사는 직접 진찰하고 냄새를 맡고 질문 등을 한 뒤 장 씨의 증세에 따라 약 5포를 처방해주었다. 장 씨는 반신반의 심정으로 약 한 포를 먹었다. 그러자 신기하게도 속이 눈에 띄게 편해졌고, 남은 약을 다 먹은 뒤에는 더부룩하고 불편한 느낌이 완전히 사라졌다. 퉁런탕에 다녀온 지 3개월이 지났지만 위 통증은 재발하지 않았다.
불신이 신뢰로 변한 뒤 퉁런탕의 ‘충성고객’이 된 사례는 장씨 외에도 많다. 정확한 통계는 아니지만, 퉁런탕의 해외분점에서 진료를 받은 환자 수는 연인원 3000만명을 넘어섰고, 퉁런탕을 아는 외국인들도 수억 명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맞춤형’ 현지화 전략
퉁런탕의 해외 발전은 표면적인 것에서 시작해 본질적인 것으로 침투하는 과정을 따른다. 크게 ‘4단계’로 구분할 수 있는데, 제품과 서비스의 해외 진출, 브랜드의 현지화 실현, 문화 홍보활동 전개, 현지 정부로부터의 인정이 그것이다. 그러나 각 나라마다 중의약에 대해 각각 다른 수준의 제한을 두고 있기 때문에 퉁런탕은 지역 실정에 맞춘 전략을 수립하고, 유연하면서도 다양한 형식으로 장벽을 돌파해왔다. 예를 들어, 동남아 국가의 정책은 비교적 느슨하기 때문에 퉁런탕은 약품을 정식 등록하는 방식으로 시장에 진출했다. 호주는 중의약을 건강보조제로 분류해놓고 있어 퉁런탕은 60여 가지 중의약을 호주 시장에서 판매하는 데 성공함과 동시에 의약과 결합한 모델을 형성했다. 구미시장은 중의와 중약에 대해 상당히 엄격한 기준을 적용하고 있다. 이에 퉁런탕은 20여 가지 제품을 선정해 식품보조제 형식으로 체코에 진출한 뒤 2014년 홍콩에서 보양보건센터를 설립했고, 이어 네덜란드와 스웨덴 등에서도 비슷한 전략을 구사하며 ‘보양보건’이라는 새로운 모델을 개척했다.
중의약의 ‘신분’을 ‘인정’ 받는 것은 퉁런탕에게 있어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었다. 그러나 라오쯔하오가 100년 이상 명맥을 이어올 수 있었던 것은 그 몸 안에 분명 ‘혁신’의 DNA가 있기 때문이다. 의약품에 대한 기준이 까다로운 구미국가에서 퉁런탕은 먼저 중의약 문진소와 보양보건센터를 세웠다. 진입 장벽을 뚫기위해 퉁런탕은 해외 의약 연구기관들과 공동 연구를 진행함과 동시에 중의약 인재를 함께 양성했으며, 중약 성분의 안정성에 대해서도 연구했다. 과학연구 분야에서의 성과는 중의약 업계에 발언권을 가져다 주었고, 중의약 업계는 해외 시장에서 점차 인정과 존경을 받게 되었다.
환약을 복용하는 방법과 탕약(湯藥)을 달이는 방법은 중국인들에게 있어 ‘상식’이나 다름 없지만, 많은 외국 소비자들에게서는 낯설기 그지 없는 문제들이다. 조금 자세히 들여다 보면, 퉁런탕의 환약 겉포장에는 다음과 같은 문구가 적혀 있음을 알 수 있다. ‘본 제품은 한 번에 삼켜 먹으면 안 됩니다.’ 퉁런탕 홍콩 이스트 침사추이 분점 직원에 따르면, 이전에는 이 같은 설명이 없었다고 한다. 그러다가 언젠가 매장을 방문한 한 고객이 “퉁런탕의 약은 항상 소화가 잘 안 된다”고 말했고, 상담 끝에 해당 고객이 환약을 통째로 삼킨 것을 알게 됐다. 이후 퉁런탕은 겉포장에 포장지를 제거하는 방법과 환약을 복용하는 방법을 설명한 이미지를 인쇄해 부착했고, 퉁런탕의 탕약 포장 겉면에도 탕약을 달이는 과정을 상세하게 설명해 놓았다.
‘인터넷 플러스’가 본격화 함에 따라 전통업계에 속하는 중의약 기업 역시 인터넷과의 결합을 통한 발전 노선을 적극 탐색하고 있다. 인터넷을 활용해 수백 년 간 고수해 온 문진 및 처방 모델을 바꾸는 것이다. 전통 중의약의 현대화 및 세계화가 현재 퉁런탕의 최대 과제 중 하나다.
2016년 12월 16일, 퉁런탕 국제 중의약 해외진출 플랫폼(TRTMED.COM)이 정식으로 서비스를 개시했다. 기존 모델과 달리 퉁런탕 국제 중의약 플랫폼은 직접 구매와 해외 직접 배송을 실현했고, 헬스케어의 3대 포인트를 정조준했다.
 

2016년, 퉁런탕은 미국시장에 발을 들였다.[사진=퉁런탕 제공]


‘문화’가 먼저다
퉁런탕의 해외 매장에 들어서면 TV 화면에 중의약과 보양보건 관련 프로그램이 연속해서 방송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소비자들은 뜸과 침, 추나 등의 서비스를 받으며 중의약 효과를 체험할 수 있고, 건강강좌를 듣거나 태극권, 팔단금(八段錦), 오금희(五禽戲) 같은 중국 전통 양생(养生) 방법을 배울 수 있다. 모든 퉁런탕 매장은 하나의 중의약 문화 박물관으로서 고객들에게 중의약 매력을 느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2012년 12월, 폴란드 수도 바르샤바에 퉁런탕 폴란드가 세워졌다. 퉁런탕 폴란드는 ‘문화선행(文化先行)’을 강조하며 면적 400-500㎡ 규모의 보양보건센터를 짓고 중의약의 양생문화와 그 이념, 방법 등을 소개한다. 보양보건센터에서는 또 중국어 강의를 하기도 하며, 중국 명차(名茶) 체험 등의 기회도 제공하고 있다.
“우리는 이러한 방식을 통해 폴란드에서 성공을 거두고 나아가 유럽 다른 지역으로까지 확대해 나갈 수 있기를 바란다.” 딩융링의 말이다. 그는 퉁런탕이 문화마케팅의 해외 발전전략을 수립한 것은 문화 차이가 중의약의 해외 진출에 있어 최대 장애물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우리의 중의약을 해외에 팔고 있지만 주로 동남아 지역이나 구미국가의 차이나타운에 국한되어 있다. 문화적 장벽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가 중의약 해외진출의 관건이다.”
딩융링은 또 “복방(複方)으로 제조되는 중의약은 유효한 성분을 다양하게 함유하고 있다. 반면 양약(洋藥)은 성분이 상대적으로 단일한 화합물”이라며 “중약 조제법은 수천 년에 걸쳐 축적한 경험에 기반한 것이라 양약처럼 어떤 물질이 어떤 역할을 하는지 정확하게 설명하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라고 말한다. 중의와 양의는 서로 다른 체계이므로, 문화적 이해가 없다면 중의약학 체계를 인정할 수 없을 것이고, 그렇게 되면 중의약은 구미시장에 진출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게 그의 지적이다.
“퉁런탕의 해외 매장은 경제적 실체이자 문화적 담체(擔體)다. 동서양 문화의 차이가 존재하는 가운데 ‘박대정심(博大精深)’의 중의약 문화를 세계인들에게 알리고 중의약의 매력을 드러내기 위해서는 문화 홍보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딩융링의 목소리에 힘이 실렸다.

한국에서의 퉁런탕
2003년, 한국에 퉁런탕 1호 매장이 문을 열었다. 한국은 수천년 전부터 중의약의 영향을 받았지만, 한국에서 정식으로 중약을 등록하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중약업계에 대해 많은 것을 요구하고 있고 엄격한 기준을 적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한국에서 중의약을 등록하기 위해서는 수십 여권의 한국의약 고(古)서적 중에 근거가 있어야 하는데, 이로 인해 퉁런탕은 한국 진출에 상당한 우여곡절을 겪어야 했다. “퉁런탕은 백년 이상의 브랜드 문화를 계승해 온 라오쯔하오로서 어려움 앞에서도 절대 포기하지 않았다. 한국이 정한 수십 권의 고서적을 한 페이지 한 페이지 넘기고 한 문장 한 문장 비교하는 등 불굴의 의지로 퉁런탕 우황청심환, 오계백봉환(烏雞白鳳丸), 퉁런탕 오계(烏雞) 드링크제, 육미지황환(六味地黃丸), 계부지황환(桂附地黃丸) 등 제품에 대해 한국 식약청이 발급한 등록 허가증을 획득했다. 또한 한국 약국과 병원의 장벽도 넘었다.” 퉁런탕 한국지사 책임자의 말이다.
현재 퉁런탕은 서울에서도 상당수의 충성고객을 확보한 상태다. 딩융링에 따르면 중산층 이상 및 여성 고객의 비중이 특히 크며, 퉁런탕 건강보조제 및 미용제품에 대한 평가는 매우 긍정적이다.
2014년, 퉁런탕은 ‘한국인이 좋아하는 중국 브랜드’로 선정되었다. 딩융링은 “이를 계기로 당시 퉁런탕은 한국에서 보름간 판촉행사를 벌였다. 대형 전람회를 열고 무료 진찰서비스를 제공하면서 많은 한국인들의 발길을 퉁런탕으로 이끌었다. 한국 시장 확대를 위해 퉁런탕은 2014년 3월 베이징 퉁런탕 서울 주식회사를 설립했다. 베이징 퉁런탕 서울 주식회사는 주로 고려인삼 등을 판매한다.”
중국의 라오쯔하오로서 퉁런탕은 한국에서 치병(治病)과 양생의 책임을 다함과 동시에 중의문화를 널리 알린다는 중대한 사명을 짊어지고 있다. 2013년, 퉁런탕은 한국이 개최한 ‘세계 전통의약 박람회’에 주한 중국대사관 문화센터의 추천으로 중국을 대표해 참가했다. 박람회 기간, 주최측은 한국 각지 학생들의 참관을 기획했다. 보다 효과적으로 중의약 문화를 알리기 위해 ‘중국어를 배우자(學中國語)’라는 제목의 소책자를 특별 제작하고, 그 안에 중의약 문화와 퉁런탕의 문화를 녹여냈다. 약재를 고르고 채집하는 등의 상황에 따라 색, 동사, 기본적인 날씨 묘사 표현 등의 내용을 수록함으로써 한국 학생들이 보다 쉽게 중국어를 배우고 또 ‘박대정심’의 중의문화를 배울 수 있도록 했다.

* 본 기사는 중국 국무원 산하 중국외문국 인민화보사가 제공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