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민화보]검은들창코원숭이의 ‘왕’ 위(余)삼촌 이야기
2017-02-22 16:08
인민화보 저우진(周瑾) 기자 =‘위 삼촌’의 이름은 위젠화(余建華)다. 윈난(雲南)성 웨이시(維西)현 타청(塔城) 검은들창코원숭이 보호센터의 삼림 감시원이다. 올해 64세인 위 삼촌은 리쑤(傈僳)족으로 1998년 사냥총을 내려놓고 바이마(白馬)설산 자연보호구역의 일반 삼림 감시원이 되어 지금까지 20년 동안 일하고 있다. 현재 그는 현지에서 가장 오랫동안 근무했고, 원숭이도 제일 잘아는 삼림 감시원이다.
웨이시현 타청 검은들창코원숭이 보호센터는 아직 개발이 덜 됐다. 외진 곳에 있고 교통도 불편해 이곳을 찾는 관광객은 극히 적다. 간혹 찾아오는 사람도 동식물과 검은들창코원숭이에 흥미가 있는 연구원과 여행전문가 정도다.
사냥꾼에서 지킴이로
1897년 프랑스 선교사가 윈난성 더친(德欽)에서 검은들창코원숭이를 발견했고 서양 과학자가 처음 이름을 붙였다. 이후 전란으로 본 사람이 없었기 때문에 멸종한 것으로 추정됐다. 신중국 성립 이후 중국 과학자가 털가죽을 통해 검은들창코원숭이가 여전히 존재한다는 것을 확인했고, 1962년에야 그들의 존재가 중국 동물학자에 의해 증명됐으며, 희귀 멸종위기 보호동물로 지정됐다. 1970년대 말 제대로 된 현지조사가 시작됐다.
위 삼촌의 집은 야생동물 구조센터에서 1-2km 정도 거리에 있다. 매일 새벽 5시, 그는 10여 kg 상당의 짐을 들고 원숭이를 보러 산을 오른다. “원숭이가 가까이 있으면 배낭을 따로 안 챙기고, 3-4km 정도 멀리 있어야 비상식량을 조금 챙긴다.” 위 삼촌은 이렇게 말하면서 길 옆에 있는 작은 집에서 크기가 다른 마대 두 개를 내왔다. 하나는 땅콩과 호박씨가 담겨있고 다른 하나에는 말린 송라(松蘿)가 가득 들어있었다. 송라는 옅은 녹색의 지의 선태류 식물로 원숭이가 제일 좋아하는 것이다.
이곳 원숭이는 크게 전시군과 야생군으로 나눌 수 있다. 전시군은 현재 6개 가족 무리가 있으며 관광객이 유일하게 볼 수 있는 원숭이들다. 2004년 전까지 이곳의 원숭이 수는 300마리 정도였지만 지금은 450마리에 달해 개체 수가 늘고 있는 추세다.
검은들창코원숭이는 ‘일부다처제’를 취한다. 한 가족은 보통 사나운 수컷 한 마리와 암컷 여러 마리, 3세 이하 어린 원숭이 한 마리 또는 여러 마리로 구성되고 가장은 수컷이 담당한다. 현재 전시군 원숭이 가족 중에서 암컷을 가장 많이 거느린 경우는 수컷 1마리가 암컷 6마리를 거느린 것이고, 최소는 수컷 1마리에 암컷 1마리다. 대장 원숭이는 교배를 맡을 뿐 아니라 자기 영역도 지켜야 한다. 조금만 이상한 기운이 감돌아도 가족 구성원에게 경고 신호를 보낸다.
검은들창코원숭이는 일과 휴식 시간을 엄격하게 지킨다. 그들은 동이 트면 일어나고 해가 지면 잠을 잔다. 매일 정오에는 반드시 낮잠을 잔다. 위 삼촌의 업무시간은 원숭이에게 맞춰져 있다. 날이 채 밝지도 않은 새벽 5시 30분에 산으로 출발해 원숭이들이 잠이 들어야 비로소 산에서 내려온다. 삼림 감시원이라기 보다 관찰원이나 원숭이 보모라고 하는 게 나을 정도다.
위 삼촌과 그의 동료들은 날마다 산을 지키지만 더 중요한 일은 원숭이 가족에게 벌어지는, 잘 알려지지 않은 비밀을 관찰하고 이해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각 검은들창코원숭이 가정의 조합 시간, 수컷 원숭이는 어떤 개체군에서 왔나, 어떤 수컷 원숭이가 싸움을 했나, 가족 구성원의 감정 교류, 자기 핏줄이 아닌 새끼 원숭이에 대한 수컷 원숭이의 태도, 어미 원숭이의 발정과 출산 시기 등이 삼림 감시원이 알아야 할 내용이다.
검은들창코원숭이는 인간과 가장 비슷한 얼굴을 갖고 있다. 하얀 얼굴에 붉은 빛이 돌고 오동통한 붉은 입술은 섹시 스타도 울고 갈 정도이며, 인간과 비슷한 쌍꺼풀도 있다. 고산 기후에 적응하기 위해 호흡의 저항을 줄이려고 콧등뼈가 거의 사라져 귀여운 들창코만 남았다.
오늘도 묵묵히 자리를 지킨다
검은들창코원숭이는 인간을 제외하고는 해발고도가 제일 높은 곳에 서식하는 영장류 동물로 인적이 드문 고산지대에서 생활한다. 활동 범위는 해발 2500~5000m이고, 무리의 활동 범위는 100㎢에 달한다.
검은들창코원숭이는 수원(水源)의 증감에 매우 민감하다. 현재 보호구역의 환경은 전반적으로 건조하고 수역이 점점 줄어들고 있는 상황이다. 원숭이가 더 이상 가지 않는 곳이 많아졌고 서식지가 점점 줄고 있다. 이 밖에 검은들창코원숭이의 주식인 송라도 채집하기가 어려워졌다. 현지에 송라가 충분하지 않아 위 삼촌은 먼 곳의 산사람에게서 사와야 한다. 예전에는 해발 2800m 정도에 송라가 있었지만 지금은 3000m 이상 올라가야 있다. 위 삼촌은 “처음에는 1근에 3위안(약 500원)이었는데 이제는 4위안으로 올랐다”고 말했다.
날마다 위 삼촌은 원숭이들이 잠이 들어야 산에서 내려와 집으로 돌아간다. 활동성이 강한 ‘설산의 정령’은 한곳에 머물지 않고 때로는 맞은편 깊은 산으로까지 뛰어간다. 위 삼촌은 원숭이처럼 갈 수 없기 때문에 근처의 더친 역내를 빙 돌아가야 원숭이가 있는 곳에 도달할 수 있다. 한참 돌아가야 하기 때문에 위 삼촌은 삼림 감시원이 지은 산 속 작은 오두막에서 밤을 보내야 한다.
어느 해 겨울, 눈이 조금 내리는 날 위 삼촌은 하루치 비상식량만 준비한 채 검은들창코원숭이들을 따라 산으로 들어갔다. 하지만 눈이 점점 많이 내려 산 아래로 내려가는 입구가 매몰됐다. 산은 너무 추웠지만 위 삼촌은 뜨거운 차 한 주전자를 끓여 추위를 견뎠고 차를 끓이면 바로 불을 껐다. 산 아래로 내려갈 수 없었던 위 삼촌은 산에서 3-4일을 버텼고 마침내 산에서 내려왔을 때는 매우 초췌한 모습이었다.
2011년 제1회 ‘치차이(七彩)윈난 보호행동 환경보호상’에서 위 삼촌은 윈난 ‘10대 환경보호 걸출 인물’에 선정됐다. 위 삼촌의 아들인 위중화(余忠華)는 올해 28세로 중학교를 졸업하고 리장(麗江)의 한 운송경비회사에서 일하다가 2004년 아버지의 권유로 이곳에 와 삼림 감시원 생활을 시작해 벌써 8년째가 됐다. 현재 그는 타청 바이마설산 자연보호구역 웨이시분국 관리소에서 근무하고 있다. 아버지가 매일 원숭이를 ‘보러’ 산에 가는 것에 대해 위중화는 “원숭이들은 매일 같은 곳에 있지 않고 온 산을 뛰어다니기 때문에 그들을 따라 가야한다”며 “나도 따라가기 힘든데 아버지는 어떻게 이 일을 하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 본 기사는 중국 국무원 산하 중국외문국 인민화보사가 제공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