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칼럼] 개헌, 지금이 적기다
2017-03-19 14:20
송문희 더공감정치연구소장 "개헌은 정치적 셈범으론 안돼"
개헌을 둘러싼 난타전이 시작되었다. 15일 더불어민주당을 제외한 3당이 ‘차기 대통령 임기단축과 분권형 대통령제’를 공통적 내용으로 하는 ‘대선일 개헌 국민투표’에 합의했다.
그러나 더불어민주당이 “공론화과정이 없는 권력 나눠 먹기식 발상”이라고 강하게 반발하고 있고 개헌에 찬성하는 각 정당 안에서도 제각각 다른 목소리가 나오고 있어 국회의결까지는 험로가 예상된다. 현 시점에서 가장 유력한 대통령후보군들 역시 본인이 대통령이 된 이후인 내년 지방선거 때에 가서야 개헌을 하겠다고 주장하고 있다.
개헌의 당위성에 관한 국민적 공감대는 이미 폭넓게 형성되었다. 정부수립후 70년 동안 국민들은 줄곧 제왕적 대통령제의 폐해를 목도해왔다. 초대 대통령은 망명길에 올랐고 이후에도 암살, 수감, 자살, 탄핵 등으로 퇴임 후 역대 대통령들의 말로는 비참했다.
이런 난타전의 본질은 무엇일까? 논란의 핵심은 개헌의 시기와 내용에 관한 것이다.
이른바 '권력 나눠먹기 음모'라는 주장에 대해 먼저 살펴보자. 장기집권의 폐단을 막기 위한 장치로 주장된 대통령 5년 단임제는 과연 어떻게 탄생하게 된 것일까?
다음으로 '시간이 없다'거나 '공론화 과정이 부족하다'는 주장을 살펴보자. 개헌논의는 어느 날 갑자기 불거져 나온 것이 아니다. 지금부터라도 개헌을 둘러싼 공론화 과정이 시작되면 짧은 시간 안에도 그 어느 때보다 심도 깊은 논의의 장이 펼쳐질 수 있다.
이번에 개헌을 하지 못한다면 개헌 논의는 또 흐지부지되고 앞으로 개헌이 불가능해질 수도 있다. 현행 헌법이 지속되면 5월 조기대선이 끝나는 즉시 또 한 사람의 제왕적 대통령이 탄생할 것이다.
과연 그가 임기 중에 권력을 나누는 개헌에 나설 수 있을까? 단언컨대, 권력의 속성과 지금까지의 경험에 비춰볼 때 지켜지지 못할 공허한 약속이 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개헌 논의와 관련하여 권력구조 개편의 문제보다 더 본질적이고 중요한 문제가 있다. 그것은 바로 헌법이 추구하는 ‘가치’에 관한 것이다.
각 나라의 헌법 전문에는 자국의 독특한 역사를 배경으로 가장 중요하게 지향하는 헌법적 가치가 분명하게 드러나 있다.
예를 들어, 2차 대전이라는 쓰라린 상처를 안은 독일은 ‘국가의 기본권침해 불가침성’을, 프랑스는 ‘인권’, 미국은 ‘자유’를 강조하고 있다.
2017년 3월 현재 대한민국 국민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핵심적인 헌법 가치는 과연 무엇일까? 아마도 ‘분권’과 ‘경제민주화’일 것이다.
탄핵 이후 ‘적폐 청산’이 중요한 숙제가 되었는데 이를 위한 최우선 과제가 바로 제왕적 대통령제를 고치는 것이다. 현재의 여소야대 구도 하에서 차기정부가 경제위기 극복 및 성장, 부정부패 척결, 양극화 및 불평등해소 등 산적해있는 개혁 과제를 제대로 실천하려면 의회와 여러 사회세력의 협조가 필수적이다. 이를 위해서는 분권과 협치를 근간으로 권력기관 간의 수평적 분립과 책임소재를 분명히 해야 한다.
급속한 산업화를 배경으로 한국경제는 단기간에 놀라운 압축 성장을 이뤄냈지만 심각한 소득양극화와 부의 대물림으로 인한 상대적 박탈감은 커져만 가고 있다.
공개, 공정, 공평에 대한 시대적 요구가 거세지고 있는 만큼 경제민주화는 여전히 포기할 수 없는 중요한 시대정신이다. 세계 각국이 경쟁법(Anti-Trust) 규제 도입을 확대하고 있는 바, 이런 글로벌 환경 하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라도 경제민주화를 바탕으로 한 경쟁질서 확립과 국내기업의 체질 개선 등이 필요하다.
분단국인 현실을 감안한다면 안보와 통일 역시 빠질 수 없는 가치가 될 것이다. 이런 권력구조 개편과 함께 시민의 자유와 정치적 참여보장, 안전권, 정보기본권, 망명권 등 중요성이 부각되고 있는 기본권 신장 조항도 소홀히 할 수 없다.
권력구조개편에만 치중한 ‘원포인트 개헌’에 매몰되어서는 안 된다. 국가권력구조 개편과 기본권 신장에 대한 국민적 열망이 뜨거워지고 있다.
개헌의 성공여부는 시간의 문제가 아닌 의지에 달려있다. 2020년 7공화국 탄생까지 앞으로 3년이라는 짧지않은 시간이 남아있다. 이 기간동안 국가시스템 대개조의 틀을 다잡아야만 한다.
중요한 것은 '대한민국의 미래헌법은 주권자인 국민이 결정한다'는 사실이다. 우리국민들은 역동적이고 현명한 주권자이다. 정파적 이해관계에 따라 개헌의 득실을 따지는 모습이야말로 정치권의 고질적인 병폐가 아닐 수 없다.
개헌이라는 중요한 문제를 정치인들이 단순한 머리와 정치적 셈법에 따라 계산하려든다면 거센 역풍을 맞게 될 것이다.
송문희 더공감정치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