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드발 중국 경제보복에 '스텔스 모드' 들어간 국내 기업들
2017-03-05 16:52
아주경제 유진희 기자 = “고객사와 미팅을 하면서 ‘한궈(Hánguó. 한국)’라는 단어는 가급적 피하고 있습니다.”
중국에 매장을 갖고 있는 국내 자동차 부품업계 관계자는 최근 중국 사업에서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면서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한국산 자동차 부품이 한때 최고의 품질로 중국에서 큰 인기를 끌었지만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의 한반도 배치에 따른 중국의 경제 보복이 가시화되면서 혹여라도 오해를 살만한 말과 행동은 최대한 자제하고 있는 모습이다.
◆"행여나 불똥 튈라" 기업들, 사드 관련 '함구령'
국내 기업들은 현지 네트워크를 통해 중국내 상황을 실시간 체크하는 등 긴장의 끈을 놓지 않고 있다.
또 국내 언론이나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을 통해 자사가 언급이 되지 않을까 극도로 말을 아끼는 분위기다.
코트라 관계자는 “현재 중국에 진출해 있는 기업들은 이번 사태와 관련한 언급 일체를 꺼리는 분위기”라며 “중국 당국이 한국 언론을 지속적으로 모니터링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중국 언론을 통해 경제보복 타깃으로 언급된 삼성전자와 현대자동차 역시 어떤 대응에도 나서지 않고 있다. 삼성전자는 중국에서 아직까지 직접적인 피해를 주지 않은 만큼 대응책 마련보다는 상황을 좀 더 지켜보겠다는 입장이다. 삼성전자의 전체 매출 중 중국 지역이 차지하는 비중은 2015년 기준 15%(31조원) 정도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스마트폰을 비롯해 중국에 출시된 대부분 제품은 현지화가 잘 이뤄져 있기 때문에 아직까지 피해는 없었다”며 “다만 중국의 움직임을 좀더 지켜보면서 대응책을 모색할 것”이라고 말했다.
중국에서 전체 판매량의 20% 가량이 발생하고 있는 현대차도 비슷한 분위기다.
현대차 관계자는 “지난해 중국 사회과학원 사회적책임(CSR) 연구센터의 ‘기업사회책임 발전지수’ 평가에서 1위를 할 정도로 현지에서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면서도 "상황을 지속적으로 지켜볼 것”이라고 강조했다.
중국의 경제보복이 이미 현실화된 항공업계는 사태 추이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중국 당국은 베이징 일대 여행사를 불러 한국 관광 상품의 온·오프라인 판매를 모두 중단하라고 지시한 것으로 전해졌다. 앞서 지난달 중국 정부는 아시아나항공, 제주항공 등 국내 항공사들의 부정기 항공편(전세기) 운항 신청을 모두 불허한 바 있다.
항공업계 관계자는 “2015년 메르스 사태처럼 어려움을 겪지 않을까 업계에서는 노심초사하고 있다”며 “특히 싼커(개별여행객)까지 한국 여행이 중단돼 우려가 커지고 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도 "중국측의 불필요한 오해를 살 수 있어 별다른 대책은 마련하지 않고 상황만 주시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중·일센카쿠열도 사례 벤치마킹, 대응책 고심
기업들은 직원들을 대상으로 중국 소비자에게 오해를 살만한 말과 행동을 최대한 자제하라는 지침을 함께 고객 서비스 교육을 수시로 실시하고 있다.
다른 한편으론 중국 진출지역에 대한 사회공헌 활동을 강화하는 등 ‘한국기업’이 아닌 ‘중국인과 함께 성장하는 기업’이라는 이미지를 심기 위한 물밑 노력도 전개하고 있다.
강하게 대응한다고 해도 오히려 논란만 확산시켜 사태를 더욱 악화시킬 것이란 판단에서다.
이뿐 만이 아니다. 지난 2012년 9월 노다 요시히코 일본 총리의 센카쿠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의 국유화 선언으로 중·일 관계가 급속히 나빠지면서 피해를 본 일본 기업들의 사례도 벤치마킹하고 있다.
당시 중국 내 일본 제품 전반에 대한 불매운동이 벌어지면서 관련 기업들이 큰 타격을 입었다. 2012년 일본의 대중국 수출은 11조6000억엔(약 117조원)으로 전년 대비 10.8% 급감한 것으로 나타났다. 도요타자동차의 2012년 9월 중국 내 판매량은 전년 동기 대비 절반 수준으로 뚝 떨어졌다. 방일 중국인 관광객은 2012년 10월에만 전년동월대비 34.3% 감소했다. 업종별로 차이는 있지만 이런 추세는 1~2년간 이어졌다.
이경상 대한상공회의소 경제조사본부장은 “사드는 정부 간의 문제로 기업들이 할 수 있는 일이 사실상 없다”며 “기업들은 신중하게 향후 행보와 대응책을 고민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