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 365]‘트럼프 보호무역주의’는 기회다

2017-02-06 15:19

채명석 산업부 차장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발 보호무역주의 확산에 글로벌 경제가 휘청거리고 있다.

당장 우리 기업들의 대미 수출이 타격을 입을 것이라는 위기감이 증폭되고 있다. 삼성전자와 현대자동차 등은 미국 현지에 새 공장을 짓거나 규모를 확대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하지만 시각을 달리하면 미국의 보호무역정책이 반드시 우리 기업들에게 마이너스 요인만 있는 건 아니다.

미국의 대표적인 자유무역 옹호론자인 더글러스 어윈 다트머스대 교수는 그의 저서 ‘공격받는 자유무역’에서 자국 산업 보호를 위한다는 명분으로 전개해 온 미국 정부의 보호무역 정책이 오히려 미국 경제를 심각하게 왜곡시켰다는 점을 다양한 사례를 통해 입증했다.

어윈 교수가 제시한 사례를 우리의 입장에서 보면, 미국의 보호무역주의를 잘 활용하면 우리 기업에게 새로운 기회가 될 수도 있다는 얘기다.

1981년 미 정부가 일본 정부를 설득해 일본산 자동차의 대미 수출을 제한하도록 했을 때, 일본 자동차업체들은 미국에서 판매되는 자사 자동차의 평균 가격을 1000달러 인상할 수 있었다. 이들은 인상된 가격으로 벌어들인 돈의 일부를 미국 현지공장 건설에, 또 다른 일부는 미국 자동차 업체들과 보다 효과적으로 경쟁할 수 있도록 품질 개선에 투자했다. 이를 통해 일본 자동차 업체들은 미국 자동차 산업을 무너뜨렸다.

1980년대 후반 미 정부는 일본에 D램을 포함한 반도체 수출에 대해 하한가격(Price floor)을 부과해 최소 가격을 높게 유지하도록 압력을 가했을 때도 마찬가지 효과가 나타났다.

일본 전자업체들은 겉으로는 대미 수출에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며 비명을 질렀으나, 속으로는 크게 환영했다. 자국 반도체 생산자들을 돕기 위해 일본 생산자들로 하여금 미국 시장에서 가격을 인상토록 한 미 정부의 조치 덕분에 일본 업체들은 수출 물량이 조금 줄어도 더 많은 이익을 얻을 수 있었던 것이다. 특히 당시에는 D램 수요가 공급을 따라가지 못한 상황이었기에 수출물량이 줄지도 않았다. 미 정부의 무역개입으로 인해 1MB(메가바이트) D램을 생산한 일본 기업들은 1988년 한 해에만 12억 달러의 추가 이익을 올렸다.

완성품에 사용되는 부품의 수입가격 인상 조치는 미국 제조업의 해외 이전을 불러 일으켰다. 일본산 D램의 하한가격 책정에 이어 1991년 미 정부는 자국 노트북 컴퓨터 제조업체들이 완제품 제조를 위해 수입하는 능동형 구동방식 디스플레이에 62.6%, 전장발광 디스플레이에는7.02%의 반덤핑 관세를 부과했다.

두 조치로 미국 생산자들은 자국에서 생산한 비싼 D램과 디스플레이를 구매할 수 밖에 없었다. 가격 경쟁력을 상실한 미국산 노트북 컴퓨터는 세계시장에서 훨씬 낮은 가격에 부품을 구매, 미국시장에서 자유롭게 판매되는 수입 노트북 컴퓨터에 밀려났다.

소수의 산업을 살리는 데 급급하며 연관 산업 붕괴라는 부작용을 무시했던 미 정부의 통상 정책은 한국을 비롯한 해외기업이 미국시장을 장악할 수 있는 틈을 마련해줬다.

자국 산업 보호 및 투자유치를 표방하는 트럼프 행정부의 통상 정책도 앞에서 든 사례를 답습할 가능성이 높다. 불리한 쪽은 해외업체가 아닌 미국에 남아있는 자국 제조업체들이다. 때문에 월풀이나 GM 등이 외국기업의 자국 진출을 달가워하지 않고 있다고 한다. 정부의 보호 아래 내수시장을 지키며 목숨을 연명하고 있는 이들 기업은 삼성전자나 현대자동차 등이 미국 투자를 확대한다면 퇴출당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나마 남아있던 토종 미국 제조업이 자멸할 수도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트럼프 행정부의 보호무역 공세는 분명 경계해야 할 일이다. 그렇다고 우려와 두려움에만 빠져 있을 필요도 없다. 이를 통해 우리 기업들은 미국 시장에서 새로운 기회를 만들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